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중도층의 합리적 선택이 나라 미래 결정한다

2024-03-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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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 기획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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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 벽보 제출 마감일인 27일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부산 지역 후보 선거 벽보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4·10 국회의원 총선에서도 선거 결과를 좌우할 사람들은 중도파 또는 무당층이다.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중도파는 대략 30% 수준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자신을 중도파라고 하는 응답 비율이 작아지긴 한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 또는 국민의힘 중 어느 한쪽으로 마음을 굳힌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30%에 이르는 중도파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는 전통적 지지층이 있다. 지역, 나이, 이념에 따라 고정돼 있다. 이들 전통적 지지층은 선거 때마다 더불어민주당 또는 국민의힘에 ‘묻지 마’ 투표를 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정치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선거 당시 상황에 따라 양당 지지층의 결속력에 다소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선거 결과를 좌우할 정도는 되지 않는다.

 

중도파 또는 무당층은  말 그대로 어떤 특정 정당도 고정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투표를 할 때 지역, 나이,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어떤 정당이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따져서 표를 던질 뿐이다. 당연히 선거 때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지고,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당의 승패가 결정된다. 중도파 또는 무당층의 선택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전 국민 1인당 25만원'···긴급 처방이냐 매표 행위냐
 

그럼 중도파는 이번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무엇을 기준으로 지지할 정당을 골라야 할까? 그 기준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그 정당의 국가 운영 철학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정당이 큰 테두리에서 국가를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정당의 국가 운영 철학은  그 정당의 대표적이거나 상징적인 정책에서 나타난다. 이 정책을 잘 살펴보면 그 정당의 국가 운영 철학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이재명 대표가 말한 ‘민생 회복 지원금’ 정책이 상징적인  정책의 하나이다. 민생 회복 지원금이란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100만원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이 대표는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13조원”이라며 “이 돈으로 죽어가는 민생 경제와 소상공인, 골목 경제, 지방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총 13조원을 풀면 소비가 활성화돼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 주장대로 당장은  돈이 돌아 소비가 늘 수는 있다. 하지만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때도 긴급 재난 지원금을 풀었지만 소비 진작 효과는 단기간에 그치고 말았다. 이 대표는 민생 회복 지원금을 ‘민생 경제 심폐 소생술’이라고 했다. 심장이 멈춰 생명을 잃어가는 사람에게 심폐 소생술이 필요하듯, 민생 경제가 죽어가는 상황이니 긴급 지원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당장 가구당 100만원을 풀지 않으면 숨이 넘어갈 만큼 긴박한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심폐 소생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선거에서 돈으로 표를 얻기 위해  상황을 의도적으로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나아가 국가의 바람직한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하는 논란이다. 큰 정부는 예산을 많이 쓰고 국민 생활에 많이 개입한다. 작은 정부는 그 반대다. 큰 정부가 되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그 부담을 감당하려면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여야 한다. 세금을 늘리면 경제 활력이 떨어져 국민 전체의 소득이 줄고 이는 소비 감소를 불어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표 주장대로 소비를 늘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반짝 효과에 그칠 일회성 정책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 투자 지원과 일자리 창출로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국민의힘 상징적 공약의 하나로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들 수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은 금투세 폐지법안(소득세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반대해 통과되지 않고 폐기될 상황”이라며 “국민의힘이 1400만 개인 투자자의 힘이 되겠다. 금투세 폐지를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들을 향해 “총선 결과에 따라 금투세가 폐지될지 아니면 시행될지가 결정된다”고 했다. 


정책 들여다보면 정당이 보인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같은 금융투자로 일정 수준  이상의 양도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주식투자로 5000만원, 펀드 등 기타 상품으로 250만원 이상 벌면 이익의 20~25%를 과세한다. 금투세는 2022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주식시장 침체를 이유로 2년간 유예돼 2025년부터 시행된다.   

 

금투세가 시행되면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 대신 외국 주식시장으로 옮겨 갈 수 있다. 이는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금투세를 폐지하면 장기적으로 국내 주식시장이 활성화돼 1400만 개인 투자자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금투세 폐지는 조세 형평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말대로 근로소득처럼 투자소득에도 과세해야 하는 게 조세형평 원칙에 맞을 수 있다. 세금 감면으로 경제를 활성화해 장기적으로 국민이 이익을 보게 하는 정책을 따를 것인가, 조세 형평이라는 원칙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이다.  


외교 안보 정책에서도 양당 국가 운영 철학의 상징성이 드러난다. 이재명 대표는 “중국인들이 한국이 싫다고 한국 물건을 사지 않는다. 왜 중국을 집적거리느냐,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는 중국 말)’,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정권이 가장 크게 망가트린 게 외교”라며 “(중국과 대만의) 양안 문제에 우리가 왜 개입하나, 대만해협이 뭘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 있나”라고 했다. 이 대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우리가 왜 끼나"라고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협력 강화만을 중시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멀리하거나 자극한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한동훈 위원장은 “민주당의 대중국 굴종 인식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한 위원장은 “이 대표는 작년 6월 주한 중국 대사관을 직접 찾아가서 외교부의 국장급에 불과한 싱하이밍 대사에게 훈시에 가까운 일장 연설을 15분간 고분고분 듣고 왔다”며 "중국 패배에 베팅(‘건다’는 뜻) 하다간 후회한다는 싱 대사의 협박에 가까운 발언에 한마디 반박도 못한 게 이 대표다. 실수로 반박을 못한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라는 점을 이번 셰셰 발언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 불법 어선이 서해까지 들어오고 한복, 김치를 자기들 문화라 주장하고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해도 이 대표는 그 뜻을 받아들여 '셰셰'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 강민석 대변인은 “중국은 우리 최대 교역국이다. 최대 교역국과 잘 지내라는 말이 왜 사대주의냐”며 “외교의 목적은 국익이다. 국익 실현을 위한 외교를 하라는 게 무슨 굴종적 자세냐”라고 했다. 민주당 주장대로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잘 지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대중국 및 대러시아 정책은 한·미·일 안보·경제 협력 체계라는 우리 외교 안보 정책의 큰 틀을 떠나서 논의할 수는 없다. 


막말·자질 논란보다 중요한 '국가 운영 철학'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라는 주변 강대국의 간섭과 압박에서 벗어나 국가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 토대는 한·미 안보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한·미·일 협력 관계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도 잘 지내면서 안보의 기둥이 되고 있는 미국·일본과도 잘 지내는 게 우리의  과제이고 숙명이다. 우리가 중국과 대만의 양안 문제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두 문제가 한·미·일 협력 체계라는 우리 외교 안보 정책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협력 체계를 유지하려면 중국과 대만 간의 양안 문제나 러시와와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국제 문제에 대해 우리는 미·일과 보조를 맞춰야 할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한·미·일 협력 체계가 흔들릴 수 있고 이는 우리의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게 우리가 놓인 현실이다. 


민주당 말대로 ‘국익’ 외교를 한다면 이런 복잡한 국제정세를 잘 헤아려 심사숙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이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왜 끼어드나’ 라고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셰셰’ 논란에는  외교 안보 국정 운영 철학에 대한 이 대표와 한 위원장의 근본적 차이가 담겨 있다.  


이 밖에도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에는 국정 운영 철학 차이를 보여주는 정책들이 많이 있다.  후보들의 막말이나 자질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중요한 게 양당의 국가 운영 철학이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쪽 국가 운영 철학이 국가와 국민에게 더 이익이 될지 하는 판단이 내려진다. 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중도파 또는 무당층이다. 이들이 어떤 쪽을 선택하느냐에 나라의 미래 운명이 걸려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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