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물보안법 제정에 따른 글로벌 바이오 공급망 재편이 예고된 가운데 최대 수혜 국가는 인도가 될 전망이다. 인도 중앙정부가 바이오산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이를 주시하는 글로벌 자본시장 자금도 쏠리고 있어서다. 수혜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7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올해부터 ‘생산 연계 인센티브(Production Linked Incentive·PLI)’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로 했다. 미 생물보안법 통과가 가시화하자 막대한 자금을 투입, 글로벌 바이오 공급망 선두를 차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외신에 따르면 인도는 PLI 인센티브 자금을 지난해 200억2000만 루피(약 3203억원)에서 올해 800억7300만 루피(약 1조2811억원)로 확대했는데, 내년에는 1416억7100만 루피(약 2조2667억원)까지 더 확대할 것으로 예고했다. 제약·의약품·의료 기기 제조 등 생산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차원의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특히 인도 정부는 미 생물보안법 제정 추진이 가속화 하면서 다른 산업보다 제약·바이오 부문 인센티브를 큰 폭 확대하기로 정책방향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생물보안법 최대 수혜 국가로 꼽히는 한국과 일본 세 나라 중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한국바이오협회 산업정책본부 정책분석팀은 “미국의 생물보안법 영향으로 인도의 위탁개발생산(CDMO)과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시장성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글로벌 바이오제약 시장에서 인도가 중요 국가로 부상한 배경 중 하나는 인도의 정부 지원 정책이 꼽힌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정부 지원은 곧 글로벌 기업들의 추가 투자로 이어지는 추세다. 실제 미국계 글로벌 사모펀드 티에이 어쇼시에이츠(TA Associates)는 지난해 인도의 제약회사 시노켐 제약(Synokem Pharmaceuticals)을 1억2500만 달러(약 1700억원)에 인수했다. 미국계 대형 사모펀드인 애드벤트 인터내셔널(Advent International)은 인도 최고 CDMO 중 하나인 수벤 제약(Suven Pharmaceuticals)을 인수했다. 바이오 업계는 두 회사 합병으로 의약품, 화학물질·원료의약품(API) 제조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인도 내 입지가 더 공고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내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CDMO 공장을 신설하는 등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대형제약사 닥터 레디스(Dr. Reddy’s)의 자회사 오리겐(Aurigene)은 지난 7월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바이오의약품 CDMO 시설을 신설하고 있다. CDMO 시설은 올해 말에 완공될 예정이며, 이미 연구개발(R&D) 실험실은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에스티팜 등 CDMO 대표주자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대비하며 준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약개발 업무를 지원하는 CDO 플랫폼 확장에 속도를 내고, 에스티팜은 약 1500억원을 투입해 에스티팜 제2올리고동을 짓고 있다. 특히 에스티팜은 미국 생보법 이슈로 올리고핵산 점유율 세계 4위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의 물량도 일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턱없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초부터 미국에서 생물보안법 제정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도 인도와 나란히 수혜국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정부가 계획한 제약·바이오 R&D 예산은 1조5910억원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CDMO 투자액은 한정돼 있어 인도 정부의 PLI 인센티브 규모에 견줘보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일단 규모의 경쟁에서부터 밀릴 수 있다”며 “바이오산업 예산이 굉장히 적다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 정부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는 게 더 문제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