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길과 가지 않은 길,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 누군가 가본 길을 선택할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선택하기 쉽지 않다. 또한 주위의 우려를 견뎌야 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K-디스플레이는 지난 30년간 항상 가지 않은 길을 택하며 디스플레이산업의 ‘코리안 웨이’를 개척해왔다.
1990년 일본 샤프가 1세대 LCD를 최초로 양산하며 디스플레이산업을 선도할 때 한국은 일본보다 뒤늦은 생산에도 9년 만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1990년대 말 아시아에 번진 경제위기로 당시 세계 1위인 일본이 5세대 LCD 투자를 지체할 때 한국은 과감하게 세계 최초로 5세대 LCD 투자를 단행했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결과 한국은 글로벌 수요 증가에 적기 대응하며 급성장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중기거점·선도기술개발사업 등 시기적절하게 대규모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하고 국내 생산이 불가한 제조장비에 할당관세 추진 등 민관 협력의 결실로 한국은 14년간 LCD 세계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다.
LCD가 호황이던 2005년에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에 가장 먼저 투자해 2007년 OLED 스마트폰, 2013년 55인치 OLED TV 등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간 K-디스플레이 앞에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었다. 국내 산업에서 17년간 세계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산업도 디스플레이가 유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K-디스플레이가 선택해 온 여정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디스플레이시장에서 LCD가 65% 이상을 차지하는데 한국이 LCD를 포기하고 OLED를 선택한 것이 과연 적절했냐고 한다. 또한 중국이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능력을 확충하며 LCD 시장을 잠식한 것 같이 OLED 시장도 조만간 중국에 잠식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전통적인 디스플레이 세트 시장인 TV와 모바일은 이미 성숙기에 진입해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가능성은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OLED가 가진 초저전력, 고해상도, 유연한 폼팩터, 투명성 등 특성을 바탕으로 K-디스플레이는 시장을 확대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EX-OLED의 길을 가는 중이다.
앞뒤로 접히는 OLED 스마트폰, 필요할 때 꺼내보는 슬라이더블 OLED, 인공지능(AI)용 제품에 적용될 밝기와 소비전력을 향상시킨 탠덤 OLED 까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 확보를 통해 그간 저가 제품 출시로 시장을 잠식해온 경쟁국과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또한 OLED를 통한 차량용, XR, 투명 디스플레이 등 신시장의 영역을 확대 중이다. 이 3대 분야는 연평균 31.5%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OLED는 현재 시장 비중 38%에서 2028년에는 41%로 전망되는 등 점차 LCD 시장을 대체하고 있기에 OLED로 전환하는 것은 틀린 선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 K-디스플레이는 수분과 산소에 취약한 유기발광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의 길도 가려고 한다.
얼마 전 제주에서 열린 디스플레이학회에서 삼성디스플레이가 평평한 화면 위 한라산이 불쑥 솟아오르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며 눈길을 끈 바 있다. 여기에는 무기발광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 기술이 적용됐는데 무기발광 디스플레이는 초소형부터 무한대 크기로 제작 가능해 웨어러블, 대형 사이니지, 옥외광고 등 열릴 시장이 무궁무진하다.
정부는 지난 5월 5000억원 규모의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예타사업을 통과시키고 내년도 R&D 예산안을 대폭 확대한다는 결정을 했는데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간 K-디스플레이가 가지 않은 LCD와 OLED의 길을 갈 때마다 정부가 R&D 지원과 국가전략기술 지정 등 정책 지원으로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한 만큼 이번에도 차세대 핵심 기술 선점 및 기술 종주국으로서 위상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두 갈래 길에서 확신이 없어 한숨을 쉬며 오래 고민한 것처럼 무기발광 디스플레이의 길을 가본 적이 없기에 우리는 훗날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다. 다만 가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선택할 때마다 정부의 R&D 지원을 바탕으로 성공의 역사를 기록한 것처럼 현재 길 위에 있는 OLED, 이제 가려고 하는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모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