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구 칼럼] 총체적 위기의 한국 …시대가 '신인(神人)'을 부른다!

2024-05-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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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구 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이춘구 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한국은 총체적 위기상황이다. 고속성장시대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좋은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지 못해 국내총생산(GDP)이 정체하고 10위에서 13위로 국가 순위가 자꾸 밀려나고 있다. 물론 외교안보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도 경제침체의 큰 원인이다. 전체 국민의 절반가량이 수도권에서 살며, 국내총생산도 52%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이로 인해 수도권은 주택난과 교통난, 교육난 등 총체적인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수도권과는 반대로 지방은 인구소멸, 지역소멸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재정투자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이 떨어져 국가공동체마저 소멸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한국이 겪고 있는 위기를 단숨에 극복하고 민생을 안정시킬 ‘신인(神人)’은 언제쯤 등장할 것인가?

사실 ‘신인’은 우리 역사에서 개국 당시부터 존재했다. 우리 민족은 나라를 열던 시점에 신인을 국가공동체의 지도자로 추대해 공동체를 신의 도시 즉 신시(神市)로 만들고자 했다. 서거정(徐居正)과 최부(崔溥) 등이 공찬한 <동국통감 외기(東國通鑑 外紀)>를 보면, “東方初無君長 有神人降于檀木下 國人立爲君, 是爲檀君, 國號朝鮮.”이라고 했다. 뜻을 풀이하면, “동방에 처음에 군장이 없었다. ‘신인’이 있어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나라 백성이 이 사람을 군장으로 세우니 이 사람이 곧 단군이며, 국호를 조선이라 했다.”는 것이다. ‘신인’은 개국 당시 조선을 이끌어갈 뛰어난 지도자 즉 신과 같은 인간을 의미한다. 공동체 운명을 개척할 지도자는 신과 같은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게 우리나라의 개국 당시 국민의 전체의지(general will)였다. ‘신인’은 신이 아닌 사람인 것이다.

고려 일연의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도 비슷한 취지가 기록돼있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하나님인 환인의 서자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한 것이다. 환웅은 천왕이라 불리니 환웅이 곧 ‘신인’이다. 환웅천왕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무릇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在世理化)했다. 신단수는 인간계와 신계를 연결하는 통로인 셈이다. 신시는 신의 뜻이 펼쳐지는 도시국가를 의미한다. 신의 뜻은 자연의 질서이자 자연법을 가리키며 인간의 최고 이성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신의 뜻은 신의 바람대로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이처럼 ‘신인’을 국가지도자로 추대하고 이 땅에 이상국가, 신시를 건설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처음 개국과정 기사를 살피며 ‘신인’과 같은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 나라의 형성 과정 등을 살필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신인’ 개념은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저서 <Homo Deus, 神人>에서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라리는 인류는 머지않은 미래에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초인간적인 존재, ‘신인’을 창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생명공학과 AI에 의한 알고리즘의 발달로 ‘신인’의 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현대의 ‘신인’은 고대의 신들을 능가할 것이다. 특히 AI로봇의 진화를 보면서 AI로봇이 여러 면에서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AI가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들을 이긴 것은 오래 전이며, 지금은 AI인간이 반려자로서 인간과 공존하기 시작했다. AI로 대표되는 ‘신인’이 국가공동체를 통치하지 말라는 법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의 개국기사처럼 AI ‘신인’을 지도자로 선출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실질적으로 ‘신인’ 논쟁이 기저를 이루었다. 유명 역술가나 교수 등이 나서서 각기 지지하는 후보를 ‘하늘이 낸 후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를 살피면 근거가 빈약해 신빙성이 떨어진다. 막연한 추론이나 영적 계시를 근거로 드는데 이 같은 비과학적 접근은 이해를 확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이 주권자이다. 주권은 국가권력 형성의 원천이다. 따라서 국민이 곧 하늘이다. 하늘의 명령 즉 천명(天命)을 실천하는 인물이 하늘이 낸 지도자 곧 ‘신인’이다. 이는 동학이 주창한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과 맞닿아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고 국민이 명령하는 바를 성실히 수행하는 국가적 지도자가 ‘신인’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의 황금률처럼 절묘하게 판가름이 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48.56%,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7.83%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우리의 ‘신인’ 전통에 의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뛰어난 통치능력을 가진 지도자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지지가 30%대로 떨어지고 4·10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참패를 당했다. 국민이 행복하고 나라가 강한 행정을 바라던 국민의 여망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여망과 멀어지는 대통령은 ‘신인’의 지위에서 내려오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다. 대통령이 지금부터라도 가사 ‘신인’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며 국민의 염원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신인’으로서 존경과 지지를 받을 것이다.

‘신인’의 무능이 드러나고 공동체 구성원의 염원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자는 폭군을 몰아내고 왕도를 구현해야 한다는 방벌론으로 쿠데타의 정당화를 기도했으며, 순자는 양위란 있을 수 없고 예치를 실현하는 성왕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돼 있다는 선양론을 개진한 바 있다. 현대 헌법으로는 탄핵으로 무능한 지도자를 ‘신인’의 지위에서 끌어낼 것이다. 우리 국민은 탄핵을 일상화하고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게 하는 상황을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시대는 51 대 49의 비율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신인’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다. 이육사의 ‘광야’처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대한민국 공동체를 초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우기를 염원한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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