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일본 총리를 겸임할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67)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대립해 온 '안티 아베' 정치인으로 통한다. ‘4전 5기’ 도전 끝에 집권 여당 당수 자리에 오른 이시바 총재는 대규모 금융완화로 대표됐던 아베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금융완화·재정지출·성장전략)를 끝내고 본인만의 ‘이시바노믹스’에 색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1986년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당시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정치계에 입문한 이시바 신임 총재는 12선인 베테랑 정치인으로 지난 38년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방위상, 농림수산상 등을 지낸 정책통으로 꼽힌다. 이번 선거를 마지막 도전으로 삼고 결의를 다져온 그는 2012년 이후 지난 12년간 일본 경제 정책을 이끈 아베노믹스를 끝낼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아베노믹스가 공격적인 초완화 통화정책, 기동적 재정정책, 거시적 구조 개혁을 강조했다면 ‘이시바노믹스’는 금리 인상 기조를 통한 물가 안정, 임금 인상으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탈피, 노동 개혁으로 비정규직 해소 등을 목표로 잡았다.
따라서 이시바 총재의 승리로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기조가 한층 뚜렷해질 전망이다. 그는 27일 당선 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것은 물가 안정 임무를 맡고 있는 BOJ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완화적 통화정책 폐지가 신중하게 진행된다면 그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금리 인상 용인을 시사했다. 이에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당초 BOJ의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이 총재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에 146엔까지 치솟으며 엔화 약세(환율 상승)를 연출하기도 했으나 이시바 총재의 당선이 확정되자 142엔대로 하락하며 강세 전환했다.
일본 노린추킨 연구소의 미나미 다케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경제 정책 관점에서 일본은 아베노믹스에 이별을 고하게 됐다"고 평했다.
스위스 금융그룹 롬바르드 오디에 싱가포르의 이호민 선임 거시 전략가 역시 "이시바가 이끄는 신임 내각은 전체적으로 현재 BOJ의 점진적인 정책 정상화 계획을 지지할 것"이라며 "이로 인해 향후 수개월간 엔화는 더욱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BOJ가 12월에 한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고, 12개월 엔·달러 환율 전망치는 135엔으로 제시했다.
또한 이시바 총재는 농림수산상과 초대 지방창생상을 역임한 만큼 1차 산업 및 지방을 중시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농업, 어업, 임업,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지방교부금을 현격히 늘릴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정책에서는 ‘원전 제로’에서 궤도를 수정해 원전 활용을 내세운 기시다 정권의 노선을 어느 정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공급망 복원·유지 측면에서 일본 기업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유턴)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이 밖에도 이시바 총재는 다카이치, 고이즈미 신지로 등 경쟁자들과 달리 과거사 등 한국과 갈등 문제 해결에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는 과거 공개 발언을 통해 태평양 전쟁을 일본의 ‘침략 전쟁’이라고 지적하며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이 납득할 때까지 일본이 사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시바 총재의 군비 확장 주장은 한국과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그는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설과 미국의 ‘핵공유’ 논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시바 총재는 27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치른 28대 총재 선거에서 결선까지 가는 접전 끝에 새 리더 자리에 올랐다. 임기는 2027년 9월 30일까지 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