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외 인사가 당 대표가 된다면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할 겁니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원외 인사와 원내 인사 중 당 대표 후보로 어느 쪽이 더 적합하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원외 당 대표는 취임하기 이전보다 최소한 두 배의 노력을 더 해야 한다는 뜻이다.
황 위원장은 "그 전의 당 대표들 사례도 보면 원내도 있었고 원외도 있었는데, 적어도 원내 경험이라는 게 필요할 것 같다"며 "국회는 국회대로의 논리가 있고 넘지 못할 벽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 대표가 되면 동료의식 부분에서 호흡을 같이해야 하는데, (원외 당 대표에겐) 그만큼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위원장이 언급한 원외 인사는 한동훈 후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후보 중 원내 경험이 없는 원외 인사는 한 후보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황 위원장은 그러면서도 "원외 당 대표에도 장점은 있다"며 "밖에 계신 분이라 국회 안에서 파묻히는 게 아니라 국회 밖에서 시야를 넓힐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전당대회가 '국민적 관심이 적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많은 후보들이 나와주셔서 굉장히 힘차게 움직이고 있다"며 "다들 당 대표 선거를 중심으로 보는데, 최고위원 후보도 좋은 분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 계신다"고 했다.
황 위원장은 이번 전당대회가 한 후보와 나머지 후보들의 대립 구도로 격화되는 것에 대해선 "후보들 간 어느 정도의 쟁론은 바람직하다. 그러면서 당이 발전하기 때문"이라며 "어느 분이 대표가 되더라도 쟁론을 거치며 '내가 가졌던 이런 생각이 잘못됐구나'라고 깨달아야 보완할 수가 있다. 민주주의 과정이고 선거가 이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황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더불어민주당 생각대로 원 구성이 끝나고 각종 특검법으로 정부·여당을 몰아치고 있다. 정치 선배로서 민주당에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람이 불면 유연한 나무들은 살아남는데, 강하게 버티다가는 부러진다. 그렇기에 아마 정말로 민주당을 걱정하는 분들 사이에서 '지금처럼 다수당이라고 막 하는 게 맞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거다. 과거 보수 진영이 다수당인 시절에는 직권상정이 가능했던 때가 있다.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는 16대 국회였는데, 당시에는 노동계의 반발이 엄청났다. 야당도 크게 반발했는데 우리가 그 법을 새벽에 통과시켰다.
우리는 법 자체는 아주 잘 만들었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민심이 대번에 돌아서서 역풍이 엄청나게 불었다. 법안을 통과시킨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질타가 나왔다. 과거로 원상복구시키는 법을 만들어냈는데도 결국 정권이 무너졌다.
물론 YS 정권이 무너진 것에는 IMF를 비롯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 사건도 정권을 무너지게 한 빌미 중의 하나라고 본다. 이렇듯이 민주당의 강경 행동에 대해 언론과 국민이 계속 좌시하지 않을 거다. 왜냐하면 국회는 51%와 49%로 의견이 갈렸을 때 조금 많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의 의견도 듣고 옳은 게 있다면 반영을 해야 한다.
-여야가 타협 없이 굴러가는데, 이를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자꾸 만나야 한다. 밥도 같이 먹고 할 수 있으면 막걸리도 한잔 나누고 자꾸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계속 만나면 정이 들기 때문이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냉정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에선 될 것도 안 된다. 서로 만나서 "이번에는 내가 미안하게 됐다" 이렇게 사과도 하고, 그러면서 "그런데 다음엔 너희들이 우리한테 미안할 때도 있지 않겠냐" 이렇게 주고 받는 거다.
제가 이재명 전 대표에게 '저녁이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이 전 대표도 저를 만나서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예전에는 저녁에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도 먹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다는 거다. 서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지금처럼 이렇게 감정적으로 하지 말고 사석에서 흉·허물 없이 만나다 보면 정이 든다. 그게 결국 타협의 기반이 되는 거지.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서로 가까이 하셨으면 좋겠다.
-정치권 안팎에서 개헌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개헌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헌법은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독주를 막기 위해 대통령을 꽁꽁 묶어 놓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회가 모든 것을 간섭할 수 있게 돼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대통령이 일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체크 앤 밸런스'라고 분리와 균형을 많이 이야기들 하신다. 그래도 국가의 의사 결정이 나면 이것을 강력하게 집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조금 부족하다는 게 지금 생각이다. 정치권이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도, 대통령 4년 중임 등 여러 방안에 대해 격론을 벌여서 정리해 나갔으면 좋겠다.
-4월 총선 패배 후 구원 투수로 8년 만에 중앙 정계에 복귀하셨다. 소감이 어떠신가.
제가 당 생활한 지 어언 30년이다. 그만큼 당에 대한 애정이 있다. 오랜만에 당에 와서 당무를 보니까 예전 생각도 많이 난다. 우리 사무처 간부들은 옛날에 저와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로 아는 얼굴들이 많다. 옛날에 꾸미(정치권 사모임)라고 해서 같이 뒹굴고 지냈던 기자들이 어느새 반장, 빠르면 부장 이렇게 올라갔다. 당시 반장급은 부장이나 편집국장이 되고 부장급들은 편집국장을 지나서 언론사 사장하는 분들도 있다. 옛말에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라는 말이 있는데, 인걸은 다 출세하셨다. 다들 굉장히 반갑다.
-이제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의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
사실 우리 당의 그간 상황을 보면 비대위가 정말 많았다. 그래서 빨리 당을 원상복구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전당대회가 열리는 7월 23일이면, 제가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두 달 열흘(70일)이다. 그간 정말 숨 가빴다. 실수 하나, 말썽 하나라도 생기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당대회를 연기할 수도 없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비대위는 총선 이후의 어둡고 힘든 당의 분위기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평정심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또 여당이니까 국정 전반에 대해서 지원도 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효과를 얻어야만 하는 비대위라서 정말 의미 있는 동시에 어려운 시간이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힘이 '영남당'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전국정당으로 다시 발돋움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보는가.
무엇보다 수도권 민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도권 민심을 세심하게 살펴 보면 호남과 충청에서 올라온 분들이 많다. 물론 영남에서 온 분들도 있지만, 나눠보면 호남과 충청이 각 30%다. 영남과 수도권 태생인 분들이 약 20%씩 인 것 같다. 그래서 영남의 시각으로 수도권 민심을 잡으려고 하면 큰일 난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로 호남 시각으로 봐선 수도권 민심을 잡기 힘들다. 균형 잡힌 전국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역은 지역 나름대로의 목표로 하는 바가 다 있는데, 이걸 뛰어 넘어서 국가적 차원에서 정치인들이 일을 해야 한다. 당내에 영남 의원도 있고 충청·수도권·호남 의원들이 균형 맞게 다 있어서 활발한 교류와 의견 조율이 잘 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는 수도권 민심 잡기가 참 어렵다.
-국무총리 후보군인데 윤석열 대통령이 부탁하지는 않았나.
국무총리를 할 생각은 없다. 지금은 총리를 바꾸기가 어려운 상태다. 국회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운 상황 아닌가.
-전당대회가 마무리되면 비대위원장 직책도 내려놓을 텐데,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
제가 카메라를 좋아한다. 사진 찍는다고 다리도 한 번 크게 다쳤다. 언론에서 나보고 '광폭행보'라고들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제가 다리가 부러졌어서 광폭행보를 못 한다. 그만큼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으러 다니려 한다. 또 제가 변호사 자격도 있으니 동네의 옛날 분들이랑 어울리며 동네 변호사 노릇도 하고 재밌게 지내려 한다.
※ 황우여 위원장은 어떤 사람?
'어당팔(어수룩해 보이지만 당수가 팔단)'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상임고문이자 부총리와 교육부 장관, 당 대표를 지낸 보수정당을 대표하는 원로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황 위원장은 1947년 경기도 인천부(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서울대 법과대학을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10기)을 졸업한 뒤 1972년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법복을 입었다. 법복을 입은 뒤에도 공부를 이어나갔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헌법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다.
판사로 재직하면서는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소장 등 요직을 지냈다. 이후 감사원 감사위원을 하고 있던 당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만나면서 정계에 들어선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 전 총재의 추천으로 공천을 받았고, 신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16대 국회부터는 인천 연수구에서 네 번 당선됐다.
이 기간 동안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부의장, 사무총장, 원내대표, 대표권한대행,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8대와 19대 국회에서 교육 관련 상임위를 거쳤던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수년간 중앙 정계와 떨어져 지냈다. 그러던 중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모습을 드러내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고,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뒤 비상대책위원장에 지명됐다.
△1947년 인천 출생 △서울대 법학과·대학원 박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소장 △15~19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대표 △박근혜 정부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국민의힘 상임고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