[주영섭 칼럼] 확대일로의 미중 기술패권 전쟁 …'초격차'만이 살길이다

2024-10-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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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기 중국 제대로 읽기] ⑩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대전환기 중국 제대로 읽기] ⑩
 
 디지털, 그린, 문명의 3대 대전환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AI(인공지능)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대전환은 국가는 물론 기업의 생존 요건이자 성공 요소가 되고 있다. 환경 및 사회, 궁극적으로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고 그 정도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이 국가와 기업, 국민 모두 추구해야 할 목적이자 미션이며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을 수단으로 하여 환경과 사회, 인류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그린 대전환과 문명 대전환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문명 대전환에 있어서는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리며 디지털화와 정보화로 무장된 MZ 세대가 소비자 및 조직 전반의 신주류로 부상하면서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 생활, 시장 등 사회 전반이 혁명적으로 바뀌고 코로나 팬데믹은 이러한 대변화를 더욱 가속시켰다. 이와 함께 세계적 문명 대전환의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이슈는 미·중 패권전쟁이 촉발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헤즈볼라 전쟁 등이 심화시킨 신냉전 시대 진입이다. 그중에서도 미·중 패권전쟁의 전개 양상이 문명 대전환의 핵심이 되고 있어 이에 대한 올바른 분석과 대응이 국가적으로나 기업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작금의 미·중 패권전쟁의 원인 및 성격, 전개 방향, 향후 전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경제는 물론 국가 안보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미·중 패권전쟁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며 대중국 무역전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역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미국의 막대한 대중 무역적자였다. 2017년 기준 미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1304억 달러인 반면 수입액은 5056억 달러로 3750억 달러의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하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 것이라 규정하며 2018년 3월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무역전쟁을 개시했다. 무역적자가 표면적 이유가 된 것은 사실이나 내면으로는 2017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의 66%를 초과하며 세계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80년대 후반에도 일본의 GDP가 미국의 60%를 초과하자 미국은 플라자 합의 등 환율 조정 등으로 일본의 성장을 견제했고, 그 결과로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되었다. 현 바이든 대통령 정부에 와서도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미국의 대중국 견제의 결과로 2020년 미국의 70%를 초과하던 중국 GDP는 2023년 64% 수준으로 하락하여 미국의 대중 견제는 외견상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역전쟁은 관세 인상이 미국 소비자 물가의 급상승을 유발하자 미국 내부 정치 기반의 약화로 이어지며 지속이 어렵게 되었다. 관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2018년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 규모인 4191억 달러로 증가한 점도 정책의 변화를 부추겼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술 전쟁을 새로운 카드로 들고 나왔고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하며 기술 패권전쟁으로 확대되었다.
 
 미·중 기술패권 전쟁을 분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개념이 미국의 ‘스몰 야드, 하이 펜스(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이다. 직역하면 ‘작은 마당에 높은 담장’을 치는 것으로 전 기술 분야가 아니라 일부 첨단 또는 전략 기술 분야에서 장벽을 만드는 전략이다. 미국의 기술 패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첨단·전략 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기술이 넘어가지 않도록 봉쇄하려는 것이다. 2010년 당시 국방장관 로버츠 게이츠가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각 부처에 산재된 복잡한 수출 통제 리스트를 통폐합하고 전략 분야로 범위를 좁혀 강력한 통제를 실행한 정책이 이 전략의 효시다. 이는 특정 국가가 아닌 전반적 수출 통제 정책이었으나 2018년 미국 싱크탱크인 뉴아메리카의 선임연구원 샘 삭스가 대중국 기술 통제 정책으로 발전시켰고 2022년 10월 바이든 정부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대중국 첨단기술 수출 통제 정책을 발표하며 인용하여 세계적 화두가 되었다.
 
 ‘스몰 야드, 하이 펜스’ 전략은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핵심으로 반도체 기술 분야부터 대중국 기술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2022년 8월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반도체 및 과학(CHIPS and Science)’ 법안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강화와 동시에 대중국 기술 통제를 강력히 시행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반도체 기술 통제의 주요 내용으로는 AI 반도체의 핵심인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첨단 반도체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등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의 대중 수출 통제, 최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 및 슈퍼컴퓨팅 기술 통제 등이 있다. 이 전략의 결과로 중국의 필수 반도체 장비 확보가 어려워짐에 따라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이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이 전략의 결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더욱 자극하고 강화하여 중국 반도체 기술의 자립을 촉진하고 앞당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바이든 정부가 ‘스몰 야드, 하이 펜스’ 전략을 ‘라지 야드, 하이 펜스’ 전략으로 수정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중국이 6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무역국이고 여전히 희토류 등 전략 광물을 포함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에 이어 ‘스몰 야드, 하이 펜스’ 전략의 중장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는 데 기인한다. 이에 대안으로 기술 통제 대상 분야를 반도체 등 첨단·전략 기술은 물론 미래 신기술을 포함한 광범위한 연관 기술 분야로 확대하며 ‘작은 마당’을 ‘큰 마당’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AI, 양자 컴퓨팅, 바이오, 우주·항공, 로봇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모든 기술 제품과 가상 서비스까지 기술 통제가 확대되고 있다. 통제 수단으로는 수출, 관세, 투자 및 금융 제재, 기술 라이선스 제한, 시장 진입 제한 등으로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다가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중국 기술 통제 전략을 포함하는 미·중 기술패권 전쟁은 지속 및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항하는 조치로 2021년 반외국제재법을 제정하여 국제법과 준칙에 반하는 중국 기업 또는 국민에 대한 차별을 블랙리스트에 포함시켜 제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미국산 수입 제품에 대한 관세의 추가 부과나 인상을 추진하면서 희토류 등 핵심 전략광물의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전략 광물을 중심으로 한 자원 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전략 광물의 해외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나라에 던지는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측면에서의 시사점이 크다. 아울러 중국은 동남아 10개국 연합인 아세안, 아중동, 유럽 등 일대일로 선상 국가들과의 경제 외교 강화와 함께 합작, 인수, 기술 협력 등 중국 기업의 국제 협력을 적극 지원하여 공급망 및 시장을 글로벌로 다변화하고 미국의 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우회 진출도 확대하고 있다.
 
 미·중 기술패권 전쟁은 우리나라에 절체절명의 위기인 동시에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미국의 대중 견제로 자동차, 배터리, 로봇, 태양광, 우주·항공 등 우리 첨단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단기적으로 반사 이익을 얻고 있으나 여기에 안주하면 중장기적 위기에 봉착하는 건 시간문제다. 메모리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 공히 공급하고 있으나 미국으로부터 대중 수출 축소 압력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산업에 시간이 주어진 동안 우리의 기술 경쟁력을 미국, 중국은 물론 일본, EU를 초격차로 따돌리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 중국 양 진영에서 모두 러브콜을 받는 초격차 기술 기반의 K-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국력을 모아 글로벌 기술 경쟁력 확보에 성공해야 산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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