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지진의 여파로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차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유럽에서 우려가 높아진 모습이다. 유럽연합(EU)은 가전제품과 장비수입의 60%를 대만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EU는 반도체법까지 만들어 대만에 과하게 쏠린 반도체 공급망을 역내로 들여오는 노력에 더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3일(이하 현지시간) 대만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업체 TSMC를 비롯해 주요 대만 반도체 회사들은 지진 피해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TSMC는 회사 안전 시스템이 정상 작동했다고 설명을 내놨지만 자세한 영향은 여전히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유럽은 대만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가 높다. 2021년 기준 EU의 전체 가전제품과 장비 수입 60%는 대만에서 이뤄질 정도다. 대표적으로 TSMC는 네덜란드의 반도체 핵심 장비업체 ASML의 주요고객이다. TSMC가 고액의 반도체 노광장비(반도체 위에 빛을 조사해 회로를 그리는 장치) 등을 사들인 덕분에 ASML 회사 순매출의 38%는 TSMC 몫이라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TSMC가 이렇게 중요하기에 ASML은 타이완 섬에 공장 2곳을 두고 있다.
이에 이번 대만 지진을 통해 대만에 치중된 유럽의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 노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 간 지정학적 리스크도 있어 유럽국가들은 공급망을 역내로 들여오고 싶어했다. 지난해 1월 ASML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로저 다센은 폴리티코에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플랜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역내로 공급망을 이전하는 움직임이 더 활발해질 거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EU는 작년 9월부터 미국의 반도체과학법과 유사한 '유럽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을 시행하고, 역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나섰다. 역내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총 430억 유로(약 62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EU는 이 법을 통해 현재 약 10%인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로 2배 확대하는 걸 목표로 한다. 이에 TSMC은 지난해 8월 독일 드레스덴에 100억 유로(약 14조원) 이상을 투자해 제조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미국 반도체 업체 인텔도 독일에 두 개의 최첨단 반도체 팹(공장) 건설에 300억(약 43조원) 유로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여러 현실적 제약도 남았다. 우선 유럽의 반도체 생태계가 잘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내에서는 TSMC 등의 공장을 유치해도 이들 기업 기술력에 맞는 부품과 원료를 조달할 생태계가 유럽 내에 형성되지 않았다고 지난해 10월 보도했다. 매체는 현재 업계 선두는 10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공정을 하는데 있어 유럽 내 기술은 이와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 파이낸셜타임스는 반도체 세척에 쓰이는 '황산' 수급에 있어 유럽이 아시아보다 어려운 점도 제약사항으로 거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