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을 맞이한 전영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부문장(부회장)이 SK하이닉스와 중국 반도체 기업 사이에서 ‘샌드위치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해서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대형 고객을 확보해 슈퍼사이클(대호황) 기간 동안 메모리·파운드리(위탁생산) 매출과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면서 노사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는 일도 전 부회장에게 주어진 숙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전 부회장은 오는 28일 DS부문장 취임 100일을 맞는다. 반도체 구원투수로 투입된 전 부회장이 취임 후 가장 공을 들인 작업은 주력 사업에는 힘을 주고 성과를 내지 못한 부서는 해체하는 DS부문 조직 개편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연구개발을 맡은 CTO(최고기술책임자) 산하 연구 조직에도 힘을 줬다. 공정 설비 개발을 맡은 설비기술연구소는 반도체 공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연구소로 통합했다.
8월에도 한 차례 소규모 조직 개편을 했다. 부문장 직속이었던 AVP(첨단패키징)개발팀을 해체하고 관련 인력을 TSP(테스트&시스템패키지)총괄로 이전했다. 메모리 반도체 결합을 맡던 TSP총괄과 이종 반도체(시스템+메모리) 결합을 맡던 AVP개발팀을 합쳐서 삼성전자 전체 패키징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대만 TSMC에 밀려 큰 성과를 내지 못하던 첨단 패키징 사업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시각도 있다.
전 부회장이 이렇게 조직 개편에 속도를 내는 이유로는 HBM 등 첨단 제품은 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CXMT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이 생산능력을 확대하며 레거시 D램 시장 잠식을 꾀하고 있는 게 꼽힌다.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샌드위치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구도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매출 기준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D램 시장 점유율은 42.9%를 기록했다. 3년 전(43.6%)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반면 SK하이닉스는 34.5%를 기록하며 3년 전(27.9%)과 비교해 6.6%포인트나 점유율을 확대했다. 레거시 D램보다 공급단가가 높은 최신 HBM D램 시장을 장악하면서 삼성전자와 점유율 격차를 크게 좁힌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CXMT의 생산능력 증설이 완료되는 내년 초부터 레거시 D램 시장에서 중국 메모리 기업의 점유율이 급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난야, 윈본 등 대만 메모리 기업은 점유율이 지속해서 하락하며 D램 경쟁에서 탈락할 전망이다.
중국 기업의 레거시 D램 저가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고부가가치 D램 판매량을 확대해야 하고, 이는 엔비디아 등 미국 대형 팹리스를 고객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전 부회장이 DS부문장으로 취임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엔비디아 HBM3E(5세대) D램 퀄테스트(품질검증)를 통과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엔비디아가 중국용 인공지능(AI)칩에 활용하기 위해 삼성전자 HBM3(4세대) D램을 공급받기 시작한 것을 두고 HBM3E 퀄테스트 통과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SK하이닉스를 HBM 주력 파트너로 두고 삼성전자를 대안으로 고려하는 것은 최신 HBM D램에 힘을 주고 있는 전 부회장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2인자인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을 오는 9월 대만에서 열리는 세미콘 타이완 행사에 파견하며 자사 HBM4 기술·수율 우수성 알리기에 주력할 방침이다. 엔비디아가 2026년 HBM4 D램을 탑재한 신형 AI칩 '루빈'을 출시하는 상황에서 더는 SK하이닉스에 뒤처질 수 없다는 전 부회장의 위기의식이 배경에 있다.
전 부회장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는 민주노총과 접점을 확대하며 점점 강성 노조화하고 있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일이다. 전삼노 조합원은 지난 23일 기준 3만6616명이다. 사측을 압박하기 위한 총파업이 실패했음에도 조합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전삼노 구성원이 대부분 DS부문 소속인 점을 고려하면 사측에 피해를 주더라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전삼노 측 강경한 목소리가 반도체 사업장 내에서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전 부회장은 지난달 1일 전삼노 총파업을 막기 위해 직접 노조 집행부를 만났지만 이들 뜻을 꺾지는 못했다.
이에 재계에선 전 부회장이 지난해 반도체 다운턴(불황)으로 사기가 꺾인 DS부문 직원들을 잘 추스르고, 올 하반기 슈퍼사이클(초호황) 성과에 맞춰 직원들에게 유무형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행보로 강성노조 기세를 꺾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