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산업지 디지타임스와 미국 IT전문지 나인투파이브맥은 공급망 보고서를 인용해 애플이 차세대 AP에 기존 플라스틱(PCB·인쇄회로기판) 대신 유리기판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며 삼성전자 계열사와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유리기판은 반도체 기판의 소재를 플라스틱에서 유리로 바꾼 것을 말한다. 유리기판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처리장치·메모리 등 성질이 다른 2개 이상의 반도체를 하나의 칩으로 합치는 첨단 패키징 과정에서 중간 기판인 '실리콘 인터포저'를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TSMC가 애플, 엔비디아 등 미국 초대형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를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이유는 5㎚(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 역량과 함께 'CoWoS'라는 2.5D 패키징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애플 모바일 AP와 엔비디아 인공지능(AI) 반도체는 모두 CoWoS를 통해 처리장치와 메모리를 하나의 칩으로 합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집적도가 올라가면서 실리콘 인터포저에 처리장치·메모리를 올리는 비용이 커지고 수율은 떨어지는 문제에 직면했다. 이에 유리기판을 활용해 실리콘 인터포저를 생략함으로써 패키징 비용을 낮추고 수율을 높이는 방안이 최근 반도체 업계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또 인텔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리기판은 열 배출이 PCB보다 우수해 미세공정의 한계에 부딪힌 반도체 성능(집적도)을 올리는 데 필수로 여겨질 전망이다.
유리기판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미국 인텔이다. 인텔은 유리기판 연구개발에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히고 지난해 9월 유리기판을 적용한 반도체 시제품을 공개했다. 2030년 내로 유리기판을 적용한 중앙처리장치(CPU)와 AI 반도체를 시장에 출시하겠다는 야심도 드러냈다.
한국에선 SKC와 삼성전기가 유리기판 연구개발과 양산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SKC는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합작해 만든 자회사 앱솔리스를 통해 유리기판 사업을 전개 중이다. 2021년 슈퍼컴퓨터(HPC)용 유리기판 시제품을 선보인 데 이어 올해 미국 켄터키주 코빙턴 공장에서 유리기판 양산에 착수할 계획이다.
삼성전기는 지난 1월 CES 2024에서 유리기판 실물을 공개했다. 장덕현 삼성전기 대표는 지난 20일 정기 주총 후 기자들을 만나 "유리기판 기술 개발을 내년 말까지 끝내고 고객사와 협의해 2026~2027년에 양산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등 계열사와 협력함으로써 유리기판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려 인텔과 본격적으로 경쟁에 나설 방침이다.
이를 두고 디지타임스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보유한 첨단 다층 디스플레이용 유리기판 기술은 반도체용 유리기판 제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만큼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디스플레이 협업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인투파이브맥도 "애플은 유리기판 시장에 초기 진입하길 원하는 만큼 시장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삼성전자 계열사와 협업할 것이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이 현실화하면 2027년 출시하는 애플 아이폰·아이패드·맥은 삼성전기가 만든 유리기판을 채택한 차세대 AP를 탑재할 전망이다.
한편 최근 반도체 기판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는 LG이노텍도 유리기판 사업에 박차를 가한다. 문혁수 LG이노텍 대표는 지난 21일 정기 주총에서 "미국 큰 반도체 회사를 중심으로 유리기판에 관심이 많다"며 "LG이노텍도 유리기판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