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우수 기술력을 갖춘 극소수의 기업이 반도체 산업을 독점했다면 앞으로는 고객사가 요구하는 핵심 (반도체)칩 역량에 대한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경쟁 체제가 등장할 것이다. 설계, 디자인, 패키징 등 차별화 포인트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열심히 준비한다면 한국 시장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Arm도 한국 반도체 생태계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황선욱 Arm코리아 사장은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구 Arm코리아 본사에서 진행된 아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필두로 다양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몇 안되는 국가"라며 "샘 올트먼 오픈 AI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등 글로벌 기업 수장이 한국과 반도체 협업을 확대하려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파운드리와 메모리 분야에서 1등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동시에 팹리스, 디자인서비스, AI칩 수요가 많은 글로벌 전자기업 등 우수 파트너사들이 많은 것도 한국 반도체 시장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황 사장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 휴대폰, 스마트워치부터 오늘 타고 온 자동차, 앞으로 주요 운송수단이 될 드론,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스마트팜 등 전기를 사용해 연산을 하는 모든 장치에는 Arm의 IP가 들어가 있고, 전 세계 약 70% 이상이 Arm 기술로 구동되는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Arm은 마치 '공기'처럼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 저변에 늘 존재한다"고 말했다.
Arm이 공개한 지난해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글로벌 모바일 AP 시장의 99%, 소비자가전 시장의 32%를 점유하고 있다. Arm 없이는 반도체 생태계 자체를 논할 수 없다는 얘기다. 황 사장은 "모바일과 소비자 가전 외에도 Arm은 오토모티브 41%, 클라우드 컴퓨팅 10%, IoT·임베디드의 65%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면서 "Arm은 인류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CPU 아키텍처로서 설립 이래 약 34년간 2800억개 이상의 Arm 기반 칩을 출하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반도체 산업은 '제2의 퀀텀점프'를 앞두고 있다. 컴퓨터,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수요는 물론 자율주행, 스마트 물류, 스마트홈, 데이터센터 등 산업 전반이 반도체 수요를 촉발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등장으로 고성능 AI칩 수요도 폭발하고 있다. 황 사장은 "1990년 Arm이 설립된 후 2015년까지 25년간 700억개의 Arm기반 칩을 출하했는데 2016~2023년까지 최근 7년간 출하한 칩이 2100억개로 그 전보다 3배나 더 늘었다"면서 "Arm 기반 반도체 출하량 증가 속도가 놀라울 지경"이라고 했다. 또 "지난해에만 300억개 이상의 Arm 기술 반도체 칩이 출하됐고, 현재 1500만명 이상의 개발자들이 Arm을 이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글로벌 기업들이 목표로 하는 'AI 에브리웨어'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도체 업계의 전력효율, 컴퓨팅 성능에 대한 도전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라면서 "Arm이 중점을 두고 있는 알고리즘의 저전력 가속화는 대형 언어 모델, 생성형 AI, 자율 주행과 같은 강력한 컴퓨팅 성능을 가진 분야에서 더욱 중요한 키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Arm은 모바일과 범용 CPU를 넘어 목적에 맞게 구축된 접근 방식으로 클라우드 컴퓨팅, 자동차 및 IoT의 핵심 컴퓨팅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가장 효율적인 컴퓨팅 플랫폼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rm에게 있어 한국 시장은 매우 중요하다. 황 사장은 "Arm이 스타트업이던 1994년, 삼성전자가 Arm 기술을 처음 도입하면서부터 한국은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한국에는 Arm의 집중 사업분야인 클라이언트, 인프라, IoT 등 핵심 실리콘 파트너들과 OEM 파트너들이 다수 포진해있고 최근에는 팹리스, 디자인 파트너, 스타트업, 정부 등과의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앞으로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과 리더십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Arm의 주요 과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미 Arm은 팹리스나 스타트업들이 적기에 고객이 원하는 양산성 있는 칩을 내놓을 수 있도록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 황 사장은 "양산성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팹리스, 스타트업들의 역할만큼 디자인 서비스 업체의 완성도 있는 설계 서비스가 중요하다"면서 "제대로 설계가 마무리되지 않거나 양산성이 부족한 제품이 개발될 경우에는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을 놓칠 뿐 아니라 추가 투자도 많이 발생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지속적인 로드맵이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경쟁사들에게 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어 Arm은 한국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 설계 디자인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힘주었다.
반도체 설계 디자인 서비스를 단순 하청이나 외주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고, 완성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핵심 파트너사로 생각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동시에 디자인 서비스업체들도 고객사의 모든 것이 투자된 제품이 '제로 에러, 온 타임 서비스(Zero Error, On time Service)'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설계 서비스 역량을 적극 키워야 한다. 황 사장은 "반도체 공정이 첨단화되고, 응용처가 다양해질수록 디자인 서비스 기업은 시스템온칩(SoC)이 적기에 개발될 수 있는 선행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삼성에 있을 때부터 이 부분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고, Arm이 가진 역량을 동원해 이 문제를 서서히 풀어가고 있다"고 했다.
황 사장은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모든 가치사슬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려는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과 대만에 비해 팹리스와 디자인 서비스의 규모가 작아 제대로 된 투자와 개발이 적기에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시장이 아닌 틈새시장만 바라보게 된다면 결코 빅테크들과의 전쟁에서 기술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향후 브로드컴, 미디어텍 등과 경쟁할 수 있는 팹리스와 알칩, 소시오넥스트, GUC(Global Unichip)와 경쟁할 수 있는 디자인 서비스 회사를 전략적으로 육성하지 않는다면 세계 시장에서의 시스템 반도체 위상이나 시장 점유율 확대는 요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rm도 한국 반도체 산업에 기여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Arm은 파트너 제도인 AADP(Arm Approved Design Partner)를 통해 팹리스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20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협력해 AFA(Arm Flexible Access)프로그램을 도입했다. AFA 프로그램은 스타트업이 초기 투자 부담 없이 제품 설계 및 샘플 검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Arm은 현재까지 18개사의 팹리스, 스타트업에 Arm 지식재산권(IP)에 대한 비용 부담 없이 SoC 설계를 통해 반도체 샘플을 제작, 검증하도록 했다.
황 사장은 "세계 시장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동일한 지원'이 아닌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지난해 아세안 지역 전체에 AFA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팹리스와도 SoC 개발을 위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는데 올해는 기반 기술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황 사장은 앞으로 AI 시장이 확대되고 자율주행, AI 인프라 수요가 증가하면 SoC는 더욱 첨단공정과 더 높은 컴퓨팅 능력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 기업마다 맞춤형 SoC 요구가 확대되고, 자체 SoC 개발이 증가되며 HBM 및 칩렛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취약점인 디자인 서비스 역량 강화에 Arm이 보유한 플랫폼과 솔루션을 집중 지원할 예정"이라며 "4년 전부터 운영했던 AADP 프로그램을 한층 강화하고 인프라 분야의 ATD(Arm Total Design) 파트너십을 강화해 인프라의 최첨단 설계 기술을 한국의 디자인 서비스 업체들에게 제공, 팹리스 및 OEM이 필요로 하는 SoC를 선행 대응할 태세를 갖추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