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997년 대법원은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 재직 당시 전달한 30억원대 자금이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과 최 선대회장이 사돈 사이이기 때문에 굳이 돈을 건네지 않아도 정권 차원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을 최 선대회장이 인지했다는 사실 △최 선대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한 차례 30억원을 건넸으나 노 전 대통령이 이를 거절한 사실 △최 선대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거절 의사를 경험한 후 사돈 관계에 있는 대통령에게 돈을 건네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이후 돈을 건네지 않은 사실 등을 이유로 최 선대회장의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선경(SK)그룹이 대한텔레콤(현 SK C&C) 인수 등에 있어 다른 경쟁기업보다 우대를 받은 흔적이 없다며 뇌물죄의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와 관련 판결문에는 "단지 공여된 금액이 30억원으로서 많고 공여자가 재벌그룹의 경영자라는 것 자체만에 의해 피고인 노태우가 대통령의 직무의 대가로 위 금원을 뇌물로서 수수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명시됐다.
대법원이 당시 판결을 참고할 경우, 고등법원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최 회장의 특유 재산인 SK 관련 주식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본 것을 파기환송할 가능성이 커진다. 과거 대법원 판결을 검토하지 않은 명백한 법리상 오류이기 때문이다.
또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입법부인 국회가 노태우 비자금 자체에 대해 바뀐 시대 상황 등을 반영해 되짚어 볼 수는 있지만 개인의 이혼소송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국정감사는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지난달 노 관장과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 문화센터원장,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국회가 노태우 비자금을 다시 문제 삼는 이유는 SK그룹이 "6공화국의 비호가 없었다"며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의 재산분할액이 부당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국감 증인 채택은) 사실상 최 회장에게 상고심을 포기하고 순순히 재산분할을 하라는 압박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그 근거로 노태우 비자금을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법원이 '뇌물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사건을 두고 국회가 재차 시비를 따지는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재헌 법무법인 천고 대표 변호사는 "국회는 법을 제정하는 곳으로 과거의 판결을 두고 현대의 시각으로 다시 짚어 볼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개인의 이혼소송 등에 국회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