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기 중국 제대로 읽기] ⑨
미국 뒤통수 친 중국의 “식칼 신공(神功)”
AI시대, 미·중의 전쟁이 기술전쟁으로 확전 되면서 반도체가 미·중전쟁의 중심에 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첨단반도체 통제는 확실한 기준이 있었다. 2022년10월부터 14nm이하 로직 칩, 18nm이하 공정의 DRAM, 128단 이상의 NAND와 관련된 기술과 장비 그리고 첨단AI 관련기술과 AI칩에 대해 미국은 엄격한 수출통제를 실시했다.
중국의 7nm반도체의 비밀은 '식칼 신공'이다. 7nm이하 로직 반도체는 EUV노광장비가 필수인데 중국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DUV노광장비를 사용해 소위 쿼드러플 패터닝(QPT)을 통해 제품을 만든 것이다. 비유하자면 회를 칠 때 회칼을 쓰면 한번에 회를 뜰 수 있지만 회칼이 없는 중국은 둔탁한 식칼을 네 번 이용해 회를 뜬 것이다.
당연히 증착, 에칭, 화학기계적연마 공정이 두 배 이상 늘어나 수율이 떨어지고 원가는 올라가지만 중국 반도체회사 SMIC는 국유기업이기 때문에 적자는 문제삼지 않고 첨단 제품만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제품을 만든 것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 지연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가 기술, 장비를 넘어서 서비스까지 규제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좌초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많다. 특히 한국 언론에는 중국의 반도체산업에서 부도기업 수가 2022년 5746개에서 2023년에는 거의 두배 수준인 1만900개로 늘어났고 이를 근거로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중국의 반도체산업이 좌초되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부도기업의 숫자 증가만 보면 중국의 반도체산업이 좌초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전체 창업기업 수를 보면 판단이 달라진다. 2023년에 중국의 반도체산업 창업기업 수는 7만400개였고 이 중 1만900개 기업이 부도난 것이다. 1만여 개가 부도났지만 생존한 6만여 개 기업이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부도기업 수의 6배나 된다.
2014년 이후 10여 년간 중국의 반도체산업에서 누적 부도기업은 2.2만개이고 현재 생존기업은 23.9만개로 부도기업 비율은 대략 10%선에 불과하다. 모집단의 수를 보지 않고 부도 난 기업의 절대숫자 증가만 보면, 중국반도체산업의 좌초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팩트는 다르다.
2024년 5월 27일 중국이 3440억 위안(약 64조원)짜리 제3기 국가반도체펀드 설정을 발표했다.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기술, 장비, 서비스까지 봉쇄한 마당에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지원금의 규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반도체에서 소위 카지노에서 사용하는 '마틴게일 베팅(the martingale betting)'을 하고 있다. 마틴게일 베팅'은 돈을 잃을 때마다 두배의 돈으로 베팅해 나가는 방법이다. 중국의 2014년 1기펀드가 19조원, 2기펀드가 38조원인데 3기 펀드는 1, 2기를 합친 것보다 더 큰 64조원을 투자한다.
역사상 최대라고 하는 미국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위해 내건 Chips법의 반도체 보조금이 5년간 총 527억 달러(약 72조원)인데 이 중 반도체생산에 지원되는 자금은 390억 달러(약 53조원)이고 R&D보조금이 132억 달러(약 19조원)이다.
중국의 이번 반도체 보조금 64조원은 미국의 생산보조금 53조원을 훌쩍 뛰어 넘는 규모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을 하는 나라 중국은 미국의 기술 봉쇄로 반도체 굴기가 지연될 수는 있지만 포기는 없다.
중국 반도체산업, 제재의 역설(The paradox of regulation)을 주목
반도체에서 미국의 현재와 같은 기술, 장비, 서비스의 규제를 만약 다른 서방 기업이 당했다면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가 뒤에서 받치고 있기 때문에 제재 받은 중국 기업들 모두 멀쩡하게 살아있다. 이론상으로는 2018년 미·중 경제전쟁 이후 중국 반도체산업의 자급률은 떨어져야 정상인데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19년 15%에서 2023년 23%로 8%p나 더 높아졌다.
미국은 2021년부터 화웨이와 중국 반도체 기업 SMIC에 대한 모든 장비와 기술 수출을 중단하도록 했다. 중국의 반도체생산량을 보면 2022년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미국의 장비제재 때문에 생산차질이 생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2023년 하반기부터 미국의 반도체장비와 기술통제는 더 심해졌는데도 중국의 반도체 생산량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장비와 기술의 국산화를 통해 생산 정상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반도체장비 국산화에도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2023년 전 세계 top10 반도체 장비회사의 반열에 중국의 나우라(北方華創)가 6단계나 뛰어올라 8위로 등극했다. 한국의 세메스는 9위에서 10위로 오히려 순위가 하락했다.
중국은 ASML이 독점하고 있고, 미국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노광장비 국산화를 시작해 90nm, 60nm 노광장비를 이미 상용화했으며 현재 28nm 노광기를 테스트하는 중이다. AI 칩에서도 천하를 장악한 엔비디아 GPU칩에서도 화웨이가 중국산 GPU로 도전하고 있고 이젠 엔비디아의 H20 같은 보급형은 더 이상 엔비디아 제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술수준이 높아졌다.
중국 반도체산업에는 아이러니지만 '제재의 역설(The paradox of regulation)'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규제가 강해지자 중국이 반도체산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반도체 자급체계와 국산화를 더 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
중국의 지금 다같이 잘살자는 정치 어젠다인 '공부론(共富論)'은 여론이 나쁘면 접어 둘 수 있지만 반도체는 나라가 망해도 못 접는다. 중국은 원자폭탄 개발하듯이 모든 국가의 자원을 총동원하는 거국체계를 가동하고 “10년에 칼 한자루만 간다”는 심정으로 반도체 국산화에 올인하고 있다.
반도체는 AI 전쟁시대의 군수품이고, 반도체 보조금은 국방비다. 반도체전쟁은 쩐의 전쟁이고 밀리면 죽는 전쟁, 뒷북치면 죽는 전쟁, 2등 하면 죽는 전쟁이다. 첨단 파운드리 FAB 하나 짓는데 250억 달러가 들어간다. 돈 태워서 만드는 첨단 반도체산업은 돈이 경쟁력이다. TSMC를 빼고는 연간매출액이 250억 달러가 넘어가는 기업이 없다. 첨단 파운드리 FAB은 돈을 태워서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투자능력, 자금력이 경쟁력이다.
ROE(자기자본이익률)를 중시하는 서방 기업은 수익이 나지 않으면 투자하기 어렵다. 하지만 반도체를 국가안전을 책임지는 군수산업이라고 보는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는 이익이 아니라 '기술', 수율이 아니라 '제품'만 나오면 적자 나도 상관없다. 국유기업인 반도체회사가 투자하다 적자 나서 자본이 잠식되면 대주주인 정부가 증자해서 보충하고, 투자금이 떨어지면 국가펀드가 지원하는 식이다.
전 세계 파운드리 매출 순위를 보면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의 SMIC는 2021년에 5위에 머물렀지만 2024년 2분기에는 대만의 UMC,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Global foundry)를 제치고 세계 3위로 부상했다. 1위인 대만의 TSMC를 100으로 보면 한국의 삼성은 TSMC의 5분의 1 수준이고, 중국 SMIC는 한국 삼성의 2분의 1까지 추격해 오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장비에서 미, 일, 네덜란드의 세계1위 제품을 따라 잡는 것은 긴 시간이 걸리는 문제지만 미, 일, 네덜란드 장비보다는 성능이 낮은, 한국이 만들고 있는 장비는 중국의 실력과 국산화 정책 드라이브면 단기간에 중국산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이미 중국의 2023년 반도체 장비수입을 보면 94%나 급증했는데 일본, 미국, 네덜란드는 다 증가했지만 한국만 38% 감소한 것이 증거다. 한국은 미국의 반도체 기술 봉쇄를 뚫기 위한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전략을 절대 낮게 보면 안된다. 중국의 반도체산업은 좌초가 아니라 재굴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