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이란의 개혁파 새 대통령…중동 실타래 푸나

2024-07-17 06:00
  • 글자크기 설정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는 지난 7월 7일, 이슬람력(헤지라)으로 1446년 신년을 맞아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다졌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서는 수많은 민간인 죽음을 양산하는 이스라엘-하마스간 전쟁이 10개월째 계속 중이다. 최근에는 정치적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이 레바논의 헤지볼라와도 전면전을 치를 태세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실질적 자치정부인 하마스와 레바논의 막강한 군사정치조직인 헤지볼라에 대한 배후세력으로 알려진 이란에서 개혁파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꽉 막힌 중동의 전쟁과 혼란상태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지구촌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집중되고 있다.
 
지난 5월 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와 호세인 아미압돌라한 외무장관을 포함한 이란 고위 관리들이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50일 이내에 보궐대선을 치르게 되어있는 이란 헌법 규정에 따라, 6월 28일 대선이 치러졌고,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7월 5일 실시된 결선투표에서 개혁파를 대표하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페제시키안은 헌법수호위원회의 승인과 최고지도자의 최종 재가로 취임식을 통해 7월 30일 제9대 대통령 업무를 시작한다. 대통령 당선자는 이미 국회의장, 사법부 수장, 최고 종교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방문해 국가 현안에 대한 논의를 마쳤고, 끝까지 경쟁했던 보수진영 후보 사이드 잘릴리도 당선자를 직접 방문해 승복하고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줌으로써 이란 대선은 가장 공정한 선거로 마무리되었다. 서방이 우려하는 대로 혼란과 선거부정 없이 수십차례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경험한 가장 민주적인 나라로서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었다. 그러나 최고종교지도자가 막강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국정 장악 능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구식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독특한 이슬람식 신정일치체제의 폐해다.
 
심장외과 출신의 의사이자 소수종족인 아제르인 개혁파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란 예측은 후보 등록 이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개혁을 표방하며 8년간 미국과의 핵협상 타결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2018년 포괄적핵협상안(JCPOA)이 폐기되면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40년간의 경제제재 해제에 들떠있던 이란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큰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었고, 이런 상황이 2021년 대선에서는 에브라힘 라이시라는 초강경 대통령을 선택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런데, 차기 최고지도자로도 물망에 오르던 에브라힘 라이시가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애도 분위기 속에서 이번 보궐대선에서도 보수파가 집권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6월 28일 투표결과는 유권자들의 싸늘한 정치혐오와 최고지도자에 대한 불만을 극적으로 표출해 주었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인한 민생경제 파탄 상황을 구제해주지 못하리라는 팽배한 절망감이 원인이었다. 더욱이 보수파든 개혁파든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이란 국민들은 39.2%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로 신정정권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나마 투표에 참여한 시민들은 개혁파로 유일하게 후보검증위원회를 통과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에게 최다표를 몰아주었다. 비록 과반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1차 투표에서 페제시키안 후보가 1040만표(42%)를 얻어 940만표(38%)를 얻는 데 그친 강력한 보수파 후보였던 사이드 잘릴리와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후보(국회의장)를 따돌렸던 것이다. 2차 결선투표에서는 변화가 감지되었다. 대통령 교체 자체가 결정적 변수나 희망이 될 수는 없을지언정, 그나마 개혁파를 지지하겠다는 여론이 일었다. 같은 보수파 2-3위 후보가 연대를 선언했음에도 적극적으로 투표한 젊은 세대들에 의해 투표율은 49.8%로 10% 이상 올라갔다. 이란 국민들은 54.8%로 페제시키안을 선출했고, 맞대결한 강경 보수 성향의 사이드 잘릴리 후보는 45.2%를 얻는 데 그쳤다. 300만표 이상의 표차로 개혁파를 향한 민심의 향방을 다시 한번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새 대통령 페제시키안이 현 이란 정치시스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아파의 독특한 정교일치 이슬람 신정체제 속에서 대통령 임면권, 국회해산권, 사법, 최정예혁명수비대, 정보조직 등을 최고 종교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심의 향방을 확인한 최고지도자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개혁파에게 일정부분 재량권을 확대해 줄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된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1997년 개혁 성향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정부에서 보건부 차관에 임명되면서 정치에 입문한 후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보건부 장관을 지냈다. 그 후 2008년 총선에 출마한 뒤부터 고향인 아제르바이잔 주에서 내리 5선을 했다. 특정 정당에 속해있지 않고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그의 출신 배경이 오히려 대선 후보 출마 자격을 최종 심의하는 헌법수호위원회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그는 2022년 9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던 이유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던 중 의문사한 젊은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촉발된 이란 내 히잡 착용 반대 시위와 관련해, 완전한 폐지를 내세우지는 못했지만, 인권유린적 히잡 단속을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대외적으로는 서방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극심한 경제난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중동지역의 전쟁 분위기를 의식하듯, 대결보다는 대화와 평화를 통해 안정적인 역내 질서를 확보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물론 이런 정책이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의 적대적 관계 희석,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 대선 이후 미국 행정부와의 대화 재개, 러시아와 중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 같은 순차적인 과제들을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하메네이 이후 최고지도자는 어떻게 누가 선출될 것인가?
 
이란 국민들은 새 대통령 선출로 이란 내부의 근본적인 변화 기대보다는 오히려 85세 고령의 하메네이 이후의 최고지도자 후계구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현재 후보로는 하메네이의 차남인 55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는 혁명수비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로 기득권 혁명 세력들의 안정적 국정 장악을 위한 포석으로 최적의 인물로 평가된다. 또 다른 후보로는 알리레자 아라피가 있다. 그는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위원회’의 핵심 멤버로 있으면서 오랫동안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거론되어 왔다. 라이시 직전 대통령의 장인 아흐마드 알람 올 호다도 유력 후보다. 이란 동부 이슬람도시 마슈하드의 영향력 있는 대표적인 성직자로 활동해 왔다. 최고지도자 선발위원회의 또 다른 핵심 멤버인 아흐마드 카타미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모두가 강경 보수파 인사들이다. 이란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뽑는 민주적 선거보다는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 기구인 ‘전문가위원회’가 결정적 변수로 작동한다. 위원회는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각 주나 지방을 대표하는 성직 계통의 가장 명망있는 88명의 인사들로 구성된다. 테헤란의 금요예배 이맘을 맡고 있는 모함마드 알리 모바헤디 케르마니가 의장이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부의장으로 봉직해 왔다. 한편 전문가위원회 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헌법수호위원회’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헌법수호위원회는 모두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6명의 성직자는 최고지도자가 직접 임명하고, 나머지 6명은 율법학자들 중에서 사법부 수장이 임명한다.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위원들의 자격을 최고지도자가 임명한 인사들이 담당한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란에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45년간이나 견고한 신정주의 권력 독점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배경은 바로 미국의 잘못된 중동정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탈석유 시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온건 아랍 산유국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상호 전략적 경제-군사동맹체로 만들어 놓고 중동에서의 국익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 미국 외교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이란이라는 강력한 적대세력이 당분간 건재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동상황은 어느 때보다 복합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최대 현안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 종식,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지볼라 사이의 전면전 위기, 시리아, 예멘, 리비아에서의 내전 종식, 이라크 내에서의 미국의 완전 철수 등의 이슈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이런 중동 갈등의 해결사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모든 중동분쟁의 한 당사자로 개입하고 있는 이란의 현실에서 갈등의 증폭보다는 화해와 협상을 통한 외교적 노력을 강조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 길만이 경제적 고통과 내외적인 폭압에 시달려 온 이란 국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실마리가 될 것이고, 국민들이 선택해준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역할일 것이다. 이런 기조가 유지된다면, 이란에 개혁파 대통령의 등장, 1996년 이후 28년째 이스라엘 권좌를 지키고 있는 강경 네타냐후 정치세력을 대신한 온건 합리적 총리의 등장, 미국의 민주당의 재집권, 팔레스타인에도 하마스를 대신한 실용적인 현실주의 정치정당의 등장 등으로 어느 때보다 밝은 가능성의 미래를 고대해 볼 수 있겠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