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금융권이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그 여파가 부동산 시장에 선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치솟던 매매가격은 대출규제 효과가 반영되면서 숨 고르기에 진입했다. 반면 전세 가격은 여전히 상승 흐름을 유지하면서 임차인들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로 인해 매매수요가 전월세 시장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임대차 시장의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며 정부와 금융당국의 세밀한 정책운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둘째 주 기준 전국 전셋값은 전주보다 0.06% 오르며 강세를 이어갔다. 상승 폭도 지난주(0.05%) 대비 확대됐다. 서울은 0.10% 올라 74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수도권(0.10%→0.12%)은 상승폭이 확대됐고, 지방(0.00%→0.01%)은 상승 전환됐다.
숨 고르기에 들어간 매매 시장과 달리 전셋값이 계속해서 오르는 것은 대출 규제 강화로 매수를 미루고 임대차 시장에 머무르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 물량 부족으로 인한 전세 공급 감소도 원인으로 꼽힌다.
KB부동산 '월간 전세수급지수'를 살펴보면 지난달 전세수급지수는 143.3으로 집값 상승세가 절정이던 2021년 10월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세수급지수는 100보다 높을수록 전세를 찾는 사람이 전세를 내놓은 사람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출규제 강화로 전세 수요가 월세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도 발생하고 있다. KB부동산 월간 주택가격 동향 조사를 보면 9월 서울 아파트 월세 지수는 전월 대비 1.4포인트(p) 오른 117.1로 나타났다. KB부동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 최근 시중은행들이 갭투자 등에 사용되는 전세자금대출과 미등기 주택에 대한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하는 등 전세대출에 대한 조이기에 나서면서 시장이 받는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금리 인하로 인한 가계대출 증가에 미리 대응하기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로 주택시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임대차 시장의 불안이 가중되는 등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는 만큼 신중한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대출은 대부분 실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대출인데 규제를 강화하게 되면 월세로 전환하거나 주택 컨디션이 낮은 쪽으로 이동을 해야 해 오히려 주거 불안정이 가중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공급 부족 등 다른 곳에 집값 상승 원인이 있는데 다른 방향으로 해결 방안을 찾으면 시장을 더 불편하게 하고 실수요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라며 "당국의 세밀한 정책 운용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출 규제 강화 속 시장의 불안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무주택 서민을 위한 저금리 정책대출인 디딤돌 대출의 한도를 줄이기로 했던 규제를 잠정 유예하기로 했다. 디딤돌 대출을 받기 위해 준비하던 실수요자들의 혼란이 커지자 정책의 시행을 잠시 중단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장 혼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상황에서 그대로 절차를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내부적으로 대책을 검토하고 있고 상황을 지켜본 뒤 정책 방향을 결정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