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를 막론하고 공천을 받고나서 막말 논란으로 사퇴하는 후보가 속출했다. 사퇴 압박을 받았으나 끝까지 버틴 후보들도 한둘이 아니다. 참 요란한 총선이다. 친윤불패니 비명횡사니, 막천이니 사천이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공천 작업이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가자마자 막말 논란으로 공천이 줄취소되는 일대 소동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도대체 공천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후보들의 뒤늦은 자질 논란은 시스템 공천이니 국민 눈높이 공천이니 하는 말들이 그저 공염불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여야 정치인들의 막말 사례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막말 파동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04년 당시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당 의장 정동영의 노인 비하 막말로 인해 탄핵 역풍의 여세를 몰아 압승을 하리라던 전망에서 한창 못미치는 신승에 만족해야 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김용민의 막말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당시 그는 노인들 투표 못하도록 엘리베이터를 없애자고 했는가 하면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강간하자는 희대의 망언을 입에 올려 당 총선 패배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2020년 총선에서는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가 세월호 유가족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사퇴했다. 나이들면 장애인이라고 한 후보도 있었다.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막말은 정치의 저질화, 극단화를 낳고 이는 또 더 센 막말로 이어진다.
총선 후보는 아니지만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회칼 테러 운운하다가 일주일만에 자진사퇴했다. 사방에서 막말로 인해 사퇴 소동을 빚고 있는 와중에 기자들 모아놓고 언론관을 의심케 할 문제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건 만용인가, 무지함인가. 자칭 어용지식인 유시민도 늘 하던대로 정부여당을 향한 독설을 쏟아내며 막말 잔치판에 숟가락을 얹었다. 입을 함부로 놀려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을 보노라면 마치 죽을 걸 모르고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파도 파도 나오는 막말 퍼레이드가 어느 평론가의 말마따나 가히 '막말대장경'을 방불케 한다. 막말에 기준은 따로 없다. 국민 눈높이에 어긋나고 국민정서법에 저촉되면 백약이 무효다. 디지털 시대의 막말에는 유통기한도 없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기록은 남는다. 녹음파일에 유튜브에 SNS에. 내가 한 말과 쓴 글은 사라지지도 지워지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족쇄처럼 따라다닌다. 자신의 말과 글로 인해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조로남불' 같은 풍자적 신조어 여럿을 낳고 반칙과 위선, 내로남불의 상징이 된 조국의 처지가 그러하지 않은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내뱉은 패륜적 '형수욕설' 또한 끝없이 소환되고 인구에 회자된다.
낚시질을 해서라도 때를 기다리라는 '기다림의 철학'을 후세에 교훈으로 남긴 강태공의 고사가 작금의 막말 파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대의 문인 왕무(王楙)가 지은 《야객총서(野客叢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강태공은 지모가 출중한 인물이다. 본래 상(商)나라 관리였으나 주왕(紂王)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사표를 낸 후 섬서성 위수 강변에 은거했다. 그는 훗날 주문왕(周文王)이 되는 당대의 실력자 희창이 자신을 중용하기를 바라며 때를 기다렸다. 그래서 늘 강가에 나가 미끼를 꿰지 않은 곧은 낚시바늘을 사용하면서 낚시를 하는 척했다.
매일같이 그러고 지내니 생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돈도 못 벌고 전도 무망한 그에게 낙담한 처 마씨(馬氏)가 이혼을 요구했다. 머지않아 부귀를 누리게 될 거라고 하면서 달랬지만 마씨에게는 죄다 헛소리로 들릴 뿐이었으니 결국 강태공도 이혼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훗날 강태공이 주문왕에게 중용되고 그 아들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멸하고 주(周)왕조를 창업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후 제(齊) 땅을 다스리는 제후에 봉해지자 전처 마씨가 그와 이혼한 것을 깊이 후회하고 재결합을 요청했다.
진작에 마씨의 사람됨을 알아본 강태공은 그녀와 재결합을 할 생각이 없었다. 어느날 마씨를 만난 강태공이 주전자에 가득 담긴 물을 땅바닥에 붓고는 마씨에게 그걸 다시 주워 담으라고 했다. 마씨가 황급히 땅바닥에 엎드려 애를 써보았으나 이미 진흙탕이 된 물을 무슨 수로 회수할 수 있겠는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태공이 차갑게 말했다. "당신은 이미 나를 떠나갔기에 다시 재결합하는 건 불가능하오. 이는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기 어려운 것과 같소." (太公取一壺水傾于地, 令妻收入. 乃語之日:‘’若言離更合, 覆水定難收.")
주워 담을 수 없는 게 어디 물뿐인가. 말도 그렇다. 일단 입밖으로 나온 말은 더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다. 천 리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언젠가 나를 공격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에 다섯 왕조에서 11명의 군주를 모신 명재상이자 처세의 달인인 풍도(馮道)가 이런 시를 남겼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로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시의 제목은 '설시舌詩'.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 세상 살아가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게 말조심이다.
지난 회차에 이어 2회 연속 총선 이슈를 글감으로 삼았다.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선거의 위력을 새삼 느낀다. 별의별 꼼수와 각종 논란이 난무하는 우여곡절 끝에 후보자 등록이 마감되었다. 이제 총선이 코앞이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이라도 여야가 정책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야 지켜보는 국민들이 그나마 희망을 갖지 않겠는가.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보기도 싫고 욕도 아까운 국회위원들. 또 다시 주어담을수 없는 물이 안되도록 투표 잘해야하는데 의욕이 안납니다. 도대체 세금을 왜 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