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칼럼] 교육개혁 '백년대계' …'교육 3주체'가 체감할 정책부터

2024-03-1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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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수시로 교육개혁, 노동개혁, 연금개혁 등 3대 개혁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에 몰입한 것처럼 윤석열 정부도 과거의 문제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고, 출범 2년이 되어가는데 교육개혁을 적극적으로 지휘하거나 전문가에게 힘을 실어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주요 후보들은 각자 10대 공약 아래 세부 공약을 제시하고, 당선자는 이를 바탕으로 국정과제를 설정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6개 국정 목표 아래 23개 약속, 120개 국정과제를 설정하였다. 6개 국정 목표 중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라는 목표 아래 과기정통부, 교육부, 환경부 등이 지켜야 할 4가지 약속을 제시하였다. 그중 교육부 관련 약속인 ‘창의적 교육으로 미래 인재 육성’ 아래 디지털 인재 양성과 SW·AI 및 디지털 교육 기반 조성,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학습 혁명, 대학 자율화 확대로 혁신 허브 구축, 교육과 돌봄 확대로 교육 격차 해소, 지역·대학 연계·협력 등 5가지 국정과제가 설정되었다. 이렇게 거시적 측면에서 기술된 국정과제를 국민, 특히 교육의 3주체(교사·교수, 학생, 학부모)가 체감하려면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 중 교육개혁이나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23년 12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는 5132만명인데 그중 본인이나 자녀의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질 법한 사람을 10대 후반부터 50대까지로 보면 3000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 중 60%에 이른다. 이처럼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 문제를 공론화하여 해결안을 찾아가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단임으로서 임기가 5년이고, 과거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1.25년(15개월)이었다. 참고로 미국은 대통령 임기가 4년이지만 연임이 가능하고, 과거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약 3년(35개월)이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런 시간적 제약을 극복하려면 대통령의 의지와 추진력이 중요하고, 교육부 장관도 대통령과 같은 기간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도 나름대로 교육개혁은 있었지만, 미완의 과제를 추진하려면 민주화 이후 최근 정부에서 실시한 교육개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교육에 큰 족적을 남긴 5·31 교육개혁은 스스로 ‘교육대통령’을 자처하며 작업에 지속적으로 관심과 지원을 보내 준 김영삼 대통령(1993~1998)의 정치적 정당성과 카리스마 덕택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대통령한테서 거의 전권을 위임받은 교육개혁위원회가 교육정책 의제 설정 주도권을 가지고 청와대 및 교육부와 협력했다. 5·31 교육개혁에서 긍정적 성과를 나타내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정책으로 교육재정 GNP 5% 확보, 학교생활기록부, 학교운영위원회, 초등영어교육 등 많이 있지만 열린 교육 운동, 대학 설립 준칙주의, 학부제 등 부정적 결과를 낸 정책들도 있다.
김대중 정부(1998~2003)에서 실행되거나 시범 실시된 초·중등·고등교육 정책 대부분은 5·31 교육개혁으로 기획되어 승계된 것들이다. 그 밖에 추가된 정책으로 중학교 의무교육, 교원 정년 단축, 3불 정책,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통한 교육 여건 개선, 지방교육자치제 개편, 교원노조 합법화, 평생교육을 위한 학점은행제 등을 실시하였고 소규모 학교 통폐합과 국립대학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노무현 정부(2003~2008) 교육정책의 기본 방향은 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공교육 내실화, 학벌 타파와 대학 서열 완화,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와 지방 대학 육성, 단위 학교의 참여와 자치 확대,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자율성 강화였다. 노무현 정부는 유아교육법 제정, 교육복지 도입 등 성과도 많았지만 교원평가제, 수준별 교육 등 유명무실해진 정책과 교육감 직선제 등 부작용을 낳은 정책들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2008~2013)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을 본격화했고 ‘인재 대국’ 건설을 교육 비전으로 삼았다. 교육정책으로 누리과정 도입, 학교 다양화, 교원능력개발평가제 확대, 포뮬러 펀딩 방식에 의한 대학 재정 지원, 대학 정보공시제 활성화,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한 장학제도 등을 시행했으며 방과 후 학교 위탁경영, EBS 수능 강의와 출제 연계, 입학사정관제 등 부정적 결과를 낳은 정책들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2013~2017)의 교육정책 비전은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이었다. 이를 위한 정책으로 중학교 자유학기제, 고등학교 무상교육, 문·이과 구분 폐지,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개선,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일명 선행학습금지법) 제정 등을 시행했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대학생 반값 등록금 등은 부작용을 낳았다. 문재인 정부(2017~2022)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 제정, 고등학교 의무교육, 고교학점제 추진 등을 실시했고 일제고사 폐지,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 수능 절대평가 확대 등은 정착하지 못하고 다음 정부에서 폐지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2022~현재)가 제시한 교육 영역 국정과제는 종전부터 제기된 교육 문제이자 사회문제여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새롭게 발표된 교육정책 중에 초등 늘봄학교, 교육발전특구와 자율형 공립고, 대학 장학금 수혜 확대 등 포퓰리즘적 정책도 있고 의과대학 정원 증원, 연구개발 예산 대폭 삭감 정책은 촘촘한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나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책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개혁 어젠다에 맞춰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5·31 교육개혁 이후에도 수많은 교육개혁을 추진해 왔으나 사교육 경감, 대학입시, 인구 변화에 따른 초·중·고·대학 구조조정,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과정 및 학습혁명 등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앞으로 시행할 교육개혁은 다음 두 가지 점을 유의해서 설계해야 한다. 첫째, 교육 3주체가 체감할 수 있는 절실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하면 교육은 공염불이 될 것이므로 교권 신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에게 인권은 이미 충분히 개선되었으므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학습혁명이 일어나도록 대입 등 입학시험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학부모를 위해서는 사교육 경감, 돌봄학교 운영, 학교폭력이 없는 안전한 학교를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상설 기구로 설치된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교육개혁 방안을 장기적 관점에서 수립해야 한다. 교육 문제는 3주체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내용적 타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야 한다. 법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개혁은 국회,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한다.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 2024년 총지출 예산 656조6000억원 중 교육예산은 95조6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5% 정도고, 59조4000억원인 국방예산보다 많다. 윤석열 정부는 장기적인 교육개혁안을 속히 수립하고, 교육 3주체가 체감할 수 있도록 막대한 국가 재정을 효율적으로 투입할 교육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어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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