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트럼프 2.0'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2024-02-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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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가 거의 확실시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이 글로벌 질서에 미칠 영향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국의 이익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맹국은 트럼프 재선을 기회보다는 위기로 간주하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약화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월 13일 트루스 소셜 앱에 “자국이 지불해야 할 정당한 분담금을 내지 않았던 20개국에 돈을 내지 않으면 미군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자 돈이 들어왔다”라고 언급하였다. 그 다음날 그는 NATO 회원국의 GDP 대비 방위비 비중을 앱에 게시하면서 방위비를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지출하지 않는 NATO 회원국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물론 러시아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겠다고 발언하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고위 관리들은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의 NATO 탈퇴를 결단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도 미군 철수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한 및 주일 미군의 주둔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다. 방위금 분담금 협상에서 그는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폭 인상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했었다. 그는 2024년 1월 21일 폭스 뉴스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무력 침공 가능성에 대해 “내가 만약 그 질문에 대답한다면, 나는 협상에서 아주 불리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라며 미국이 돕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였다. 또한 “우리는 예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반도체 전부를 만들었으나 현재는 90%를 대만에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만이 영리하고 멋지게 우리 산업을 탈취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비난하였다.
반면, 북한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장은 놀라울 정도로 우호적이다. 그는 1월 14일 유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매우 영리하고 터프하지만 나를 좋아했다”고 칭찬하면서 세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그와 정말 잘 지냈고, 그래서 (미국이) 안전할 수 있었다”고 자랑했다.
미국의 군사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동맹을 중시하지 않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유라시아에서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가 약화되면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정권 교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전략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2023년 중반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반격 작전이 실패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소모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유럽 국가들이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거의 사라졌으며 미국 내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여론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이 추가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가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수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민주주의 정상 회담과 한·미·일 협력도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노력은 권위주의 국가가 많은 글로벌 사우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국제무대에서 미국에 대한 지지가 축소되었다. 대중 견제를 강화하기 위한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선언도 북·중·러 협력의 강화라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2018년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정상회담 직전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던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 등장 이후 핵무기 개발을 재개하여 2023년 핵탄두 ‘화산-31’을 공개하였다.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전개하는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한·미 핵협의 그룹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보다는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 능력을 대폭 향상시킨 북한의 전쟁 위협을 방어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러한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2023년 5월 11일 CNN 타운홀 미팅에서 그는 승패보다 인명 피해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을 위해 푸틴과 만나, 24시간 내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푸틴 대통령을 전범이 아니라 협상 상대로 인정한다면, 신속한 타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평화 협상은 미국의 전략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미·러 관계의 개선은 중·러 협력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면 러시아가 중국과 교류를 확대할 필요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와 교류 재개는 미·중 전략경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러시아를 견제하지 않아도 되면, 미국은 대중 압박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기여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의도와 결과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있지만, 어느 미국 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북한의 최고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개최할 정도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만약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게 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위험은 빠르게 낮아질 것이다.
미국의 정권 교체는 항상 위기와 기회를 동반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글로벌 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이다. 동맹을 경시한다는 점에서는 위기이지만, 교착국면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는 점에서 기회이다. 최선의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위기를 줄이고 기회를 늘리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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