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스테이트’ 공사 현장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입주를 앞두고 수분양자들이 실시한 사전점검에서 무더기 하자가 발생한 탓이다. 지난 3월 대구에 공급된 '힐스테이트 대구역 오페라'와 지난달 전남 무안군 남악신도시에 위치한 '힐스테이트 오룡' 아파트 두 곳에서 발견된 하자 건수만 총 10만건을 넘는다. 창과 바닥엔 틈이 벌어지고 내부 벽면은 기울어졌다. 공사비 급등에 따른 무리한 공기 단축, 비숙련 노동자 증가 등이 하자가 늘어나는 구조적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과에도 가라앉지 않는 '하자' 논란
힐스테이트 오룡 아파트의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무안군청 홈페이지에는 이달 3일부터 해당 아파트의 하자에 대한 민원 글이 올라오기 시작해 13일 현재 120여건에 달한다. 민원 글을 게재한 입주 예정자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입주 예정자인 이모씨는 "바닥에서 (수평이 맞지 않아) 구슬이 굴러 다니고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난다"면서 "바닥이 솟아 오른 곳도 있어 가구를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큰 맘 먹고 새 아파트를 분양 받았는데 시공 상태가 너무 부실하다. 준공 승인을 미뤄서라도 해결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6일부터 사흘 간 진행된 해당 단지의 사전점검에서는 5만8000여건의 하자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단지가 830가구임을 감안하면 한 가구당 평균 70건꼴로 하자가 접수된 셈이다.
무안군의 상급기관인 전남도청는 지난 9일 해당 아파트에 대한 품질 점검을 실시한 결과, 100여건의 지적·권고사항을 발견해 현대엔지니어링 측에 시정조치를 요구한 상태다. 지적된 부분은 △바닥 수평 불균형 △지하주차장 누수 △발코니 실외기실 우수관 미실치 △방화문 잠금장치 미부착 등 대부분 마감상태 불량사항이다.
다만 외벽이 휘어 보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지난 8일 실시한 현대엔지니어링 측의 안전진단 결과를 반영해 무안군청이 최종 결론내기로 했다. 시공사 측은 구조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일반적인 하자가 있는 부분은 조치계획서를 군청에 이미 제출한 상태고,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사진처럼 외벽이 휘었다는 부분 등은 구조적 문제가 없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현재 군청에서 안전구조점검을 진행 중인 만큼 충분히 협조하고 추후 문제 발생 시 보수 등 조치를 진행해 입주 시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자 논란이 확산되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10일 홍현성 대표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공식 사과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입장문에서 "당사가 시공한 아파트 단지 품질과 관련해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현재 접수된 불편 사항들에 대해 입주예정자들이 만족할 완벽한 품질의 아파트를 제공하는 것을 회사 방침으로 삼고, 최고 수준의 품질 확보를 위해 인력과 재원 추가 투입 등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공식 사과에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입주 예정자 300여명은 지난 9일 전남도청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는 등 집단행동에도 나선 상황이다. 입주 예정자들은 "아파트 전수조사를 통해 하자 보수가 이뤄져야 하고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준공 승인을 내주면 안 된다"며 전남도청과 무안군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공교롭게 앞서 대구에서도 ‘힐스테이트’ 아파트가 하자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현대건설이 시공한 ‘힐스테이트 대구역 오페라’도 지난 3월 벽지 오염, 타일 파손, 내부 벽 균열 등 6만6411건의 하자가 접수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건설 측은 입주 예정자 대표단과 주기적으로 회의를 갖고 단지 전반에 걸쳐 하자 처리하기로 합의하고 지난 3월 31일부터 입주를 진행하고 있다. 대구시 측은 ‘중대 하자’는 없는 것으로 결론 내고 지난 3월 29일 임시 준공승인을 내 준 상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재 해당 아파트의 입주율은 50% 정도다. 준공 승인 서류를 모두 해당 지자체에 접수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하자 보수는 세대 입주와 동시에 지속적으로 추가로 접수를 받으면서 진행 중으로, 하자 보수가 마무리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끊이지 않는 아파트 하자분쟁...원인은?
시공사와 입주자 간 아파트 하자 분쟁 사례는 최근 5년 새 늘어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산하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2월까지 5년 2개월 간 아파트 하자 분쟁사건은 연평균 4300여건 처리됐다. 이는 2014년 당시 하자 분쟁건수(2000여건)와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하자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공사비 급등에 따른 공사 기간 단축 영향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건설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운영자금을 줄이기 위한 건설사들이 공기를 단축하면서 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견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54.85로, 2021년 1월 124.12와 비교하면 3년 2개월여만에 24.73%포인트(p) 상승했다. 건설업 종사자 평균 임금도 2021년 3.9%, 2022년 5.5%, 2023년 6.7%로 매년 오르고 있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건설사가 최저 입찰로 하도급업체를 선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저가에 일감을 수주한 하청업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자잿값과 인건비를 절약하다 보니 시공에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는 빠듯한 공사비와 공기 때문에 납품 단가를 낮춰 빨리 건물을 지으려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감지된다"면서 "이외에도 비숙련 노동자 증가, 현장 관리 미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부실 시공이 이뤄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