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구 칼럼] K-culture의 원형 '풍류' 해석

2024-05-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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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구 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이춘구 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전 세계가 K-pop에 열광하며 K-culture를 익히려고 줄을 서고 있다. K-culture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K-spirit에서 나온 것이니 K-spirit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K-culture를 익히고 K-pop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K-spirit은 한국정신이며 한국정신은 한국사상에 연원을 두고 있다. 우리는 한국사상 체계를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행동양식과 예술행위를 창조적으로 계승할 수 있다. 전 세계가 한국 젊은 스타들의 가요를 즐기는 것은 바로 한국정신과 한국사상이 보편성을 갖고 있으며 그들을 표현하는 예술행위 또한 보편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의하는 핵심 주요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정신(精神)은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 또는 그런 작용을 가리킨다. 사상(思想)은 논리적 정합성을 가진 통일된 판단 체계를 이르며, 도(道)는 종교적으로 깊이 깨친 이치. 또는 그런 경지를 말한다. 정신과 사상, 도는 공통의 연원에서 유래하며 각자의 지류를 형성한다.

한국정신과 한국사상은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이 설파한 풍류로 일컬어지고 있다. 고운은 난랑비서문에서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다. 실제로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고 군생을 접촉하여 변화시킨다. 이를테면 들어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 공자)의 주지(主旨)와 같고, 무위(無爲)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주사(周柱史, 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 석가)의 교화와 같다.”고 분석했다.

조선시대 동학의 수운 최제우는 “우리 도는 원래 유도 아니고 불도 아니며 선(도교)도 아니다.” 또 해월 최시형은 “우리 도는 유, 불, 도와 비슷하나 실은 유, 불, 도를 하나로 합친 것으로서 유교의 윤리, 불교의 견성각심(성을 보고 심을 깨닫는다는 뜻), 선교(도교)의 양기양생(기를 양생한다는 뜻)을 하나로 관통시킨 도이다.”라고 했다.

한국사상의 원형인 풍류도(風流道)는 기본적으로 단군사상에서 유래하며, 신바람 문화를 그 동력으로 한다. 풍류도는 단군사상에 있는 인간 존중의 인본주의적 이상과 도덕적 신성으로서의 천관(天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풍류도는 유교·불교·도교를 포함하는 유·불·선 이전 우리의 독특한 사상체계이자 우리의 정신문화의 원형질이다. 현묘지도(玄妙之道)인 풍류도는 어원적으로는 배달민족의 도를 말한다. 풍류도는 신이자 도덕적 신성으로서 하늘과 인간의 합일을 지향한다. 풍류도는 성인(聖人)이라는 특정한 주체가 베푼 게 아니라 자생한 것으로 신도(神道), 하늘의 신묘한 도이다. 풍(風)과 유(流)에 대해서는 풍은 바람이며, 유는 물이라고 풀어본다. 물과 바람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풍류는 신바람 나게 하는 노래이며, 군자의 교화이기도 하다.

또 접화군생(接化群生)을 실천해나가는 것을 핵심 도의로 삼는다. 군생에 대해서 일반 민중으로 보는 견해와 인간을 포함하는 뭇 생명으로 해석하는 견해로 나뉜다. 민주주의 정치과정적 견해에서는 전자에 중점을 둘 것이며, 생태적 종교적 접근법에서는 후자에 방점을 둘 것이다. 접화군생은 모든 생명과 접촉해 이를 감화시킨다는 뜻으로 고조선의 개국이념인 조화와 융화의 홍익인간사상을 보다 심화시키고 더 나아가 외연을 확대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재세이화의 교화적 원리로 구체화하는 것으로 본다. 이치로써 설득하고, 감성으로 감화를 주는 사상이야 말로 이기론으로까지 펼쳐지는 위대한 근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정신의 고유한 원천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풍류는 유희를 위주로 하는 중국의 풍류와 구별되며, 유불선 이전부터 세 종교의 특징을 갖추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화랑을 중심으로 풍류를 논한다. 고구려의 선인(先人), 백제의 소도(蘇塗)는 화랑의 별명이며, 풍류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 데서부터 유래한다고 풀이한다. 최남선은 고대종교로서 밝 즉 부루는 신라 때 풍류로 계승되고 고려 팔관회, 조선 부군(府君) 또는 신사(神事)로 계승됐다고 한다. 이능화는 고유종교로 신교(神敎)를 말하며 그 전승으로 풍류를 언급했다. 정인보는 풍류를 홍익인간의 담론으로 확장시키고, 나아가 조선의 정통성을 모색했다. 선학자들의 연구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전국 8도 가운데 전라도는 모악산을 중심으로 풍류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다. 모악산은 어머니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풍류도의 전통을 연면히 이어오며 다른 종교와 사상을 녹여 한 몸이 되게 한다. 고운은 정읍 무성서원에서 유상대(流觴臺)를 짓고 정읍사의 풍류를 구현하려고 했다. 조선에 이르러 정극인은 상춘곡(賞春曲)을 지으며 고현향약(古縣鄕約)을 실천하려고 했다. 이 같은 전통은 오늘에까지 계승되니 전라도가 풍류도를 구현하는 고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모악산을 중심으로 하는 정읍과 전주, 김제 등 전라도는 풍류도의 주 무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천손민족으로서 정신적인 풍류 사상과 이를 표현하는 예술로서 풍류를 구별해야 한다. 요컨대 풍류는 고대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인간세계를 널리 이롭게 하고 만물을 교화시켜 이상향인 신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정신이 넘쳐나며, 신바람 나게 살고자 하는 기원이다. 하늘에 대한 기원은 춤과 노래로 표현된다. 그러기에 K-pop 가수들의 노래와 율동은 단순한 노래와 율동이 아니라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들의 노래와 율동을 보면 신명이 나고 함께 따라 하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 우리는 풍류로 인간의 본성을 찾고,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번영을 구가하기를 염원한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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