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펼치는 부동산과 증시 부양 정책이 ‘빚투(빚을 내서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부터 이어진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대출과 최근 종합부동산세 폐지 움직임이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매수를 자극하고, 동시에 증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까지 더해져 빚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경기 부양 정책에 경제가 살아난다면 모르겠지만 각 경제주체의 빚 관련 수치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 정부 정책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이라는 비판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1월 말 출시한 신생아 특례대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출시 3개월 만인 지난 4월 말 기준 신청 건수는 2만986건으로 금액 기준 5조원을 돌파했다. 주택 구입용 대출인 디딤돌과 전세 자금용 대출인 버팀목이 각각 3조9887억원, 1조1956억원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주거 안정 대책이 고금리에 연체 차주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빚을 내 투자를 확대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금융권에서는 지적한다.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조이고 있는 은행권 대출 대신 정책 금융 상품을 통한 대출이 활성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3분기부터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기준도 1억3000만원에서 2억원 이하로 완화한다는 계획이다. 저금리 대출, 낮은 진입장벽에 투자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폐지론은 2030세대를 대상으로 부동산 투자를 더 자극하고 있다. 종부세 폐지 이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앞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종부세 폐지 필요성을 제기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이날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종부세 폐지에 찬성한다”며 “종부세는 부동산 수익이 많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징벌적 과세 형태라 세금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시장에선 기대심리가 선제적으로 반영돼 가격 상승은 물론 매매 거래량이 늘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값은 지난 3일 기준 일주일 전보다 0.09% 올라 11주 연속 상승세다. 또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 5월까지 3개월 연속 4000건을 웃돌았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도입한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밸류업 수혜주’ 등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된 영향 등에 가상화폐에 대한 빚투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3월 가상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은 7만3777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문제는 정부의 각종 부양책에도 실물 경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기업·가계 등 각 경제주체의 부채 지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고, 부동산 바닥 경기의 바로미터인 경매 신청 건수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4만694건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도 3.55%로 작년 말보다 0.85%포인트 상승했다. 금융당국이 하반기 부실 PF 사업장데 대한 본격 정리를 예고한 만큼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역시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