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열린경제] 부자미국과 가난한 유럽 …이 둘을 가른 건 생산성

2024-04-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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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
[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

 
 
 
지난 2017년 11월 1일 일본에서는 4차 아베 내각이 출범했다. 통화공급 확대, 재정투입, 성장전략 추진이라는 아베노믹스의 3개 화살이 화두가 되던 시점이었다. 이때 아베 내각은 일본 경제가 안고 있던 핵심 문제 중 하나인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생산성 혁명’과 ‘인재 만들기 혁명’ 두 가지를 들고 나왔다. 이를 계기로 일본 사회에서는 생산성 논란이 확산됐다. 당시 일본 경제의 상황을 보면 2013년에서 2016년까지 4년 동안의 잠재 성장률 수준이 1%에 불과했다. 이 기간에 자본의 성장 기여도는 0% 포인트에 그쳤고 노동은 1% 포인트, 총요소생산성은 0.8% 포인트에 머물렀다. 문제는 노동력 부족이 더 심화될 것으로 보여 일본으로서는 성장률 제고를 위한 처방이 생산성 향상이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2016년 기준으로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1.6달러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치인 47.0달러보다 11.5%나 낮았다. 생산성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부자 미국, 가난한 유럽>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미국과 유럽은 ‘경제 성적표’의 차이가 크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우등생’인 반면 유럽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는 성장 부진 블록이다. 미국과 유로 지역은 1995년에만 해도 경제 규모가 비슷했지만 이후 30여 년간 차이가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미국 경제는 1995년의 두 배 정도 수준으로 커진 데 비해 유로 경제는 1.5배를 조금 넘는 정도에 그쳤다. 이 같은 격차는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한국은행은 2010~2019년 중 미국과 유로 지역의 성장세 차별화는 생산성과 노동력 차이 등에 따른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 기간에 미국의 성장률이 유로 지역보다 연평균 0.9% 포인트가 높았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0.5% 포인트는 생산성, 그리고 0.4% 포인트는 노동 투입의 차이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결국 생산성이 미국과 유로 지역의 성장 격차를 가져온 주요인임을 알 수 있다. 생산성 측면에서 미국은 기술혁신과 고숙련 인재 유치 등으로 우위를 유지해왔다. 반면에 유로 지역은 첨단산업에 대한 정책적 육성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데다 연구개발 투자도 미흡하고 이민 인력이 저숙련자 위주여서 낮은 생산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얘기해온 일본의 사례, 그리고 미국과 유로 지역의 비교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바로 경제 성장의 열쇠를 쥐고 있는 변수가 총요소생산성이라는 사실이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생산성보다는 범위가 큰 개념이다. 경제 전반의 총체적 효율성을 뜻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은 어떤 상태에 있을까? 답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전신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초에 내놓은 ‘총요소생산성 현황과 경쟁력 비교’ 결과를 보면, 미국의 총요소생산성 수준을 1로 봤을 때 한국은 0.614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미국을 포함해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의 평균치인 0.856에도 크게 뒤처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 산업 전반의 총요소생산성이 선진국 중위값 대비 약 67%로 부진하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낮은 수준의 생산성은 국가경쟁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3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64개국 가운데 28위로 한해 전보다 1단계가 떨어졌다. 국가경쟁력이 약화된 것은 정부 효율성 순위가 2단계 내려간 탓이 크지만 기업효율성 부문에서 생산성의 순위가 하락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에 31위까지 올라갔던 생산성 순위는 지난해에는 41위로 10계단이나 내려앉았다. 총요소생산성을 구성하는 노동생산성에도 ‘빨간 불’이 켜져 있다. 노동연구원의 분석을 보면 2022년 기준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3.1달러로 OECD 회원국 중 28위에 그쳤다. 독일(68.5달러)과 비교하면 62.9% 수준으로 격차가 37%가 넘는다.
 
한국경제의 총요소생산성에 문제가 생긴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총요소생산성을 구성하는 요소별로 살펴보면, 경제자유도를 제외하고 사회적 자본, 규제환경, 혁신성, 인적자본 네 가지가 G5 국가 평균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이 중 사회구성원에 대한 신뢰 등 사회적 연대를 촉진하는 유무형의 자본을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은 가장 낙제점을 받고 있는 부문이다. 2023 레가툼 번영지수 발표 내용을 보면 한국의 사회적 자본 지수는 167개국 중 107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신뢰 기반이 취약해진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 내의 갈등은 위험 수위에 놓여 있다. 갈등 수준이 OECD 국가 중 셋째로 높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도 생산성을 좀먹고 있다. IMF는 총요소생산성이 저조한 것은 과도한 상품시장 규제 때문이라며 한국의 규제 수준은 OECD 회원국 중 여섯째로 강하다고 지적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의 규제 총괄지수는 1.71로 OECD 평균치 1.40을 크게 웃돌고 있다. 특히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혁신 성과 지수와 인재 경쟁력 지수가 G5 국가를 하회하고 있는 것도 총요소생산성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산성에 비상이 걸린 이유를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투자 부진, 주력산업의 성장세 미흡,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 부문으로의 고용 집중, 중소기업의 낮은 경쟁력, 지지부진한 기업구조조정, 인구 고령화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총요소생산성이 성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향후 한국 경제의 진로를 생산성이 좌우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은은 ‘한국경제 80년(1970~2050) 및 미래성장전략’ 보고서에서 2010년대 이후의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 축소가 성장률 하락의 주된 요인이라며 향후 30년의 경제 성장은 생산성 기여도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산성이 높거나 중간 수준인 시나리오를 전제해도 성장률은 2020년대의 2%대에서 2040년대에는 0.1~0.2% 선으로 하강 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산성이 낮은 시나리오 아래서는 2040년대 성장률이 마이너스 0.1%로 뒷걸음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플러스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냐의 여부가 생산성에 달려 있는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한은의 이 같은 회색빛 전망에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 KDI는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2010년대의 0.7%에서 OECD 상위 25~50% 수준인 1.0%로 올라설 경우 2050년 성장률이 0.5% 내외로 전망되지만,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성장률이 0%로 하락해 한국 경제가 ‘제로 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처럼 생산성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떠올라 있다. 그런데도 이를 중시하고 생산성 개선에 ‘올인’하는 정책적 노력과 사회적 공감대를 감지하기 어려운 게 솔직한 현실이다. 정부의 경제정책 청사진을 봐도 생산성에 관한 관심은 다른 현안에 밀려 있다.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에게도 생산성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거의 형성되지 않은 모습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풀어갈 과제가 생산성이라는 해답이 주어져 있는데도 이에 대한 ‘큰 그림’이 제시되지 않은 채 적절한 대책이 추진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는 길을 재촉할 뿐이다. 물론 총요소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복잡다단하다. 생산성 부진을 가져온 요인인 혁신성과 인적자본, 규제, 사회적 자본에 그 답이 있는데 여기에는 경제적 변수뿐만 아니라 신뢰라는 비경제적 요소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미래’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제기된 숙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총요소생산성을 개선하는 것은 사회와 경제 전반을 혁신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정부와 기업, 정치권, 그리고 개별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몫을 다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그랜드 플랜’을 내놓고 신성장 동력 확보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인적자본 확충, 규제개혁, 중소기업과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 강화, 공정한 신뢰 사회 구축 등에 주력해야 한다. 한 마디로 거시경제 운용을 생산성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업도 산업현장에서 생산 효율을 올려 노동생산성을 개선하고 연구개발의 성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정치권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상호 적대시하는 갈등 구조를 해소하고 협치의 ‘텃밭’을 일궈냄으로써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개별 경제주체들도 불신 대신 신뢰, 갈등 대신 화합의 씨앗을 뿌려 사회 문화를 일신(一新)해내야 한다. 신뢰가 형성되면 성장률이 높아지고 행복과 복지에 기여한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자본과 노동의 양적 투입을 늘린 성장에 기대왔다. 더 이상 이런 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총요소생산성을 올리는 질적 성장이 시대적 과제로 주어졌다. 이는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을 환골탈태(換骨奪胎)시키는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힘을 합해 잘 대응해낼 것인가의 여부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 궤도가 정해질 것이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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