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미 대선, "끝날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2024-09-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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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뉴스]





11월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 판도의 최대 변수인 TV토론이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미국은 1776년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독립 선언문을 채택하고 1787년 헌법을 제정했다. 또 이 헌법이 제정된 9월 17일을 헌법의 날(Constitution Day)로 정하고 영국에 대한 식민지 저항의 중심이자 미 합중국 최초의 수도인 필라델피아에 국립헌법센터를 세워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두 달 전 유세 중 피격을 당했던 곳이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바통을 넘긴 바이든 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위스콘신, 미시건과 함께 소위 미국 오대호 인근의 쇠퇴한 공업지대, 소위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3대 경합주로 꼽히는데, 펜실베이니아 대의원 숫자가 19명으로 가장 많아 공화당과 민주당의 선거 운동이 가장 치열한 지역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러스트 벨트 백인 저소득층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해 트럼프에게 패배하며 미 역사상 최초 여성 대통령의 꿈을 접었다. 4년 후인 2020년 바이든은 이 3곳에서 개표 초반 열세를 딛고 역전승을 해 트럼프의 재선을 막았다. 이번 TV 토론이 진행된 필라델피아는 미국 내에서 진보 성향이 가장 강한 곳으로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은 이 한 곳에서만 80% 넘는 몰표를 얻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서재필 박사 등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던 이 도시는 1990년대 후반 무명배우이던 실베스터 스탤론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복싱 영화 '로키 발보아(Rocky Balboa)' 무대이기도 하다. 일부 미국 언론은 이번 트럼프와 해리스의 TV 토론을 영화 로키 시리즈 이후 필라델피아가 주최하는 세기의 빅 매치로 부르기도 했다.   

ABC 방송사가 주관해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100분간 진행된 이번 토론은 결론부터 말하면 날카로운 잽으로 노익장 트럼프를 수세에 몰아넣은 해리스의 판정승이었다. 지난 6월 27일 CNN이 애틀랜타에서 주관한 TV 토론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에 KO승을 거두고 현직 대통령을 대선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구원 등판한 해리스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전후로 돌풍을 일으키더니 트럼프의 절대적 우위가 점쳐졌던 선거판을 초접전 구도로 바꾸어 놓았다. 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트럼프의 유세 도중 발생한 총격이 이번 대선에서 최대 변곡점이 될 것처럼 보였으나 트럼프 캠프는 얼마 되지 않아 해리스를 중심으로 결집한 민주당 지지 세력의 대반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때 해리스는 경합주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기도 했으나 이번 TV 토론을 앞두고는 공화당 지지세력이 다시 결집하며 해리스의 우위가 사라지며 트럼프의 엄청난 회복력을 과시했다. 

그리하여 10일 개최된 필라델피아 TV토론에서 우위를 점하는 후보는 남은 대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 CNN 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SSRS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날 토론을 지켜본 등록 유권자의 63%는 해리스 부통령이 더 잘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잘했다는 응답자는 37%였다. 상대방 후보가 다르지만 트럼프는 지난 6월 TV 토론 결과와 정반대의 결과를 받은 것이다. 당시엔 토론을 지켜본 유권자의 67%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잘했다고 대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더 잘했다는 응답률은 33%였다. 

해리스와 민주당에 더욱 고무적인 소식이 있다면 이번 토론 직후 나온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해리스 부통령 지지 빌표이다. 스위프트는 이날 본인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나는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와 (민주당 부통령 후보) 팀 월즈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나는 해리스가 권리와 대의를 위해 싸우기 때문에 그녀에게 투표할 것이고 그것들을 옹호할 전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스위프트는 인스타그램 폴로어만 2억8000만명에 이르는 대형 스타로 그의 지지 선언이 초접전 양상인 이번 선거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지 주목을 끌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낙태, 이민 등 거의 모든 이슈에서 거친 공방을 주고받았다. 전반적으로 트럼프는 해리스의 날선 공격에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며 지난 6월 바이든과 토론할 때 보여주었던 여유 있고 침착한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이번 토론에서 자신감을 얻은 해리스 부통령 측은 트럼프 측에 2차 TV 토론을 제안했다. 

바이든 후보의 사퇴로 갑자기 대선 후보가 된 해리스 부통령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칙적 공세와 노련미를 감당할 내공과 준비가 돼 있을지 의문을 갖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TV 토론에서 3차례 대통령에 출마하며 TV토론만 6차례 경험이 있는 노련한 트럼프에게 기세에서도 언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대통령 후보로서 자질과 능력에 대한 검증의 최대 관문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8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트럼프에 막혀 이루지 못한 미국 첫 여성대통령 탄생의 역사를 쓰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아직 미 대선의 시간과 변수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트럼프와 해리스의 제2차 TV 토론이 성사될지도 관심사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던 미국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다음 주 미 연방제도는 기준금리의 인하폭을 고심하고 있다.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등 2개의 전쟁도 어떤 후보에게 유리하게 전개될지 지켜보아야 한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이번 토론에서 대체적으로 해리스가 선방했지만  팽팽한 선거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녹아웃(knockout) 타격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해리스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이민 문제에 있어서는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번 대선 토론을 단 며칠  앞두고 트럼프는 그를 괴롭히던 사법리스크에서도 벗어났다. 당초 이달 18일로 예정되었던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의혹' 관련 형사 재판의 형량 선고가 대선 이후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트럼프의 정치적 승리'라고 미 언론은 보도했다. 최대 악재인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면서 막혔던 돈줄이 다시 트럼프 캠프로 몰려들 조짐이다. 트럼프에겐 역공을 펼칠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 

문득 로키 발보아가 영화 속에서 던진 대사가 생각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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