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중 일정을 소화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6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만났다. 블링컨 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건 지난해 6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지난번 방중 때와 비교하면 양국은 관계 개선에 있어 어느 정도 진전을 이뤘으나,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 등 새로운 악재가 떠오르며 입장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중국 관영 신화사·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왕 주임과 블링컨 장관은 이날 오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회동했다.
그는 “중국의 정당한 발전 권리는 부당하게 억압받고 있고, 중국의 핵심 이익은 끝없이 도전받고 있다”고 했다.
반도체 수출통제, 고율 관세 등 미국의 대중국 경제 제재 조치와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미국이 대만, 필리핀 등과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 발언이다.
왕 주임은 양국 관계 악화의 탓을 미국으로 돌리며, 중국에 대한 견제를 중단할 것을 압박했다. 그는 "양측이 글로벌 이슈에 대해 국제 공조를 이끌어내 윈윈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 대립하거나 심지어 충돌해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인지에 대해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중이 안정을 수호하며 정도를 걷느냐, 관계 하강 악순환의 전철을 밟느냐는 양국 앞에 놓인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이는 양국의 진정성과 능력을 시험한다”고 역설했다.
왕 주임은 이어 "중국의 요구는 일관되어 있다"며 "미국이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고 중국의 발전을 억압하지 말아야 하며, 중국의 주권·안보·발전이익에 대한 레드라인을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블링컨 장관은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간 갈등과 관련해 (양측 간) 대화를 중시한다. 지난 1년간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고 화답한 후, 미국의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미·중 군사관계, 인공지능(AI) 리스크 등을 언급하며 "미국과 중국이 합의에 진전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한 “우리는 오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해 가능한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면서 “대면 외교는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전화나 영상통화가 아닌 직접적 만남을 통해 소통을 이어가자는 뜻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중국 견제의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이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서 내려놓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우려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편, 블링컨 장관이 이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와 관련해 양측 모두 공식적인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