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득은 자유로워지고 소각 의무는 사라지면서 많은 상장회사들이 자기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자기주식 비율이 20%를 넘어 40%에 이르는 회사들도 여럿이다. 회사가 스스로를 소유하는 셈으로 제도상 허점을 악용해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회계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그 본질에 관한 논의가 있어 왔다. 자기주식을 매각하면 자산 등 현금이 증가하므로 자산으로 처리하여야 한다는 ‘자산설’이 있다. 자기주식을 취득하면 실질적으로는 자본금을 환급하는 효과가 발생해 미발행주식(자본감소)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미발행주식설’이 있다. ‘자산설’에 의하면 자기주식의 취득이나 처분은 손익거래로 인식하고, ‘미발행주식설’에 의하면 자본환급이므로 자본거래로 인식한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이를 자본의 차감항목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소액주주를 축출하기 위해 지배주주 주식매도청구권을 행사하거나 주식병합을 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에게 지급할 돈을 줄이기 위해 이러한 특성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 주당 자산가치를 산정할 때 미발행주식설에 의하면 자산이 아니고 미발행주식이므로 자기주식을 분모와 분자에서 모두 제외해야 한다. 분모에는 자기주식을 포함하고, 분자에서는 자기주식을 제외하면 주당 가치가 축소·왜곡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소액주주에게 지급할 주식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자기주식을 분모에만 포함하고 분자에서는 제외하여 터무니없이 가치를 축소시키는 사례가 있다. 소액주주의 자산가치가 남아 있는 지배주주에게 무상으로 이전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법원은 그것이 정당한 조치라고 판단을 하기도 한다.
자기주식을 소각하지 않고 계속 보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는 경영권 방어의 수단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특단의 수단이 필요할 정도로 적대적 M&A 시도 사례를 찾기 어렵고, 성공한 사례는 아예 없다.
결국 우리 현실에서는 자기주식이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삿돈을 이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기업들의 자사주 악용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 원인으로 줄곧 언급되어 왔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위원회가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를 권고한 이유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겠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상장사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관한 자율 공시를 하도록 하고, 주식 소각 등으로 주가를 올린 기업에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계속 문제가 되어온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는 포함되지 않았다.
자기주식을 악용하는 기업들은 정부 발표 방안을 이유로 온갖 마법을 부리는 자기주식을 소각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식 거래가격을 낮춰 상속세·증여세를 줄이거나 회삿돈으로 자기주식을 늘려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은 자율이 아니라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자기주식 소각을 의무화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