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22대 국회, 실종된 정치력 회복해 민생부터 해결하라

2024-04-1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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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22대 총선은 결과와 상관없이 퇴보하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정치인의 위상이 관료에 의해 무시당할 정도로 추락하는 경향은 이미 윤석열 정부 출범과 더불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었다. 국회에 나온 장관 후보자는 물론 증인들이 과거와는 반대로 질의하고 추궁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함은 물론 반박하면서 거짓말까지 서슴없이 함으로써 준비가 부실한 국회의원은 당황하게 만들고 준비된 국회의원은 황당하게 만드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치인의 위신 추락은 관료에 의한 정치인의 대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의 연장이다. 관료에 대한 정치권의 과도한 의존은 급기야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의존은 일단 입법부의 역량 부족에서 출발했다. 행정부는 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해 법률이 필요하고 입법부는 입법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에서 소위 ‘행정입법’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 관행이 행정부에도 입법권이 있는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착각하게 만든 사례는 유명하다. 입법부 스스로 청부입법에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시행령에 위임하는 범위를 넓혀 행정부가 법률의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오늘날 정부의 ‘시행령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
입법부의 행정부화는 이미 오래전에 경제부처에서 시작되었다. 비근한 예로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투기 광풍이 몰아칠 때 국토부 관료들이 준비한 23차례의 대책이 얼마나 국정철학에 부합되면서 투기억제책으로서 실효성이 있는지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끌려다니다가 결국 ‘실패한 정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홍남기 당시 부총리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거듭 거부하면서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지 못한 이유도 ‘정치인 부총리’의 부족 때문이었다.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60조원의 재난지원금이 등장하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 기재부의 지원금 거부는 사실상 쿠데타 같은 명령불복종이었음이 드러났다.
한국 정치의 문제로 곧잘 지적되고 있는 정치의 사법화도 정치인의 역량 부족과 관료에 의한 정치의 조종을 보여주는 한 측면이다. 한국 정치인이 애용하는 ‘법적 대응’은 스스로의 정치적 역량 부족을 실토할 뿐이다. 정치행위의 옳고 그름을 검찰 수사나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려는 옹색함은 정치 영역을 좁히고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무능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실수이다. 입법 과정에서 사법부의 조언을 구하거나 국회 수석전문위원의 ‘의견’에 법안 선정을 의존하는 무능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관료에 의한 정치 조종의 확산은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극대화되고 있다. 검찰 의존도가 극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정 운영 자체가 검찰 수사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검찰권력이 새롭게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독립적인 권력집단으로 급부상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입법부가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권력을 제한하려 했을 때 '등'을 확대 해석하여 결국 입법부의 의도를 무너뜨린 사실은 입법부의 최대 입법 실패 사례로 꼽을 만하다. 22대 입법부의 인적 구성은 한국 정치의 사법화와 관료에 대한 정치권의 의존이 심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정치의 행정화는 정치(인)의 기본적인 자질에 해당하는 공감능력의 결손을 갈수록 심화시키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의 ‘바람’의 실체도 바로 민심에서 동떨어진 기존 정치에 대한 염증의 표현이었다. ‘대파 스캔들’은 작은 불씨였다. 민심을 탐지하고 민생을 챙기는 것은 전문적인 정치의 고유한 영역이다. 22대 총선이 검찰관료가 주도하는 정치의 폐단을 ‘검찰독재’로 고발하면서도 정작 차기 국회에서 관료와 비정치인의 색깔이 더욱 두드러질 것임을 예고하는 모순은 반드시 직업 정치인에 의한 민생국회의 부활로 반전되어야 한다. ‘외연 확장’을 명분으로 여야가 영입한 비정치인 인재들에게 국회의원이 ‘정년 없는 재취업 일자리’처럼 비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그마저도 유사 업종이 아니라 정반대의 성격을 띠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태세 전환’이 ‘이익 충돌’ 없이 이루어질지 걱정스럽다. 공익과 국익에 전념하는 사고와 활동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정치인의 ‘실험 실패’가 이번 정부를 마지막으로 사라질 것을 요구하는 민의의 준엄한 판단이 이번 총선 결과가 전하는 메시지로 읽히기를 기대해본다. 차기 국회에서는 민생문제의 내실 있는 해결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는 필요할 것이다.
정치가 우선 당장 해결해야 하는 민생문제는 물가 폭등으로 악화된 생활수준의 회복이다. 윤석열 정부가 동원한 방법은 판매자에 대한 지원금 지급을 통해 가격을 낮추는 희대의 정책수단이었다. 이 수단은 소비자보다 판매자(기업)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데 방점을 찍는다. 소비자는 정부지원금을 받는 과일을 소비하는 경우에 한에서만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차별적인 지원이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권 역시 제한당했다. 현금 지원이 소비자에게 이루어졌다면 가격이 급등한 과일 소비는 줄이거나 포기하고 다른 과일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이 전 국민 대상 25만원의 지역화폐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자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면서 여당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작금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측면에서 출발했으므로 소득 증가는 줄어든 수요를 일부 회복시킬 것이기 때문에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내수 침체의 원인은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갑이 ‘비어 있는’ 데 있다. 물가 안정을 이유로 가계 지원에는 반대하면서 판매자 지원을 찬성하는 주장은 공감능력의 부족이자 정치철학의 실패이다. 가계 지원에 필요한 재원은 ‘망국병’ 감세만 포기하면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또 다른 실종된 민생의제가 일자리 창출이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의 공공일자리정책을 대안 없이 폐기한 후 일자리는 개인의 ‘각자도생’에 떠넘겼다. 청년취업은 감소하고 은둔고립 청년이 35만명으로 추정되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내세우는 일자리 증가는 저임금 노인 일자리다. 그마저 최저임금 차등제를 두어 더 깎자는 반인간적 제안을 내세웠던 서울시의원들은 소환 대상이다. '모든 국민의 근로의 권리'와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는'(헌법 제32조 ①항) 국가의 의무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지금이다. 괜찮은 일자리는 청년 개인에게 연애에서 자신감을 살려주는 든든한 뒷심이다. 남녀가 사랑하고 궁극적으로 자녀를 가질 결심을 하게 하는 물적 기반이 된다. 일자리만으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인구 소멸 대책의 출발점은 일자리 창출이어야 한다. 아울러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원인이 좋은 일자리의 수도권 집중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지역 소멸과 지역 균형 발전 대책의 출발점 역시 지역 일자리 창출이어야 한다. 인구 소멸이든 균형 발전이든 괜찮은 일자리의 고른 창출에서 출발할 때 비로소 실효성이 있는 대책의 연결고리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22대 국회는 직업 정치인이 부족한 정치를 예고하고 있다. 관료 출신 대통령의 반정치적인 선택을 저지하고 정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22대 국회의 소명이다. 주권자에게 복무하는 공익과 국익의 정치를 회복하는 것은 국회의원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정치력을 부단히 발휘함으로써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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