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 후 8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과 비공개 회동을 했다. 여권 내에선 두 사람이 만난 것에 대해 당정 관계 회복 신호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두 사람 관계가 총선과 전당대회를 거치며 파열음을 냈으나 거대 야당을 상대하기 위해 당정 간 반목이 좋을 게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회복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31일 대통령실과 여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오전 한 대표를 불러 약 1시간 30분 동안 비공개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엔 두 사람 간 만남을 조율한 정진석 비서실장만 동석했다.
한 대표의 지도부 인선도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비공개 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한 대표에게 "알아서 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한 대표는 이튿날 친윤(친윤석열) 핵심인 정점식 정책위의장과 면담했고, 서범수 사무총장은 취재진과 만나 "당대표가 임명권을 가진 당직자들에게 일괄사퇴를 해 달라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정책위의장은 대표가 임명권을 가진 자리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비공개 회동은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표는 실제로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표로 취임한 후부터 야당의 극한 견제에 시달리고 있다.
한 대표 취임 이튿날인 지난 24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상황에 변화가 없다면 내일(25일)부터 방송4법과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 등을 순차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고, 25일에 본회의에 상정했다.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은 부결됐으나 방송4법은 여당이 5박 6일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펼쳤음에도 거대 야당의 압도적 의석수를 넘지 못하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사흘간 진행했다. 장관급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사흘이나 진행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아울러 민주당은 청문회 이후 보고서 채택도 보류했다. 윤 대통령이 재송부를 요청하고 임명을 강행하자 민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도 벼르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이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도 여당을 향한 강경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법사위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꺼냈던 모든 국민에게 1인당 최소 25만원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여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시켰다. 두 법안 모두 여당은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중립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도 민주당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고, 민주당은 여당과 협치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당정이 서로 등을 돌리고 싸우는 것은 제 살 갉아먹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