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13) 아들아, 부디 용이 되거라 - 망자성룡(望子成龍)

2024-04-0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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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혁 에세이스트
[유재혁 에세이스트]

 
 

진작에 손주를 보고도 남을 연배가 됐지만 자녀의 결혼을 알리는 친구들의 소식이 여전히 심심찮게 날아든다. 더러는 늦둥이 자녀의 혼사인 경우도 있겠으나 아마도 대개 만혼 때문일 게다. 젊은 세대의 평균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있음을 비단 통계청 발표뿐 아니라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설령 만혼이면 어떠랴.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시대에 결혼을 한다는 게 어디 예삿일인가. 결혼은 이제 개인적으로 축하받을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 되었다. 
물론 젊은이들이 결혼에 골인해도 세계 최저를 달리는 초저출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매우 심각하다. 인구학 분야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작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현재의 인구추세가 지속된다면 2750년에 한국이 국가소멸의 위험에 처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산책길은 견모차 일색이고 유모차는 가물에 콩 나듯 눈에 띈다. 젊었을 적엔 인구가 폭증할까 봐 온나라가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인구가 줄어 국가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묻고 더블로 가!"라는 영화속 대사로 유명한 배우 김응수가 '손주 바보'로 나와 "그 강아지들(손주)은 다 어디 가고 이 강아지(반려견)뿐이냐"고 탄식하는 모 증권회사 광고는 아이를 낳지 않는 세태를 풍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운 시대다. 우리 세대까지만 해도 결혼하면 으레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으로 알고 살았지만, 요즘 세대는 자식에 대한 가치관도 다르거니와 출산과 육아 환경이 이전 세대에 비해 크게 열악해졌다. 부부가 맞벌이하되 아이는 낳지 않는 '딩크(DINK)족'은 더이상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사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다둥이 부모가 애국자로 칭송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세태가 어찌 변하든 일단 자식을 낳으면 큰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게 한결같은 부모의 마음이다. 중국인들은 그런 마음을 망자성룡(望子成龍), 망녀성봉(望女成鳳)이란 성어로 표현한다. 아들은 용이 되기를 바라고 딸은 봉황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우리 속담이나 '까마귀 둥지에서 봉황이 나온다(老鴉巢里出鳳凰노아소리출봉황)'고 하는 중국 속담이나 다 자식들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신분 상승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열망이 담겨 있다. 왜 용이고 봉황인가. 용은 상서로운 동물로 존엄과 권위, 권력을 상징한다. 황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남자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봉황은 고귀함과 우아함, 지혜를 상징한다. 한마디로 귀부인이 연상된다.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용이 한끝 위이긴 하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가문을 이을 아들과 출가외인이 될 딸에 대한 기대치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남녀평등 사상이 확고히 뿌리내린 현대사회에서 그와 같은 성차별적 개념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간 강력한 인구억제책으로 인해 딸이든 아들이든 한 명 이상 낳을 수도 없었으니 아들 딸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요즘 부모들은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들이 잠재능력을 맘껏 발휘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성원한다. 아들은 결혼하면 '며느리 남편'으로 재정의되면서 사돈집 아들이 되기 일쑤이고 연로한 부모 수발을 드는 건 주로 딸이다보니 오히려 딸 선호로 사회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아이들도 친가보다는 외가, 고모보다는 이모와 가깝게 지낸다. '신모계사회'라는 말도 회자된다.

그러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우리 자식 세대가 처한 현실은 우울하다. 연애, 결혼, 출산 외에도 포기할 것이 너무 많아 'N포세대'로 불릴 정도다. 청년층의 70%가 부모와 함께 살면서 생계를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부모에게 얹혀 사는 이른바 '캥거루족'이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일찌기 일본이 그러했고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18세가 넘으면 부모 품을 떠나 독립하는 게 당연시되던 미국에서 조차 캥거루족의 비율이 2013년에 이미 30%를 넘어섰다. 

중국은 캥거루족을 '컨라오주(啃老族)'라고 한다. 이 '컨(啃)'이란 단어가 좀 으시시하다. '갉아먹다', '물어뜯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즉, 캥거루족은 늙은 부모를 갉아먹는 족속이란 얘기다. 청년층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경제가 일취월장하던 부모세대 때와 달리 지금은 취업은 힘들고 집 한 채 장만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건 고사하고 결혼 자체가 힘든 세상이다. 지상의 방 한칸은 있어야 뭘 해도 할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용이나 봉황은 언감생심, 그저 우리 자식들이 캥거루만 아니어도 감사할 일이다. 장성한 자식이 결혼을 하겠다는 것은 캥거루족이 되지는 않겠다는 선언이다. 얼마 전 단톡방에 올라온 고등학교 동기의 아들 결혼 소식에 달린 한 댓글이 시선을 끈다. "부러움을 담아 깊이 축하드립니다~" 과년한 미혼 자식을 둔 부모들이라면 깊이 공감할 것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만고불변일진대 자기 자식들은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용과 봉황으로 만들려고 하면서 정작 남의 집 자식들에겐 개천에서 가재, 붕어, 개구리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한 조국의 이른바 '가붕개' 발언은 우리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조국은 놀랍게도 '대학입시 기회균등'을 당의 강령이자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누구나 공정을 얘기할 수 있지만 적어도 조국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 않을까?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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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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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어이없는건 그런사람을 뽑는다는거. 중우정치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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