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각각 경쟁력을 갖고 잘살면 저출생 문제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수 있다.” 지난 7월 말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 맥락에서 윤 대통령은 저출생·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지역 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했다. 작년 9월 부산에서 개최된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선포하면서 펼쳤던 “지역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다”는 선언과 같은 맥락이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교육이 지역 발전의 핵심이라고 재차 역설하면서 “지역 산업과 연계된 교육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교육을 통해 지역 인재를 양성해서 기업을 유치하고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 생활을 개선하면 지역 소멸과 인구 감소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인과관계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인과사슬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을 유치하는 지역의 책임이다.
현 정부의 ‘지방시대’ 선언은 모처럼 다양한 현안 사이의 내적 인과관계에 주목하면서 핵심을 관통하는 논리를 부분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인과사슬에는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허점이 너무 많아 시동도 걸기 전에 유명무실화되면서 ‘지방시대’에 역행하는 ‘말 따로 행동 따로’가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2024년 대한민국의 지역경쟁력 지도는 지난 60년의 불균등 성장전략의 결과이지 이제 비로소 경제성장을 시작하는 나라의 지도가 아니다. 그래서 윤 정부가 ‘지방시대’를 시작하면서 현재 수준의 ‘지역경쟁력’에서 출발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지역이 따를 수밖에 없는 시장과 자본의 논리는 바로 ‘경쟁력’을 이유로 불균형과 불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실패에 대한 성찰의 결과가 '지역균형 발전'에 관한 헌법조항들이다. 대표적으로 제123조 ②항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는 조항은 바로 정부의 구상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정부가 추구할 지역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지역균형발전’이지 ‘지역경쟁력’이 아니다.
‘지역경쟁력’에 기반한 일자리 창출은 경제이론 측면에서도 근거가 희박하다. 소비자 이익을 보호하고 혁신을 추동하는 동력으로서 시장경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경쟁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경제학의 정설이다. 이에 반해 정부가 표방하는 ‘지역경쟁력’에 기반한 자유경쟁은 지역불균형의 심화로 귀결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파리 올림픽 선수단의 선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강조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은 대한민국 지역경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부의 지방 일자리 창출과 교육 사이의 연관관계도 완전히 뒤집혔다. 윤 대통령의 ‘지방시대’ 구상이 작동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재가 있는 곳으로 기업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공장이 있는 곳으로 인재들이 몰려드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현실이다. 한 국가 내에서 인구가 이동하는 현상은 ‘이농’ 또는 ‘도시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로 요약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역 편중의 산업지도를 재편하는 것이 지역균형, 지방시대의 출발점이다.
“저출생·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당장 일할 사람들이 부족한 상황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윤석열표 ‘지방시대’의 상황 인식도 저임금 경제를 고수하려는 핑계일 뿐이다. 청년층(15-29세)에만 소위 ‘실망 실업자’가 405만8000명 엄존하는 현실에서 저임금 외국인 노동력을 수입해야 할 필요성을 인구대책으로 역설하는 대통령을 보유한 대한민국은 불행하다.
윤 정부의 ‘지방시대’ 선언은 정책현실에 번번이 배신당하고 있다. 최근 하남시가 동해안과 수도권을 잇는 전력망의 핵심 시설인 동서울발전소 옥내화와 증설사업을 불허하고 나서면서 수도권 전력 공급, 특히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공급 차질이 예고되고 있다. 용인클러스터는 필요한 전력 10GW 중 3GW는 신규 화력발전소 6기로 조달하지만 나머지 7GW는 다른 지역에서 끌어와야 할 만큼 수도권의 수급 불균형은 심화될 전망이다. 2037년을 목표로 동해안의 원전과 호남 지역의 재생에너지를 용인클러스터와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장거리 송전망이 구축될 예정이다. 사업비 3조7100억원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은 14개 교류(AC) 선로이며 총 1153㎞에 달한다. 이러한 비효율을 무릅쓰고 지방의 태양광에너지를 수도권에 집중 공급하는 것은 첫째, ‘지방시대’에 역행하는 수도권 집중을 더욱 심화시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둘째, 2037년까지 태양광에너지의 초과(?) 공급 상태를 해소할 수요대책, 즉 기업이나 공장을 지역에 유치할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도 비효율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호남 지역 계통포화 해소를 위해서는 전력망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이옥현 산업부 전력정책관의 판단은 호남 지역을 태양광 생산지로만 보는 일면적 판단이다. 호남에서 생산한 전력이 호남에서 소비될 수 있다면 저비용의 전력 수급이 가능해질 것이다. 셋째, 제주와 호남의 태양광 에너지가 용인클러스터에서 소비된다면 정작 ‘RE100’ 공장은 이 지역에 입주할 수 없게 된다. 대통령의 공언과는 반대로 이 지역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지역 불균형은 심화될 것이다. 넷째, 정부 방침대로 호남의 태양광 추가 건설을 2031년까지 금지하면 국가 차원에서 ‘RE100’이나 탄소중립 비전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태양광 발전 확대와 공장 유치를 병행하는 것이 탄소중립 비전에 부합할 것이다. 다섯째, 태양광 소비의 수도권 집중은 태양광이 가지는 분산형 에너지로서 장점을 철저하게 훼손하는 잘못된 ‘경로’로 진입하는 길이다.
정부의 ‘지방시대’ 구상은 수출주도성장에 의해서도 배신당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중국에 이어 베트남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것으로 최근 보도되었다. 베트남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투자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경제성장, 일자리 유출이다. 작금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정부정책 방향은 삼성전자의 리쇼어링을 최대한 설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정반대로 내친김에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돕기 위해 토지 공급과 조성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K-산업단지’를 수출하여 “우리 기업들의 해외 도전을 통한 국익 확대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궤변을 던졌다. 세계에 이런 정부는 없다. 베트남의 공급망 강화가 대한민국의 국익일 수는 없다. 국내에 공장이 세워지는 것이 국익이다.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는 말려야 할 사안이지 정부가 ‘K-산업단지’까지 꾸려가면서 장려할 일은 결코 아니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건설할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호남 태양광 단지에 건설한다면 ‘RE100’, 지역 균형 증진, 지역 일자리 창출, 세수 확충, 지역 소멸 지연 등 적어도 1석5조는 될 것이다.
상품 수출만 놓고도 낙수효과의 결핍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이제는 공장과 일자리를 유출하면서 ‘수출’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대통령과 재벌그룹 회장들은 해외를 다니면서 현지 생산, 경제협력을 구실로 공장과 일자리를 수출하는 데 진심이다. 산업부 장관은 이제 ‘K-산업단지’라는 ‘마법’을 걸어 경제성장과 청년 일자리를 통째로 해외에 퍼 나르는 궁리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전과 정부가 공장의 수도권 집중에 발맞추어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수도권 송전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기업과 일자리는 해외로 나가거나 수도권으로만 몰려간다. 지방은 수도권의 ‘내부 식민지’인가?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