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칼럼] '채찍과 당근'에 무너진 대학교육 생태계

2024-08-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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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김영삼 정부에서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으로 많은 대학이 설립되어 고등교육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입학정원보다 입학할 자원이 부족하여 입학정원을 감축하고 부실 대학을 정리하고 있다. 고등교육법 제2조에 명시된 대학의 종류는 (4년제) 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원격대학(방송통신대학, 사이버대학 등), 기술대학, 각종학교 등 7가지이다. 대학알리미의 2024년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 4년제 대학 248개교와 전문대학 166개교에 기타 대학까지 합해서 458개 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에 1.0 이하로 내려간 이후에도 계속 하락하여 2023년에는 세계 최저 수준인 0.72명을 기록했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초·중·고교가 폐교되거나, 초·중등 통합학교 또는 남녀 공학으로 통합된 고등학교도 출현하고 있다. 연쇄적으로 대학 입학자원 급감에 따라 대학 통폐합이 지역사회 쇠퇴 및 소멸을 가속화할 거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형태로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대학 입학정원 감축과 통폐합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의 구조조정 정책과 평가 및 재정지원을 실시해왔다.

김대중 정부에서 1998년에 「국립대학구조조정계획」에 따라 국립대학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2014년부터 국립대학혁신지원(PoINT) 사업을 시행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2003년부터 사립대학까지 포함하여 「대학구조개혁방안」을 실시했고, 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NURI) 사업을 통해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대학에 재정을 지원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대학구조조정 정책으로 강제적 방법을 사용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재정지원대학 정책을 시행했고, 박근혜 정부는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평가 대학을 5단계로 구분하여 입학정원을 줄이도록 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평가 결과 등급에 따라 입학정원을 줄이도록 권고하는 자율적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하였다. 2019년에는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재구조화하여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첫째, 국립대학의 역할과 기능 정립을 위해 추진해온 국립대학 혁신지원(PoINT) 사업을 국립대학 육성사업으로 변경했다. 둘째, 전국의 대학과 전문대를 대상으로 시행되던 대학자율역량강화(ACE+), 대학특성화(CK), 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 대학인문역량강화(CORE), 여성공학인재양성(WE-UP) 사업을 일반재정지원을 위한 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통합하였다. 셋째, 특수목적 지원을 위해 시행하던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LINC+)은 산학협력(LINC+)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글로벌박사양성(BK21플러스) 사업은 연구지원 사업으로 변경했으며, 특성화전문대학(SCK) 사업은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끝으로 윤석열 정부는 대학이 지역 혁신의 중심(hub)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대학지원 행·재정 권한을 17개 시도에 위임·이양하여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사업을 시작하였다.

지난 20여 년 이상 대학평가 결과에 따라 입학정원을 자율 또는 강제 감축하거나 재정지원과 연계하는 ‘채찍과 당근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대학재정지원이란 입학정원 감축과 등록금 동결에 따른 등록금 결손액을 대학에 보전해주는 정도에도 못 미쳐 재정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2009년 반값 등록금 논의를 시작으로 등록금 동결이 시작되었고, 그 후 16년간 대학들은 재정 부족으로 투자를 할 수 없게 되어 대학의 하향평준화와 국제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게 되었다.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평가 결과에 따라 재정을 차등 지원해 왔으나, 문재인정부 이후 사업에 선정된 대학에 일괄적으로 동일 금액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탈락했던 대학도 연차적으로 윤번제처럼 선정·지원하여 대학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동기를 상실하게 했다. 또 대학의 성격과 규모 등을 고려하지 않고 평가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거나, 평가지표의 가중치를 수시로 변경하여 대학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갔다.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평가지표인 학생충원율의 비중을 높이자 일부 대학에서는 신입생과 재학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서류를 조작하거나 지역 주민이나 교직원 아내를 신입생으로 등록하도록 하는 등 편법을 동원한 사례들도 있었다.

대학구조조정을 위한 평가와 재정지원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지만, 폐교 위기에 처한 대학들을 연명시켜주기 위한 지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지원해야 한다. 우선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및 이차전지 등 첨단 분야에 연구환경과 연봉 등을 개선하여 고급 두뇌를 유치할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그리하여 학문 후속세대들이 기초학문은 외면하면서 고수입 직업을 위해 의과대학 등으로 몰리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이어서 미래기술에 반영될 인간의 감성과 창의성을 개발할 인문학 육성에도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새가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듯이 미래세대가 합리성과 감성을 함께 갖출 수 있도록 인문역량강화사업 등은 지속되어야 한다. 인문학 육성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는 K-팝과 K-드라마의 바탕인 K-콘텐츠와 K-문화의 진흥을 위한 일이다.

정부가 대학 등록금을 동결하도록 하면서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실시했지만, 대학 재정난으로 인해 교육과 연구 여건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등록금 동결 후 대학교육 생태계가 붕괴되는 데 16년이 걸렸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그 생태계를 복원하려면 그보다 더 긴 세월 동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은 미국 주립대 등록금의 20%에 불과한 우리 대학의 등록금 동결 해제 및 현실화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어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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