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의석수 108:175가 웅변하듯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4•10 총선이 국민의힘 참패, 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다. 이번 총선을 지배한 건 정권심판론이었다. 대선 때 윤석열 정권 출범에 기여했던 중도의 표심이 대거 야당의 정권심판론에 가세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년 만에 표심이 거꾸로 된 이유가 무엇일까?
미당 서정주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듯이 정권심판론을 키운 건 팔할이 윤 대통령이다. 따라서 정권심판론은 곧 윤석열 심판론이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지만 추진 과정에서의 오만과 독선, 불통에 대한 불만이 컸다. 킬러문항 배제, R&D 예산 삭감, 의료개혁 등에서 보듯 정책 추진 초기의 박수가 질타로 바뀌기 일쑤였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대통령도 말했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그래놓고는 "내가 늘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으니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당연했다. '무엇을' 하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어떻게' 하느냐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헤겔의 혜안은 정치의 영역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그러나 이 3종세트의 등장 이전부터 바닥 민심은 이반되고 있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의 행보는 늘 위태위태했다. '기-승-전-김건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선 전부터 민주당은 집요하게 김 여사를 물고 늘어졌다. 여기에 본인의 부적절한 처신까지 더하여 김건희 여사에 대한 세간의 거부감은 상당하다. 명품백 수수 논란과 인사 개입 의혹은 그간의 민주당 공세에 반신반의하던 사람까지도 돌아서게 만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라고는 '공정과 상식'뿐이다. 이 절대반지를 앞세워 조국 일가의 비리를 단죄했다. 여세를 몰아 '무능한 문재인 정권 교체'를 외치며 정치에 뛰어들었고 단숨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런 자산을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에 대해 감싸기로 일관함으로써 스스로 무너뜨렸다. 혐의의 경중과 상관없이 김건희 여사나 김혜경 여사, 정경심 교수를 똑같은 잣대로 수사하는 게 공정이고 그렇게 하라는 게 보편적 상식을 가진 국민들의 요구다.
내로남불의 상징 조국이 급조한 조국혁신당이 비례정당 투표에서 24%를 넘기는 득표로 12석을 얻은 함의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내로남불은 어떠한가를 국민이 묻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윤 대통령을 만들어 준 시발점이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국회 발언이다. 역사에 남을 이 발언이 부인에게는 충성하는 거 아니냐는 비아냥으로 희화화되고 있다. 정의당이 정의를 버리고 민주당과 야합을 일삼다가 몰락했음을 윤 대통령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부인의 문제에 단호하지 못한 대통령을 보면서 떠오르는 중국 성어가 '애옥급오(愛屋及烏)'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이 지붕 위의 까마귀에게까지 미친다는 뜻이니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우리 속담과 상통한다. 애급옥오(愛及屋烏)나 옥오지애(屋烏之愛), 애인급오(愛人及烏)라고도 한다. 성어 애옥급오가 유래한 고사를 살펴보자.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한 후 고민에 빠졌다. 폭군 주왕(紂王)을 추종하던 무리들을 어찌할 것인가. 중신들의 의견은 갈렸다. 창업의 일등공신 강태공은 강경론을 폈다. "신이 듣기로는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 지붕 위의 까마귀도 사랑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면 그 집의 담장까지도 미워한다고 했습니다(臣聞愛其人者, 兼愛屋上之烏;憎其人者, 惡其余胥). 모두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무왕의 동생 소공(召公)도 강태공의 의견에 합세했다. 무왕의 또 다른 동생 주공(周公)이 말했다. "모두 집에 돌아가 각자의 논밭을 경작하게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군왕이 자신의 친구와 친족만 편애하지 않고 어진 정치를 펼치면 만천하가 감복할 것입니다." 무왕이 크게 기뻐하고는 주공의 말대로 했다. 과연 천하가 빠르게 안정되었고 민심이 돌아오고 나라는 더욱 부강해졌다.
하나만 좋아도 다 좋고 하나만 싫어도 다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할 것 같은 윤석열 대통령의 처신이 딱 그러했고, 김 여사가 싫으니 대통령도 싫고 이것저것 다 싫은 지금 국민의 심사가 또한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이 고사가 후대에 남기고자 한 교훈을 되새겨 본다. 하나가 좋다고 다 좋다 하고 하나가 나쁘다고 다 나쁘다고 하지 말자. 그것은 편견일 수 있으니까. 편견에 치우친 강태공의 말을 주 무왕이 받아들였다면 8백년 가까이 존속한 주나라 번영의 기틀은 쉽게 갖춰지지 않았을 테니까.
대통령 부인이 4개월 째 공식석상에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 부부가 투표도 따로따로 했다. 보기 딱한 일이다. 복수혈전을 벼르고 있는 조국 대표는 벌써부터 '김건희 특검법' 운운하고 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 윤 대통령이 애처가라는 건 세상이 다 안다. 바쁜 검사 생활 와중에도 식사 준비를 전담했다지 않은가. 그렇더라도 대통령 재임 중에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지극한 아내 사랑은 퇴임 후에 마음껏 베풀어도 늦지 않다. 추락하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국정 수행 동력을 회복하는 비결이 먼 데 있지 않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