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민심은 무섭게 심판했지만 '복수혈전' 원치않아

2024-04-1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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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4월 10일 밤 국민의힘은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비례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은 175석을 얻으며 압승을 거뒀다. 여기에 조국혁신당이 얻은 비례대표 의석 12석을 합하면 ‘민주당+조국혁신당’ 연합만으로 187석이 된다. 여기에 개혁신당 3석, 진보당 1석, 새로운 미래 1석을 합하면 ‘반윤정당’이 192석이나 된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역구 의석 90석에 비례 위성정당 국민의미래의 비례대표 의석 18석을 합해도 108석에 그친다. 여당으로서는 그나마 100석은 지킴으로써 야당의 단독 개헌, 대통령 탄핵 소추, 법률안 거부권 행사의 무력화 등은 막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에 이어 임기 5년 전체를 여소야대 국회에 갇히게 됐다. 무엇 하나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퇴임해야 하는 공황상태를 맞게 된 것이다. 단독 과반 의석을 훨씬 넘은 민주당은 국회의장은 물론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도 차지하면서 법안·예산 처리를 주도할 수 있다. 국무총리·헌법재판관·대법관 임명동의안도 민주당의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 
대통령을 제외한 국무총리·국무위원·법관 등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도 민주당의 뜻에 따라 가능하다. 동력을 상실한 대통령 권력보다 새로 힘을 얻은 국회 권력이 더 위력을 발휘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권심판의 요체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다. 이런 상황을 자초한 윤 대통령의 책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 지난해 가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심은 여당에게 참패를 안겨줌으로써 윤석열 정부를 향해 분명한 경고를 보냈다. 당시의 패배 앞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말은 했지만 여전히 ‘나는 늘 무조건 옳다’는 모습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던 대통령은 도어스테핑도 중단하고 불편한 기자회견 대신 KBS와의 단독 대담을 하는 ‘불통’의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쓴 소리를 할 사람들을 초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경청했다는 소식을 지난 2년간 접해본 적이 없다.

그 대신 대통령의 말이라면 맹종하는,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통령 주위를 둘러쌌다. 열번 백번 참모들을 교체한들, 직언을 주저하지 않을 사람을 껴안는 탕평의 인사를 하지 않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나마 국민의힘에서 ‘한동훈 효과’가 잠시 빛을 볼 무렵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막말이 있었고, 공수처 수사 대상인 이종섭 주호주 대사 임명과 출국이라는 사건이 발생하여 ‘용산 리스크’가 선거 전면에 부상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도 의료공백 사태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면서 숫자에 집착하다가 사태는 장기화되고 말았다. 결국 윤 대통령이 총선 기간 내내 전면에 등장하는 상황이 전개되었고, 달라지지 않은 대통령의 모습에 성난 민심은 심판의 선택을 한 것이다. 

언제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되고 있지만 이제라도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달라지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국정쇄신의 우선은 인적 쇄신이다. 대통령의 주요 참모들은 보수우파 이념에 충실한 진영에 갇힌 인물들이 아니라 합리적인 중도적 사고를 갖고 민심을 읽을 줄 아는 인물들을 대거 발탁해야 한다. 대통령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구시대의 낡은 이미지 관리 방식에 갇힌 참모들에 휘둘리면서 윤 대통령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워낙 강한 고집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말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강성 보수 우파들의 요구에 휘둘리는 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중도층의 마음을 얻는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진영 대결의 정치에 갇힌 모습에 환멸을 느껴 정권교체를 선택한 국민들에게 그동안 윤 대통령이 보여준 그 이상의 진영정치는 배신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야당이 국회에서 강경 투쟁 일변도로 간다 해도 최종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고 윤 대통령은 협치의 손을 내밀어야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범죄자’로만 인식하여 아직까지 한번도 만나지 않는 것도 협량한 모습이었다.

국민의힘도 참패의 책임을 모두 윤 대통령에게 돌릴 일은 아니다. 국민의힘이 내놓은 공천은 한마디로 감동 없는 공천이었다. 주류 현역들은 희생 없이 그대로 자리를 보존했고, 당의 체질 개선을 가져올 새로운 인물들의 발탁은 미약했다. 한동훈 개인만 보였지 새로운 인재들도, 나경원이나 안철수 같은 ‘비윤’ 중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참패하는 가운데도 윤 대통령에게서 밀려났던 나경원, 안철수, 이준석 같은 후보들이 생환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심은 대통령에게 맹종하지 않고 할 소리를 하는 후보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민의힘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해 보인다. 다만 총선 결과 영남당의 색채가 강하게 된 당의 구조는 쇄신을 시도하는 데 상당한 벽이 될 위험이 크다. 

이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명실상부한 국회 권력이 되었다. 그러나 총선 민심이 압승을 안겨주었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오만해질 상황은 아니다. 야당 또한 선거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드러냈다.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을 통한 민주당의 사당화, 김준혁-양문석 후보 등을 둘러싼 논란 등 ‘친명’에 대한 ‘묻지마 공천’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물론 정권심판의 태풍에 덮여 그런 문제들이 승부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지만, 이 바람이 지나고 나면 국민들은 야당의 모습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국회에서 야당이 절대권력이 되었다고 절제하지 못하고 무분별한 힘의 남용을 반복한다면 이내 역풍이 불어옴은 정치사의 경험이 말해준다.

민심은 정권심판을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정치가 복수혈전의 장이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정치가 죽고 사는 전쟁이 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원한감정에 갇힌 분노의 극한 정서를 스스로 다스리며 합리적인 노선과 대화의 미덕을 아는 야당이라야 지속 가능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6월이면 지방선거, 2027년 3월이면 다시 대선이 돌아온다. 선거는 언제나 원점에서 치러진다. 그러니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며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은 아무도 없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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