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대 국회는 정치는 실종되고 정쟁과 대결만이 차고 넘친 4년으로 끝났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여야 가운데 그에 대한 책임의 비중을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어쨌든 그런 국회가 재연되서는 안 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다. 본래 정치의 역할이라는 것이 그 사회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조정하여 원만한 타협과 합의를 이루는 데 있음을 생각하면 21대 국회의 그런 모습은 정치에 주어진 소임에 반하는 것이었다.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국회가 개원하면 달라진 4년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다. 이전보다는 나은 정치를 보고 싶은 국민들의 정치적 갈증이 심할 때면 이 기대는 한층 절박해진다. 그러나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21대 국회보다도 더 격한 대결과 충돌로 일관하는 국회가 될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벌써부터 ‘강대강’ 충돌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같이 의사일정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배경에는 원(院) 구성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 물론 역대 국회마다 개원하고는 정작 원 구성을 하지 못한 채 국회가 공전되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야당 의석이 192석이나 되는 국회 환경이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 예상된다.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해 국민의힘이 없더라도 회의도 운영할 수 있고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게 된 민주당은 이전보다 더욱 강경한 기조의 국회 운영을 공언하고 있다.
원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우원식 국회의장은 선출 직후 ‘7일 자정’을 원 구성 명단 제출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원 구성 법정 시한에 맞춰 첫 본회의 이틀 뒤인 7일에 전체 18개 상임위 중 자당 몫으로 정한 11개에 대한 위원장 후보와 위원 명단을 제출했다. 그런데 운영위원장 후보로 원내대표인 박찬대 의원, 법사위원장 후보로 정청래 의원, 과방위원장 후보로 최민희 의원 등 초강경파가 배치된 점이 눈길을 끈다.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쏟아지고 있는 온갖 특검법 발의도 정치는 사라지고 특검만 남은 국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성윤 의원 등이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하자 국민의힘에서는 윤상현 의원이 ‘김정숙 종합 특검법’을 대표 발의하여 맞불을 놓았다. 조국혁신당에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한 ‘한동훈 특검법’을 당론 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검찰 수사를 압박하는 ‘쌍방울 대북 송금 특검법’을 발의했다. 엄연히 검찰과 경찰, 그리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있는데 의혹만 생기면 무조건 특검법부터 발의하는 것은 특검 과잉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정국의 모든 쟁점들을 특검에 맡기려는 모습은 국회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 수사기관들의 존재 의미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과도한 현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절대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법을 남발하고 있는 야권의 절제가 요구된다.
그러나 여야 극한 대결의 책임을 야당발 다수의 횡포로만 여길 수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채 상병 특검법’ 같이 보수 정부가 군의 사기와 명예를 위해서도 마땅히 수용해야 할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대치 상황을 격화시킨 책임이 있다. 야당이 통과시킨 '채 상병 특검법'에 논란이 될 조항들이 있어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했다 해도 그 뒤에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독소 조항’들에 대한 협상과 조정을 통해 합의 처리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여권은 채 상병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가리고 수사 외압 의혹을 규명하는 특검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면서 야당의 반발과 공세를 격화시켰다.
22대 국회가 개원하기 무섭게 여야가 강경으로만 치닫는 데는 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들 가운데 강경파 정치인들이 많은 이유도 있다. 특히 한때 ’용퇴론’ 대상이 되었던 ‘86정치인’들이 4·10 총선을 거치면서 대거 부활해 오히려 22대 국회의 중심세력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좌우 이념에 기반한 진영정치를 넘어서야 할 숙제를 안고 있는 우리 정치가 다시 강고한 진영의 벽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21대 국회 4년 동안 전쟁과도 같은 증오와 대결의 정치에 질려버린 우리는 22대 국회가 합리와 이성이 주도하는 민의의 전당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고 지난 4년보다 더 격렬한 대결 정치가 우려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 정치에 대해 절망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2년 뒤에 다시 지방선거, 3년 뒤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어느 정치세력이 어떤 정치를 해나가는지 제대로 지켜보면서 감시하고 점수를 매겨둘 일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