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가지 않은 길을 택한 K-디스플레이

2024-09-03 00:10
  • 글자크기 설정

이동욱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기고

이동욱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사진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이동욱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사진=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필자가 좋아하는 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는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시인은 두 갈래의 길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가본 길과 가지 않은 길,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 누군가 가본 길을 선택할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선택하기 쉽지 않다. 또한 주위의 우려를 견뎌야 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K-디스플레이는 지난 30년간 항상 가지 않은 길을 택하며 디스플레이산업의 ‘코리안 웨이’를 개척해왔다.

1990년 일본 샤프가 1세대 LCD를 최초로 양산하며 디스플레이산업을 선도할 때 한국은 일본보다 뒤늦은 생산에도 9년 만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1990년대 말 아시아에 번진 경제위기로 당시 세계 1위인 일본이 5세대 LCD 투자를 지체할 때 한국은 과감하게 세계 최초로 5세대 LCD 투자를 단행했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결과 한국은 글로벌 수요 증가에 적기 대응하며 급성장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중기거점·선도기술개발사업 등 시기적절하게 대규모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하고 국내 생산이 불가한 제조장비에 할당관세 추진 등 민관 협력의 결실로 한국은 14년간 LCD 세계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후 K-디스플레이가 걸어온 길은 어떠한가? 중국의 대규모 LCD 생산으로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 등 악순환이 시작되자 한국은 OLED 시장으로의 전환이라는 가지 않은 길을 가장 먼저 선택했다.

LCD가 호황이던 2005년에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에 가장 먼저 투자해 2007년 OLED 스마트폰, 2013년 55인치 OLED TV 등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간 K-디스플레이 앞에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었다. 국내 산업에서 17년간 세계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산업도 디스플레이가 유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K-디스플레이가 선택해 온 여정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디스플레이시장에서 LCD가 65% 이상을 차지하는데 한국이 LCD를 포기하고 OLED를 선택한 것이 과연 적절했냐고 한다. 또한 중국이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능력을 확충하며 LCD 시장을 잠식한 것 같이 OLED 시장도 조만간 중국에 잠식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전통적인 디스플레이 세트 시장인 TV와 모바일은 이미 성숙기에 진입해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가능성은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OLED가 가진 초저전력, 고해상도, 유연한 폼팩터, 투명성 등 특성을 바탕으로 K-디스플레이는 시장을 확대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EX-OLED의 길을 가는 중이다.

앞뒤로 접히는 OLED 스마트폰, 필요할 때 꺼내보는 슬라이더블 OLED, 인공지능(AI)용 제품에 적용될 밝기와 소비전력을 향상시킨 탠덤 OLED 까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 확보를 통해 그간 저가 제품 출시로 시장을 잠식해온 경쟁국과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또한 OLED를 통한 차량용, XR, 투명 디스플레이 등 신시장의 영역을 확대 중이다. 이 3대 분야는 연평균 31.5%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OLED는 현재 시장 비중 38%에서 2028년에는 41%로 전망되는 등 점차 LCD 시장을 대체하고 있기에 OLED로 전환하는 것은 틀린 선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 K-디스플레이는 수분과 산소에 취약한 유기발광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의 길도 가려고 한다.

얼마 전 제주에서 열린 디스플레이학회에서 삼성디스플레이가 평평한 화면 위 한라산이 불쑥 솟아오르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며 눈길을 끈 바 있다. 여기에는 무기발광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 기술이 적용됐는데 무기발광 디스플레이는 초소형부터 무한대 크기로 제작 가능해 웨어러블, 대형 사이니지, 옥외광고 등 열릴 시장이 무궁무진하다.

정부는 지난 5월 5000억원 규모의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예타사업을 통과시키고 내년도 R&D 예산안을 대폭 확대한다는 결정을 했는데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간 K-디스플레이가 가지 않은 LCD와 OLED의 길을 갈 때마다 정부가 R&D 지원과 국가전략기술 지정 등 정책 지원으로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한 만큼 이번에도 차세대 핵심 기술 선점 및 기술 종주국으로서 위상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두 갈래 길에서 확신이 없어 한숨을 쉬며 오래 고민한 것처럼 무기발광 디스플레이의 길을 가본 적이 없기에 우리는 훗날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다. 다만 가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선택할 때마다 정부의 R&D 지원을 바탕으로 성공의 역사를 기록한 것처럼 현재 길 위에 있는 OLED, 이제 가려고 하는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모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