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중국의 대미 전략

2024-04-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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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은 전략경쟁이 격화되지 않도록 중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달 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에서 대만, 남중국해, 우크라이나, 한반도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틀 뒤에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광저우에서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와 회담한 후 베이징으로 이동해 리창 국무원 총리, 란포안 재정부장, 판궁성 인민은행장과 회동했다. 양국의 재무부와 상무부는 2023년 9월 구성된 중·미경제실무그룹(中美经济工作组), 중·미금융실무그룹(中美金融工作组), 중·미통상실무그룹(中美商贸工作组)을 통해 현안을 여러 차례 협의했다. 이렇게 미국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과 갈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중국은 미국과 협상에서 상당히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옐런 장관이 이번 방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제기한 문제는 중국의 과잉생산이다. 중국에서 소비되지 않은 전기차, 리튬 배터리, 태양열 패널이 저가로 수출되면서, 미국과 EU 기업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협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관세 인상은 물론 EU와 함께 공조한다는 계획을 시사했다.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옐런 장관이 보호주의적 수단을 언급한 이유는 올 11월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있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미국의 요구를 즉각 반박했다. 중국산 전기차, 리튬 배터리, 태양열 패널의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 보조금 지원과 같은 산업정책이 아니라 중국 기업의 경쟁력과 산업공급망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차원에서 탈탄소 경제로 이행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제품의 공급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인민은행은 옐런 장관이 중국을 떠나기 하루 전인 8일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혁신을 위한 5000억 위안 규모의 특별 재대출 제도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산업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중국이 미국의 요청을 거절한 또 하나의 의제는 대러 지원이다. 옐런 장관은 무기는 물론 군사적으로 전용이 가능한 이중 용도(Dual Use) 제품을 러시아에 제공하는 기업을 제재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왕이 외교부장은 8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회담함으로써 미국의 경고를 즉각적으로 무시했다. 올해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할 때 중국은 대러 지원을 더 확대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때 미국이 중국 기업을 대러 제재 리스트에 추가하면, 미·중 사이의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수세에서 공세로 서서히 전환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10월 이후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의 자립을 막기 위한 반도체 제조장비의 수출통제를 강화해 왔다. 미국은 일본과 네덜란드는 물론 한국과 독일의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에도 대중 제재를 준수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중국에 이미 수출한 제품에 대한 유지보수까지 금지하라고 동맹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해 미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하나둘씩 꺼내 들고 있다. 지난해 3월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마이크론 제품의 사이버 보안 문제를 제기했다. 12월에는 공업정보화부가 인텔과 AMD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정부용 컴퓨터(PC)와 서버를 퇴출하는 지침을 하달했다. 정보기술안전평가센터는 중국제 프로세서와 운영체제(OS)만 인증했다. 또한 올해 초 공업정보화부는 올해 초 차이나모바일, 차이나 유니콤, 차이나 텔레콤 등 중국 3대 국영 이동통신사에 2027년까지 중앙처리장치(CPU)를 외국산에서 중국산으로 교체하도록 명령했다.

중국의 반격은 미국의 제재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로 해석된다. 범용 반도체에서 중국은 미국보다 6배 이상 생산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에서도 양국 사이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화웨이는 작년부터 판매한 최신형 메이트 60 프로에 SMIC가 제조한 7나노 칩을 사용했다. 오는 9월 출시 예정인 메이트 70 프로는 5G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5.5G 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미 공세는 우리나라를 상당히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중 관계를 한·미 관계에 종속시켰기 때문에, 현 정부가 중국에 대한 독자적인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설상가상으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정재호 주중한국대사의 역할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중국과 공식적인 협상은커녕 비공식적인 대화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이 제기한 중국산 제품의 과잉 생산에 대해서도 검토가 시급하다. 현대차 및 기아차가 전기차,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가 리튬 배터리, 한화가 태양열 패널을 각각 생산하고 있다. 미국과 EU가 중국 기업을 제재하게 되면, 우리 기업은 단기적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화웨이 사례가 보여주듯이, 제재의 효과가 줄어들면 중국 기업의 점유율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또한 우리 기업이 중국의 시장과 공급망을 완전하게 탈피할 수 없는 현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리튬 배터리의 경우 소재·부품·장비의 대중 의존도가 매우 높아 중국의 제재에 취약하다.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한·중·일은 정상회담을 우리나라에서 다음 달 개최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양자 대화 채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회담은 한·중 최고지도자가 허심탄회하게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중국에 할 말은 하되 불필요한 자극적 표현이나 행동을 삼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양자 관계의 복원은 더욱더 요원해질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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