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하자 이번엔 기업대출이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체 기업대출 규모는 물론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회사가 늘어나면서다. 은행권이 돌파구로 기업대출을 공략하고 기업은 고금리에 채권 대신 대출을 자금 통로로 택한 영향이다. 향후 기업대출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7일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이 지난 14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세 곳의 총 기업대출 규모는 587조9772억원으로 2022년 말(545조5829억원)보다 7.2% 늘었다. 1년 사이 회사가 은행에서 추가로 빌린 자금만 42조3943억원에 달한다는 의미다.
기업대출이 늘어난 건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공략과 함께 고금리에 따른 기업의 대출 선호 등이 맞물리면서 기업대출이 빠르게 확대했다. 특히 기업의 주요한 자금 확보 수단 중 하나인 회사채가 고금리에 발행 금리가 높아지자, 비교적 이자 부담이 낮은 기업대출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은행권이 여신 부문에서 기업에 집중하는 점도 기업대출을 늘린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을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보고, 최근까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규제를 강화해 왔다. 은행 입장에서는 가계대출을 줄이는 대신 기업대출을 늘려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몰린 셈이다.
문제는 향후 기업대출의 건전성 악화가 빨라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 국민·하나·우리은행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업대출 중 부실채권(NPL)이 크게 늘었다. 은행별로 국민은행은 기업대출 중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2022년 말 0.26%에서 지난해 말 0.42%로 0.16%포인트 상승했다. 고정이하여신은 3개월 이상 원리금 상환이 연체된 부실채권을 말한다.
하나은행도 같은 기간 0.24%에서 0.29%로 올랐다. 우리은행의 경우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0.23%로 동일했다. 은행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한 기업들이 1년 사이 늘었거나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는 의미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이 이자 이익을 유지하는 데 있어 기업대출이 주요한 부분 중 하나”라며 “당국에서 가계대출은 계속 조이고 있기 때문에 기업대출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