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러시아가 정상회담을 지난 6월 19일에 하면서 북·러 동맹 관계가 복원된 데 대해 우리의 관심은 모두 한 가지 의미에만 함몰되었다. 북한이 러시아와 동맹 관계를 회복하면서 북한이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핵을 포함해 무기체계의 성능과 사양을 향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향후 북·러의 군사적 협력이 북한 무기의 하드웨어(hardware) 개선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는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이들의 협력 가능성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은 오랫동안 심리전과 인지전을 펼쳐온 나라들이다. 이의 선두 주자가 중국과 러시아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이 핵 개발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가상 세계를 통한 우리에 대한 심리전과 인지전은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의 군사 전략 중 하나다. 물리적인 침공 이전에 선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심리전과 인지전이다. 인류는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침공 상대국의 사기와 전투력 의지를 잠식시키기 위한 군사 전술로 이를 오랫동안 이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과 국제사회에 심리전과 인지전으로 먼저 침략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포함한 전제주의 국가의 영향력 공작은 평시에 이뤄진다. 그리고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우리를 세뇌하려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을 이용한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의 유포다. 특히 중국은 이런 면에서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자신의 언론매체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한국어 번역본을 살포하거나, 인터넷을 통한 신속한 유통 과정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의 언론 기사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 이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은 또한 우리의 언론체계의 허점을 적극 이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매체의 설립이 용이한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2명 이상의 명의로 신고만 하면 인터넷 매체로 활동할 수 있는 ‘신고제’의 허점을 이용한다.
우선 중국은 관영매체를 이용해 영향력 공작을 적극 전개 중이다. 중국의 관영매체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높은 신망 정서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의 관영지에 게재된 사설이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만큼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대부분의 언론매체가 인용하는 경우도 드물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중국 관영지는 거의 매일 미국을 비판하는 사설과 전문가 기고문을 게재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언론이 이를 덥석 받아먹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숭배하듯 즉각 인용하고 보도한다. 이런 우리 언론의 관성을 중국은 우리에 대한 영향력 공작의 일환으로 이용한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대표적인 관영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논평에 대해 우리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도 그럴 것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양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친중, 반중, 친미, 반미로 나뉜 우리 사회의 정치 구조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 정치·사회적 구조를 간파한 중국은 환구시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데 적극적이다. 가령, 한·미 동맹 강화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일삼고 있다. 그 정도가 심해 우리나라와 국민의 자존심을 해하는 수준임에도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어 중국은 효과를 보고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미국 중시’ 기조가 가시화되는 것에 미국을 ‘배신’ 등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면서 미국과 거리를 둘 것을 종용한다. 반도체 동맹 구상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대중 압박 회피를 위해 미국의 ‘오만과 무시’를 경계할 것을 우리에게 촉구하는 사설도 게재한 바 있다.
2023년 4월 우리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맹목적 미·일 추종’ ‘국격을 잃고 조롱받을 것’ ‘굴욕 외교’ 등으로 우리 대통령과 우리나라를 비난했다(4.23. 사설). 그러면서 우리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 났다’고 조롱했다. 더 나아가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해 환구시보 사설(2023.8.7.)은 우리가 ‘신냉전 최전선의 보초병’으로 전락했다면서 ‘동북아 지역안보의 함정’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8월 19일 사설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보초병이 된 대가는 엄청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또한 사드 ‘3불’을 부정하는 우리 정부가 대중정책 기조를 ‘상호존중’으로 채택한 데 대해 환구시보 사설(2022.3.11.)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사드 ‘3불’이 상호존중을 실천한 결과라고 빗대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미·중 경쟁에서 도박할 공간이 없다고 얼음장을 놨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칩4) 구상 참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사 결정에 미국 협박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훈계조의 사설(2022.7.21.)을 게재했다.
2023년 6월 13일 환구시보 사설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담과 관련해 싱하이밍의 무례함을 옹호했다. 중국에 베팅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을 전하면서 사설은 우리나라를 ‘미성숙한 소국’ ‘유치원생’으로 비하했다. ‘서울이 중국에 대한 태도를 바로 세워야 과민반응하지 않고 소국의 마음가짐도 버릴 수 있다’며 ‘싱 대사의 말은 충언이자 진언이었으며, 한국 외교는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의심이 많아 매우 미성숙하다’고 우리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들 사설의 핵심 공략 포인트는 몇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주권적 의사 결정을 무시하는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해 위압적이고 고압적인 언행으로 비판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우리의 국익 변화에 따른 우리의 전략적 선택의 변화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부정하는 점이다. 이는 중국이 자신의 공세적이고 위협적인 언행이 국제정세의 변화를 추동한 주된 원인임에도 어떠한 의식도 하지 않는 방증이다. 즉, 우리의 전략적 선택의 조정이 불가피한 점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소국으로 보는 중국의 인식이 역력하게 드러난 점이다.
더 나아가 중국은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으로 우리 언론사회에 침투하면서 여론몰이하는 전략도 구사 중이다. 이의 가장 선도적인 주체가 중국의 홍보회사 하이마이(海賣科技社)와 하이쉰(海訊社) 등이다. 이들은 특정 목적을 지닌 콘텐츠를 마치 한국 언론사의 정상 기사인 양 의도적으로 작성·배포하며, 한국의 여론을 조성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들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경위로는 타임즈 뉴스와이어라는 뉴스와이어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하이마이 같은 경우, 자체 제작한 한국 언론사 위장 웹사이트 18개를 활용 중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마이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네이버와 서울프레스, 충청타임스, 부천테크 등 실제 존재하지 않는 한국 지역 언론사에 보도자료가 배포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이쉰은 불법 개설한 18개 위장 웹사이트에 한국 언론기사가 무단으로 게재되어 있다. 이들이 게시한 글 중 친중, 반미, 반일 성향의 기사는 약 42건으로 총 18개 사이트에 동시 배포되었다. 이들은 또한 이 같은 기사를 신속하게 유포하는 데 SNS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간첩을 이용한 북한의 영향력 공작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노동단체 침투 지하조직> 사건으로 우리 수사당국이 이들의 PC를 압수 수색하면서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북한 지령문 중에서 유튜브 방송, 페이스북 계정 등 새로운 홍보수단을 제시하면서 노총을 반미투쟁, 보수 세력 공격의 선봉으로 만들고, 개별 조직원의 SNS를 이용해 협박하고 투쟁하라고 지시한 증거가 확보되었다. 또한 노총 홈페이지 게시판, 유튜브 동영상 댓글란도 지령 수수의 도구로 활용할 것을 명령한 것도 드러났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국민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 ‘퇴진이 추모이다’ 등 항의 투쟁을 집중과 분산의 원칙으로 전개할 것을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현재 우리는 정보통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국가 안보의 개념 역시 변하고 있다. 오늘날 안보 개념은 과거와 같이 지리적 차원에서의 영토, 영해, 영공을 침범, 침공, 침략하는 데 대비하는 일차원적이지 않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생활공간은 영토라는 물리적 개념을 초월한 지 오래다. 우리의 일상생활 중 반 이상을 이제 가상공간이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다. 이런 공간에서 국민의 안전과 안보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안보 개념에 새로이 자리매김 중이다. 인터넷 시대에 일찍이 접어들었지만 우리는 가상공간에서의 안보에 대한 높은 관심도에 비해 대비책 마련에는 소홀했다. 외국은 각자 가상공간에서의 안보를 지켜내기 위한 사이버안보 관련 법안들을 제정한 지 이미 오래다. 중국만 해도 사이버 안보 법안과 관련된 법안을 2015년부터 제정했다. 2015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국가안보법>을 시작으로 <네트워크안전법(2017)> <국가정보법(2017)> <비밀법(2020)> <데이터안전법(2021)> <개인정보보호법(2021)> <반간첩법(2023)> <국가기밀보호법(2024)>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활동 공간의 창설은 국가 안보에 또 다른 취약점을 의미한다. 정보 탈취와 간첩 행위의 경로, 방식, 방법이 시계 공간의 제약 없이 더 자유롭게 행해질 수 있게 되었다. 즉, 24시간 이러한 행위가 가능해졌다.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가상공간에서 간첩들은 지령을 수시로 받을 수 있고, 정보를 편리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로 쉽게 동요시킬 수 있다. 과거와 같은 대인 접선 방식이 불필요해진 면이 많아졌다. 잠재적 적국은 사이버 세계에서 간첩 행위 관련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으로, 정보통제와 제약이 허술한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 국민은 가짜뉴스, 허위 정보의 위협에 쉽게 노출된다. 따라서 평시에 이뤄지는 우리에 대한 전체주의 국가의 영향력 공작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국가정보원의 방첩 기능 강화와 대공수사권의 회복이 전제된다. 그리고 관련 법안의 조속한 마련이 필요하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