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학교 뉴스가 연이어 시선을 끌었다. 일부 주에서는 교사가 부족하여 학위나 자격증이 없어도 교단에 설 수 있게 하고 있다. 한편 훈육 안되는 학생에 임금도 제자리여서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미국의 이런 현상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임금과 팬데믹 이후 악화된 학생들의 문제 행동, 그리고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중의 약화가 원인이라고 보도되었다. 미국에서 교사가 오래전부터 인기 있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도 청소년들의 직업 선호도에서 상위권이었던 교사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작년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들로 인해 교직사회가 요동쳤는데, 한국 교사들의 상황은 미국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학교가 예전처럼 교육3주체(교사·학생·학부모) 간에 공경과 사랑이 충만한 선망의 직장이 아니라 교사가 자살을 할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곳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내 새끼 지상주의’이다. 부모가 자녀를 한 명만 낳아 과잉보호하여 기르는 데다 가족 공동체가 붕괴되어 아이를 지도할 어른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일본에서는 괴물 부모(monster parents)와 ‘교사 사냥꾼’, 홍콩에서는 자녀의 왕자병/공주병을 부추기는 부모가 이미 사회 문제로 떠올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현상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년간(2018~2023) 교사 100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교육 당국이 ‘원인 불명’으로 분류한 70명을 제외하고 남은 30명 중 절반 이상인 16명(53.3%)은 ‘우울증, 공황장애’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원인 불명으로 처리된 극단선택 교사들도 유서나 정황으로 보면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 폭언이나 협박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그중에서 언론을 통해 알려진 교사 자살 사건만 살펴보면, 2021년 7월 부산에서 아동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고 아동학대로 학부모에게 고발당한 초등학교 교사, 12월 의정부에서 수업 중 사고로 부상 당한 학생의 학부모에게 3년간 금전 요구와 협박을 받은 초교 교사, 2023년 7월 학폭 사안 처리과정에서 학부모에게 지속적인 민원과 폭언을 받은 서울 서이초 교사, 9월 대전에서 아동학대를 했다고 민원과 폭언을 받은 초교 교사, 2023년 9월 소규모 학교의 업무 과다와 관리자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은 군산 초교 교사 등 다수이다. 이외에도 정신적 스트레스로 치료를 받으며 고통을 참고 있는 교사들도 많다. 다음은 「초등학교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사례 2077건 모음집」(2023.7)에 소개된 학부모의 갑질, 악성 민원, 협박 등 사례의 일부분이다.
“내 아이 장염이에요. 죽 끓여 먹이세요”, “급식에 나온 귤을 왜 까주지 않았느냐?”, “선생님, 우리 아이 좀 깨워주세요. 초인종 눌러서요”, “애를 하교 후 학원에 데려다 달라”, “마음 다치니 틀린 문제에 빗금 치지 말라”, “임원 선거에서 기호 1번으로 스튜디오 촬영을 해놨으니 기호를 바꿔 달라”, “아이폰 쓰지 마라. 애들이 보고 사달라 조른다”, “우리 엄마가 선생님 교육청에 신고한대요”, “나도 다른 아버지들처럼 학교 찾아가 개판 쳐볼까요?”, “제가 전공자인데 그렇게 지도하면 안되죠. 당장 그만두세요”, “통지표 수정해줘. 너 같은 건 교사하면 안돼”
심지어 2022년 교육부 주무관이었던 S씨는 교사에게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도 다 알아 듣습니다”, “하지마, 안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칭찬은 과장해서, 사과는 자주, 진지하게 합니다”, “나는 담임교체를 할 수 있는 사람” 등의 말로 갑질과 협박을 한 사건도 있었다. 2006년 일본 도쿄 신주쿠 초교에서 자살한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갑질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사들이 죽어서 학교를 떠나는 이유가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과 모욕 때문이라는 점이 충격적이다. 괴물 부모 현상으로 몸살을 앓은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잘못된 자녀 양육 문화를 반성하고 대대적 자정 캠페인을 벌인 것처럼 우리도 다음과 같은 운동을 펼쳐야 한다.
첫째,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중 분위기를 조성하여 교권, 즉 훈육권과 교육권을 회복해주어야 한다. 팬데믹 이후 악화된 학생들의 문제 행동에 대한 훈육지도를 아동학대로 고발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교사가 학생 지도나 학폭 처리 과정에서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두려워서 학생 훈육을 포기하고 비행을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학교 내 문제 학생에 대하여 학교 경찰(school police)이 사법권까지 행사하지만, 미국 제도를 모방하여 만든 우리나라의 학교 지킴이는 문제 학생을 제재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올바르게 열정적으로 교육하는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로 고발되어 교육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교권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둘째, 학생에게 법률에 정한 인성교육을 제대로 실행하여 바른 인성을 길러야 한다. 새의 양 날개가 튼튼해야 창공을 나는 것처럼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전문성과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 인성이란 성품, 덕성, 가치관으로 구성되는데, 열 살 전에 사람됨을 가르쳐야 한다. 인성교육은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인 부모가 모범을 통해 중심 역할을 맡고 교사는 보충 역할을 해야 한다. 학생에게 인성교육을 강화하여 교사에게 욕설이나 폭력 행사를 예방하고, 학생 인권조례 내용을 재검토해야 한다.
셋째, 학부모에게 ‘내 새끼 지상주의’가 종국적으로는 자기 자식을 망친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경쟁이 심한 학벌사회에서 ‘내 새끼 지상주의’에 매몰된 부모는 자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과 동일시한다. 그런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자녀는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지 못해 스스로 삶의 목표를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부모는 자기 자식이 소중한 것처럼 역지사지 정신으로 다른 학생과 교사를 대해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과거에 부모의 교육열과 열악한 교육여건에서도 학생들에게 열정을 쏟은 교사들의 기여가 컸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사가 역량을 발휘하도록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시와 경기도교육청이 갑질 근절 대책을 마련하고 나선 것은 다행이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교사 이직률이 높아지거나 수준 낮은 교사들이 임용되는 것을 예방하려면 교사와 학생 및 학부모가 상호 존중하는 학교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어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