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 취소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분식회계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2015년이 중요한 이유는 이재용 회장 승계의 핵심 고리인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증권선물위원회가 먼저 지적한 바이오젠의 콜옵션 주석 미기재 관련 행정처분을 취소하는 행정법원 판결이 있었으나 역시 분식회계 여부에 관한 판단은 없었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재용 회장 등의 관련 형사재판에서 위 분식회계 사실을 부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관련 주요 증거들이 압수·수색 과정의 절차상 문제로 증거능력이 부정된 끝에 나온 것이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이번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 미국의 바이오젠과 합작투자로 바이오시밀러 제조사 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로직스로부터 바이오에피스 주식을 49.9%까지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바이오에피스를 단독지배하는 것으로 보아 종속기업으로 인식하고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다.
이후 2015년에는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여 바이오젠과 공동지배를 하는 것으로 보아 개별재무제표를 작성했다. 그렇게 회계처리 방식 변경을 이유로 약 4조5436억원의 처분이익을 인식했다.
2011년 회사 설립 이후 2014년까지 매년 수백억원에 이르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던 회사가 회계처리 방식 변경만으로 갑자기 약 1조896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얻은 결과가 되었다. 2015년이 중요한 것은 그 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 보유지분율이 높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할 경우 삼성전자 등 그룹 핵심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지게 되고 회장직 승계의 핵심 연결고리가 되는 지배구조 변경이었다.
합병비율 산정을 두고 상장회사인 삼성물산은 저평가되고, 비상장사 제일모직은 이재용 회장에게 유리하도록 고평가 되었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 와중에 제일모직의 자회사로 설립 이후 계속 막대한 순손실을 기록하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처리 방식 변경만으로 갑자기 수조원의 이익을 얻는 것으로 되었으니 그 적정성을 두고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금융감독원의 감리 결과 2015년 재무제표의 분식회계 사실을 인정했고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는 과징금 등 행정처분을 했다. 그에 대한 법원 판단이 6년의 심리 끝에 이번에 나온 것이다.
2015년 분식회계 여부의 핵심 쟁점은 2015년에 지배력 변경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가 급등하여 바이오젠의 콜옵션이 실질적 권리가 되었다면서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단독 지배력을 상실하고 바이오젠과 공동지배 관계가 된 것으로 보아 회계처리를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분식으로 보았다. 바이오젠의 콜옵션으로 인한 부채를 인식할 경우 완전자본잠식이 되자 이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해낸 것이라 보았다.
삼성물산 합병일 이후 회계처리 변경으로 2015년말 기준 2조원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인식했으나 변경하지 않았다면 완전자본잠식이 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2015년 9월 16일자 ‘재경팀 주간 업무 현황’ 자료에 의하면 그때 이미 콜옵션 관련 부채를 계상할 경우 완전자본잠식이 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대규모 당기순이익 인식은 뜨거웠던 삼성물산 합병비율 불공정성 논쟁에서 합병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법원이 인정한 분식회계를 당시에 하지 않았더라면 반대의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삼성물산 합병 무효 소송 등의 결론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결국 삼성은 성공적인 분식회계를 한 셈이다. 삼성물산 합병, 이재용 회장 승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소액의 과징금과 손해배상 등만 감수하면 된다. 불공정한 합병을 막는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