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 대비 –0.2% 성장을 기록했다. 2022년 4분기 이후 첫 역성장이었다. 한국은행은 1분기에 1.3%의 깜짝성장을 기록했던 터라 이 역성장을 기저효과에 따른 정상적인 현상으로 판단하고 올해 연간성장률을 2.5%로 유지했다. 이는 전쟁 중인 러시아의 예상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푸틴 대통령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는 상반기에 4.6% 성장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금년도에 각각 2.9%, 2.6%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지출항목별로 보자면 내수(소비+투자)와 순수출 모두 0.1%포인트씩 역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 중에서는 민간소비가 1분기보다 0.2%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2.1%를 기록하여 1분기에 이어 2%대 하락을 이어갔다. 순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5분기 만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결정하는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의 네 가지 구성요소별로 중장기적 전망을 살펴본다면 그리 낙관적이지는 못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4 구성요소와 관련된 윤석열 정부의 정책방향이 성장과 혁신을 저해하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출을 먼저 살펴보자. 윤석열 정부는 수출을 자기 목적으로 하면서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어 중장기적인 수출잠재력과 수출시장을 파괴하는 무모함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부작용을 자초하고 있다. 첫째, ‘영업사원 1호’의 활약이 먼저 전방위 외상 수출에서 나타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K9 등을 최대 30조원 규모로 수입하겠다는 의향을 비치면서 한국 정부의 지급보증을 포함하는 전적인 금융지원을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폴란드 무기의 수입마저 요구하고 있다. 폴란드로서는 ‘외상이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자세이다. 둘째는 수출상품보다 더 값질 수도 있는 미래 핵심산업을 ‘끼워팔기 상품’처럼 제공하고 있다. 체코와 원전수출을 협상하면서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협력이 ‘덤’처럼 취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원래 수출상품인 원전의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셋째, 세일즈외교에 재벌총수들을 직접 대동함으로써 영업활동을 방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글로벌 전략을 흐트러놓고 있다. 경제는 위신이 아니라 실리이다. 넷째, 협상에서 일찌감치 조급증을 보여 상대방에게 협상의 우위를 내주고 있다. ‘실적’을 임기 내 마무리하겠다는 과욕을 보이고 있다. 다섯째, 당장의 협상 건에만 매몰되어 상대방의 기회주의적 접근에 대응하느라 버거운 모습이다. 원전 협상에서 프랑스는 체코에게 한국의 대안이 되고 있다. 초보 영업사원은 눈앞의 성과에 매몰되어 종합적인 손익계산서에는 관심이 적다. 그래서 체코 정부는 물론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상에서도 끌려다니고 있다. 여섯째, 상품과 함께 공장을 수출하여 결국 미래의 수출을 잠식할 뿐만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를 양성하여 한국의 수출주도성장을 자멸로 이끄는 ‘가짜 수출’을 실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소비수요를 진작하기 위한 정책에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 즉 전 국민의 소득이 꾸준히 증대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임금소득이 핵심일 것이다. 적정한 임금인상은 핵심적인 혁신 동인이다. 임금인상을 수용하면서 이윤을 확대하기 위한 혁신이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성장방식이고 자본과 노동이 상생하는 성장경로이다. 하지만 자본에게 혁신은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그래서 임금을 억제하는 ‘손쉬운’ 길을 선호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혁신압력의 결핍은 국민경제를 침체에 빠뜨린다. 일본이 걸어온 ‘잃어버린 30년’이 그 길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헌법 제32조 ①항에 따라 “적정 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임금인상을 적정 범위에서 수용하면서 기업 역시 혁신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그것이 헌법상의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면서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헌법 제119조 ①항)하는 길이다.
내수진작을 위해서는 가계부채를 시급히 진정시켜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최근 정례보고서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가계, 기업 등) 비율이 지난해 말 222.7%에 달해 100%를 넘었다”면서 “부채 상환과 이자 부담이 성장을 저해하기 시작하는 변곡점에 다다랐다”고 경고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BIS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주택 수요가 늘어나는 동안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업종에서 건설·부동산업으로 신용이 옮겨가는 자원배분의 왜곡현상에도 주목했다. 이런 신용배분의 왜곡이 과잉 투자를 의미할 수 있으며 이는 나중에 관련 대출 증가가 둔화한 뒤에도 생산성과 성장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BIS는 진단했다.
기업투자의 장려는 현재 상품과 함께 해외로 수출되는 공장을 국내로 돌려세우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신규투자를 위한 재원도 충분하다. 한국은 이미 자본과잉국가이다. 수출입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해외직접투자는 633억8300만 달러에 달했고 대미 투자가 중심이 되는 북미지역 투자는 2021년부터 급증하여 3년 연속 300억 달러를 넘고 있다. 게다가 자본도피처로 분류되는 룩셈부르크, 케이맨제도에 대한 투자가 각각 16.4억 달러, 12.6억 달러로 둘을 합하면 대미 투자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서 생산적인 투자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불평등을 교정할 수 있는 조세재정정책이 정부정책의 한 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세금은 소득이나 재산이 없는 곳에는 부과될 수 없으므로 감세는 출발점에서부터 이미 부자를 위한 정책이다. 감세는 언제나 부자감세이다. 감세는 불평등도를 높일 수밖에 없으므로 감세는 성장에 역행하는 선택이다.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정부가 지출도 많이 하는 정책이 성장을 촉진한다. 지금 정부처럼 적게 걷어 적게 지출하면 국가는 결국 사멸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수출주도성장’은 무늬도 성장전략이 아니다. 수출을 늘리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성장을 뒷받침하지는 더더욱 못하니 수출주도성장이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하다. 인재 유출, 자본 유출, 기술 유출을 방조하거나 장려하면서 수출주도성장을 무너뜨리는 지름길을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의 무기력함은 한국판 수출주도성장 자체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편법, 꼼수, 거짓말, 궤변 없이 유지될 수 없다면 수출주도성장을 지속할 정부 역량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주도성장을 계속 시도하다가 점차 소멸하거나 질적으로 새로운 성장경로로 ‘단절적 진화’를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묘수가 아니라 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