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지진] '불의 고리'에 노출된 세계 반도체 공급망…수급 우려 고조

2024-04-0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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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최첨단 반도체 점유율 90%...AI용 반도체 수급난 가중 우려

레거시 반도체도 '지진 리스크'...범용 반도체 고장 대거 보유한 日

TSMC 로고
TSMC 로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5년 만에 가장 강력한 지진이 대만을 강타하면서 반도체 공급망 차질 문제가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올랐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TSMC의 생산능력 90%가 대만에 집중돼 있어서다.

올해 첫날 일본 노토 지진에 이어 3개월 만에 대만 지진이 발생하면서 반도체업계에 '지진 리스크'가 부각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이 집중된 일본과 대만은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조산지대에 위치해 지진이 잦은 편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불의 고리에 노출된 셈이다. 더욱이 대만은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해 최첨단 반도체 수급 우려를 키운다.
 
TSMC, 최첨단 반도체 점유율 90%...AI용 반도체 수급난 가중 우려
3일(현지시간) CNN방송은 “이번 지진이 반도체 공급망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진 않지만, 지진이 발생하기 쉽고 지정학적 긴장의 중심에 있는 섬나라에 반도체 생산능력이 집중돼 있는 데 따른 리스크(위험)를 극명하게 상기시켰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3일 오전 대만 동부 해안 도시 화롄에서 발생한 규모 7.2 지진으로 TSMC 대만 내 일부 팹(fab·반도체 생산 시설)의 기둥이 파손되고 반도체 생산 원료인 웨이퍼가 손상되는 등 피해가 발생해 팹 가동이 최소 6시간 중단됐다. TSMC는 지진 발생 10시간 만인 이날 오후 “웨이퍼 팹 설비의 70% 이상을 복구했고, 신설된 18팹(3나노급·1나노는 10억 분의1 미터 공정) 등의 복구율은 80%를 넘었다”면서 “일부 공장의 장비 몇 대가 파손돼 생산에 영향을 미쳤으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포함한 주요 기계는 손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날 밤부터 조업을 재개한다는 방침을 전했으나, 반도체 업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개발 열풍으로 인한 최첨단 반도체 수급난이 가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AI·전기차 등에 필요한 7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TSMC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더욱이 반도체 제조 특성상 단 몇 시간이더라도 공장이 한번 멈추면 재가동하는 데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초정밀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반도체는 적정 온도와 습도 등 모든 조건이 최적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1년 내내 24시간 멈추지 않고 가동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번 지진에 따른 TSMC 피해 규모를 6000만 달러(약 809억원)로 추산한 영국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는 보고서를 통해 “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은 몇 주간 진공상태에서 연중무휴로 24시간 가동돼야만 한다”면서 “(장비) 작동이 중단됐다는 건 생산 중인 반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레거시 반도체도 '지진 리스크'...범용 반도체 고장 대거 보유한 日
그렇다고 범용(레거시) 반도체 공급망이 안전한 것도 아니다. 역시 불의 고리에 자리 잡고 있어 지진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일본은 첨단 반도체 제조시설은 없지만, 범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웨이퍼 공장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일본 기업은 세계 반도체 소재 시장의 약 52%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 상위 15개 반도체 장비 제조사 중 7개가 일본 기업이다.  

대만 지진 발생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1월 1일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규모 7.6 강진이 발생했을 때, 주요 피해 지역에 무라타·도시바·고쿠사이 일렉트릭·파나소닉 반도체 소재·제조 공장이 위치해 있어 반도체 업계에 이미 ‘지진 리스크’가 부각된 바 있다. 또한 TSMC가 공장을 설립한 구마모토 역시 지난 2016년 규모 7의 지진이 발생해 270명 이상이 사망했다.

TSMC가 미·중 반도체 전쟁과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악화 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공급망을 사수하기 위해 펼치고 있는 ‘탈대만’ 전략의 중심에 일본이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반도체 부활’을 노리는 일본이 TSMC에 보조금을 두둑이 쥐어주면서 자국 내 반도체 공장을 건설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TSMC는 지난달 일본 구마모토 제1공장을 개소한 데 이어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구마모토 제2공장 건설 계획도 세우고 있다.  

삼성, 인텔 등과의 '나노전쟁'에서 승기를 거머쥐기 위해 TSMC가 탈대만 전략에서 3나노 미만의 최첨단 공정을 제외한 것도 문제다. TSMC는 대만 북부 주커 바오산과 남부 가오슝에 2나노 공장 두 곳을 짓고 있으며 자이현 타이바오시에는 1나노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베이더 뉴저지공과대학 데이터 과학 연구소 교수 겸 소장은 대만에 반도체 공급망이 집중된 것에 대해 “이는 실존적 위협”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자동차와 스마트폰, 군사 방어 및 무기 시스템, 항공 등 모든 분야에 반도체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만약 (대만 내 반도체) 생산이 중단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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