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하나뿐인 자연 속 미술관'.
대구 사유원을 이르는 말이다. 대구 사유원은 수목원이며 산지정원이자 사색의 공간이다. 올해 신규 우수웰니스관광지로 선정된 이곳은 숲속에 영험한 기운을 내뿜는 수백 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나무들과 바위, 꽃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사유원. 예술가와 건축가, 조경가가 빚어놓은 작품 같은 공간 사유원은 봄을 품어 푸릇푸릇한 향기가 가득했다.
◆가야금 소리 들으며 차 한잔...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산마루 중심에 자리한 집. 자연 풍광이 장대하게 펼쳐진 이곳에서 가야금 뜯는 소리를 들으며 차를 한잔 내려 마신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좋은 기운을 받고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곳, 대구 사유원이다.
현암은 사유원에서도 가장 먼저 지어진 집이다. 들어가는 입구는 지하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은 문 안으로 들어서면 파노라마처럼 멋진 숲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암은 설립자 개인 공간으로 쓰이다 작년 10월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현암티하우스에서는 따뜻한 차와 한식 디저트를 즐기는 코스가 있다. 낮 1, 2, 3부로 운영되고 해가 지는 선셋으로 구분된다.
특별히 선셋 시간에는 딱 1팀만 받는다. 해당 팀은 최은희 부산 무형문화재 제8호 가야금산조 이수자 겸 전 영동군립 난계국악단 수석 가야금 연주자의 가야금 산조 공연을 즐길 수 있다. 25현 가야금을 뜯어 만들어내는 선율이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과 어우러져 눈과 귀, 입까지 즐거운 시간이다.
5월 18일 오후 5시에는 이곳 사유원에서 국악제가 열린다.
◆수령 654년, 반 천년을 견딘 모과나무를 만나다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사유원을 걷다 보면 가지런히 심겨 있는 108그루의 모과나무를 만날 수 있다. 설립자의 나무 사랑. 그 중심에는 '모과나무'가 있다.
이미 20대 나이에 정원을 조성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은 유 회장은 평생 나무와 돌을 수집해 왔다. 유 회장은 1980년대부터 수령 300년 이상의 '모과나무'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300년산 모과나무 4그루가 일본에 불법으로 반출된다는 소식을 들은 유 회장은 이를 막기 위해 4배의 가격을 더 치르고 모과나무를 매매했다.
이후 일본이 아닌 유 회장이 더 높은 값을 치러준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 있는 모과나무가 하나둘 유 회장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유 회장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모과나무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 지금의 사유원 용지를 매입해 황무지 같았던 공간을 숲으로 가꿨다.
풍설기천년에는 평균 수령 524년의 반 천년을 살아온 모과나무 108그루가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가장 나이가 많은 654년이 된 모과나무. 지금은 속이 텅 비어버렸지만, 긴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열매를 내어주고 쉼터를 공급해 줬다. 모과나무의 형상을 보니 마치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고 떠나신 할머니가 떠오른다. 가장 어린나무인 6번째 나무는 251년이 됐다.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운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풍설기천년의 조경을 맡은 정영선 선생은 모과나무가 천년까지 뿌리를 뻗치고 자랄 수 있도록 배치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계단식으로 층마다 심어진 모과나무는 하나하나의 작품처럼 우러러보게 된다.
사유원의 나무는 하나도 허투루 키우는 것이 없다. 나무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고 원산지와 이력 관리가 꼼꼼하게 이뤄지고 있다.
◆빛이 스며드는 곳, 이야기가 있는 건축물
사유원에 들어서서 비나리길과 초하루길을 지나 꽃과 나무를 보며 걷다 보면 하얀 콘크리트 벽이 고개를 내민다. 이 건축은 마드리드 오에스테 공원에 피카소의 명작(게르니카, 임신한 여인) 전시를 위한 가상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진행이 어려워지면서 이곳 소요헌에 안착하게 됐다.
소요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공간 끝에 붉은 철제 조형물이 보인다. 그 위로는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무모한 폭력'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1937년 독일군의 공습 때 게르니카 주민의 지붕을 뚫고 들어온 포탄을 연상케 한다.
소요헌을 건축한 알바로 시자는 1992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인 시자의 건축물 소요헌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소요헌을 나와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하얀 전망대가 보인다. 사유원 어디서도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하얗게 고개를 내밀고 있던 시자의 또 다른 작품 '소대'다. 새 둥지 전망대라는 뜻의 소대는 소요헌을 전망할 수 있는 곳을 지어달라는 시자의 요청으로 지어졌다.
설립자는 처음에는 소대 만드는 것을 꺼렸다. 외부에서 사유원을 바라봤을 때 건축물이 우뚝 솟아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대를 세우고 그곳에 올라가는 순간 건축가의 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15도 정도 기울어진 전망대 안은 마치 미로 같다. 밝은 날에도 빛 한 점 없는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기대감과 긴장감이 맴돈다. 꼭대기에 올라서기 전 작게 나 있는 창을 통해 소요헌의 풍경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소대 꼭대기에 올라서면 창평저수지를 끼고 펼쳐진 푸른 숲이 눈에 가득 담긴다. 20.5m 높이의 아찔함과 탁 트인 시원한 전망이 동시에 느껴진다.
소요헌 곳곳에는 새 둥지가 보인다. 제비들이 터를 잡고 있는 둥지란다. 숲과 나무, 꽃, 물이 가득한 이곳에 동물들이 빠질 수 없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쉼이 되는 공간이다.
사유원 꼭대기에 있는 명정. '풍광은 이미 걸어오면서 보았으니, 내면을 더욱 들여다보라'는 뜻에서 명정은 전망대가 지하로 나 있다. 좁은 계단을 돌아 내려오면 빼곡했던 나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회색 콘크리트가 펼쳐진다. 하늘과 물밖에 없는 이곳은 현생과 내생이 교차하는 곳이다.
명정에서 위를 쳐다보면 공간마다 빛이 쏟아져 내린다. 좁은 계단과 통로 곳곳에서 자그마한 구멍에서 빛이 새어 들어온다. 하마터면 비에 가려 못 보고 갈 뻔한 빛줄기를 운 좋게도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목원, 눈과 코와 입으로 즐기다
입장료가 평일 기준 5만원인 사유원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목원'이라고 한다. 다이닝과 오페라, 가야금 등 다채로운 공연과 미식이 어우러져 실제로 이곳에 와본 사람이라면 비싸다는 생각을 접게 된단다.
유 회장은 이곳을 설립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일반에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초대받아 사유원에 방문한 지인들이 입을 모아 "우리만 보고 즐기기에 아깝다"는 이야기를 했다. 고민 끝에 유 회장은 이곳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유원은 붐비는 공간이 아닌 이곳에서 오로지 나를 바라보고 치유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방문객 수를 제한하고 있다. 평일에는 300명, 주말에는 350명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
유 회장은 사유원 설립 당시 공간 역학 전문가에게 "10만평 안에서 몇 명이 있어야 내가 혼자라고 느낄 수 있는지 계산해 봐라"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해진 수가 1일 300명이다. 숲과 내가 1 대 1로 오롯이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몽몽미방은 런치와 디너 코스로 운영된다. 한식이나 양식 코스로 제공되며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건강한 맛을 낸다. 최상영 셰프는 "런치와 디너에는 스테이크 또는 파스타가 포함된다"라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메뉴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날 런치에는 오늘의 수프로 제주산 당근을 사용해 만든 당근크림수프가 제공됐다.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수프는 당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신선한 채소와 함께 부라타 치즈 샐러드와 부드러운 호주산안심스테이크는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마무리로 나온 딸기 무스케이크까지 맛보면 완벽한 한 끼 완성이다. 창밖의 푸른 풍경을 바라보며 먹으니 눈과 입이 모두 즐겁다.
식사 후에는 가가빈빈에서 모과차를 맛봤다. 가가빈빈까지 올라가는 길목에는 라일락이 진한 향기를 흩날린다. 환경이 좋아서일까. 잔디 곳곳에 피어있는 민들레는 아기 주먹만큼 큼직하고 하얀 꽃씨가 되어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