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26) 소설이 담아낸 베트남의 굴곡진 현대사

2024-03-06 06:00
  • 글자크기 설정
이한우 전 서강대 교수
[이한우 전 서강대 교수]



최근 국내에서 <서울의 봄> <건국전쟁> <파묘> 등 영화를 통해 역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정부가 국정 국사 교과서를 만들려다 국민의 저항에 부딪힌 적도 있었다. 그때 베트남도 국정 교과서를 복수의 검인정 교과서로 바꾸려는데 한국은 어찌 역행하려는가 하는 비판도 제기됐다. 교과서를 복수로 발간하더라도 공산당 1당이 통치하는 당·국가 체제인 베트남에서 다원화된 역사 해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베트남 현대사는 민족 독립과 국가 통일의 역사이며, 공산당의 영도와 인민들의 부단한 노력이 이 역사를 만들었다는 게 공식적 견해다.
권위주의 통치자나 국가주의자들은 역사를 독점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사회에는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베트남에서는 소설 형식을 빌려 공식 역사와 다른 베트남 현대사를 묘사하기도 한다. 베트남인 작가 호앙밍뜨엉이 그 예다. 그는 <시인, 강을 건너다>에서 한 가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베트남 현대사의 곡절들을 서술했다. 마침 배양수 부산외대 교수가 이를 한글번역본으로 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상충하는 인물로 구성된 가족사
 
베트남은 19세기 후반에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하고 1941년부터 일본의 공동 지배를 받았다. 1945년 8월에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호찌민과 월맹(베트민)이 주도하여 독립된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선포하지만 곧 프랑스가 식민지배를 복구하려고 베트남으로 복귀한다. 이후 1946년 말부터 시작된 양측 간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은 1954년 5월에 베트남의 승리로 끝난다. 베트남은 전쟁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에 제네바회담에서 분단안을 받아들여 1954년 7월부터 남북 베트남이 분단 상태로 공존하게 됐다. 이로써 북부에는 사회주의 체제, 남부에는 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이후 양측은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즉 베트남전쟁을 벌인 끝에 북부가 남부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이런 과정에서 베트남 가족 구성은 상충하는 인물들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베트남 북부에 살던 한 가정은 이렇다. 아버지는 땅을 조금 가진 중농이나 소지주였으나 프랑스에 대한 저항전쟁 때 민족운동을 하던 공산주의자들을 돕는다. 그러나 토지개혁 때 지주로 몰려 처형당하거나 이를 피해 남부로 이주한다. 한 자녀는 공산주의운동에 전념하여 고위직에까지 오른다. 한 자녀는 북부에서 공산주의에 동조하면서도 지식인으로서 필화사건을 겪으며 고난을 겪는다. 한 자녀는 1954년 남북 분단 때 남부로 이주하여 자유주의 정권을 위해 참전하거나 고위직에 올랐다가 1975년 통일 전후에 미국으로 이주하거나 베트남에 남는다. 분단 시기에 남부 출신 가족 내에도 북부를 지지하던 사람이 있었고 남부를 지지하던 사람이 있었다. 이런 한 가족 내 다양하면서 상충하는 구성은 분단 시기 베트남 가족에 적지 않았다고 한다.
호앙밍뜨엉이 <시인, 강을 건너다>에서 주인공으로 세운 응우옌끼푹은 하노이 서쪽의 한 마을 출신으로 한의사이며, 공산주의자는 아니면서도 반식민 민족운동을 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돕는다. 그러나 그는 첫째와 둘째 아들을 월맹 군대에 보냈으면서도 셋째 아들이 프랑스에 유학하기를 바란다. 그는 사회주의식 토지개혁 과정에서 토지개혁대 대장의 농간에 넘어간 양아들이 그를 악덕 지주로 비판하자 인민재판 전에 자살하고 만다. 그의 아들들은 북부에 거주하는 공산주의 혁명가와 지식인, 이념을 모르는 보통 사람, 남부로 이주하여 남부 정권의 공무원이 된 사람 등 다양하다. 그 양아들의 친아버지는 프랑스인 혼혈아 출신으로 월맹군을 소탕하던 프랑스군 장교다. 그는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자 남부로 이주해 남부 정권의 고위 장교로 있으며 우리의 도지사 격인 지방 성장을 맡는다. 이로써 작가는 베트남 현대사에 등장한 여러 인물상을 드러낸다. 그들은 프랑스 식민지배의 산물인 혼혈아, 공산주의 민족운동가, 비공산주의 민족운동가, 식민지 시기 프랑스 부역자 및 분단 후 남부 정권 지지자 등이다.
 
호앙밍뜨엉의 소설 시인 강을 건너다
[호앙밍뜨엉의 소설 <시인, 강을 건너다>]

-토지개혁의 ‘흑역사’와 전쟁의 참화
 
현대 베트남 국가 건설 과정에서 가장 큰 격동은 북부에서 1953년 시작된 토지개혁이었다. 당시 5% 지주 규정으로 인해 지주가 아닌 사람도 지주로 몰려 희생되기도 했는데, 희생된 사람이 1만6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치지도자들은 토지개혁 과정의 오류를 깨닫고 1956년에 이를 서둘러 종료했다. 따라서 북부의 토지개혁은 베트남 현대사에서 ‘흑역사’에 해당하기에 지도자들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린다. 이 소설의 주인공 푹은 그 절정기인 1955년에 '검은 폭풍 같은 토지개혁'을 맞는다. 지주로 몰려 재산을 빼앗긴다. 도자기는 깨지고 유교 경전은 불태워 버려진다. 논은 물론이고 잘 가꿔졌던 정원 응우옌끼비엔은 훼손되고, 넓은 마당을 가진 집도 농민들에게 넘겨진다. 정교하게 지었던 조상 사당은 허물어져 그 벽돌은 농민들이 담장을 쌓는 데 사용한다. 나중에 응우옌씨 가문은 1980년대 중반에야 빼앗겼던 정원을 되찾아 복원하고 사당을 다시 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당의 복원은 피붙이가 아닌 양아들에 의해 이뤄진다.
토지개혁 이후 북부 농촌은 집단농장화가 진행됐다. 이는 토지개혁에 비해서는 사회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1960년 무렵에 농촌은 대부분 ‘합작사’라는 이름의 초급 단계 집단농장으로 재편된다. 남북 베트남은 곧 196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전쟁의 격랑 속으로 빠져든다. 북부 마을은 미군기의 공습으로 병원, 다리, 시장 등 곳곳에 피해를 입었다. 북부 사람들은 식민지배 시기 프랑스보다 미국이 더 야만적이고 잔학했다고 느끼며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농민들은 식량이 부족했지만 이를 전선으로 더 보내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한편 이 소설에서 통일 이전 남부로 이주한 사람은 주인공 푹의 셋째 아들과 양아들의 친아버지인 프랑스 혼혈아였다. 푹은 셋째 아들이 북부에서 떠나 계속 공부하길 원했기에 그 아들은 남부로 이주해 공부를 마친 후 남부 정부의 공무원이 된다. 프랑스 혼혈아는 1954년 월맹 세력이 북부에서 권력을 회복하기 전에 프랑스군 지역 초소장으로 있다가 이후 남부로 이주해 지방 성의 성장이 되어 권력을 이어간다.
 
-남부 위상의 변화와 훼손된 혁명적 순수성
 
베트남전쟁 시기에 북부 지도자들에게 남부 정부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괴뢰정권이었다. 베트남은 통일 이후에도 통일 이전 남부 정권을 지칭할 때 미국의 괴뢰라고 칭하였다.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기 이전에 남북한이 상대방을 공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괴뢰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베트남이 개혁정책을 집행한 이후에도 남부 정권을 괴뢰정권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으나 최근에는 드물게 국가명인 ‘베트남공화국’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는 통일 직전인 1974년에 중국이 파라셀 군도 남서부를 침략할 때 저항하다 희생된 남베트남 군인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 수 있게 몇 해 전부터 용인한 것과 연관된다고 짐작한다. 한편 개혁으로 국가가 발전하면서 해외에 있는 남부 출신 베트남 동포들을 포용할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된 점도 이에 한몫한 듯하다.
이 소설에서 통일 이후, 특히 개혁 시기에 각 인물의 생존 방식은 기존 캐릭터의 본질을 뒤집는다. 통일 이전에 남부로 이주해 공무원이 됐던 푹의 셋째 아들은 교통부 도로교량총국 계획국장 보좌관이 됐고 통일 이후에 국장급 이상이 참가하는 사회주의 개조학습에서 빠질 수 있었다. 오히려 북부에서 문필가였던 둘째 아들이 문예운동에 참여한 경력으로 인해 개조학습을 받아야 했다. 푹의 큰아들은 공산당 간부가 되어 재산을 모으고, 맏손자는 러시아에서 밀수꾼으로서 재산을 모은다. 푹의 큰아들 부자는 1985년 화폐개혁 때 미리 돈을 금으로 바꿔 큰 부를 축적해 붉은 자본가가 된다. 맏손자는 부동산, 자동차 매매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심한 낭비벽으로 1년에 자동차를 두세 대 바꾸고 애인을 다리 긴 모델들로 서너 명씩 바꾼다. 이렇게 일부 권력자 가족은 자본주의 물결에 편승해 자본가, 즉 기업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호앙밍뜨엉이 이 소설 속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우선 드는 생각은 그가 여러 유형의 인간상을 보임으로써 베트남 현대사가 이들이 살아낸 역정을 통해 복합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이념의 허망함까지는 아닐지라도 국가나 이념보다는 인간의 삶 자체가 의미 있고 중시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 주요 이력

▷서강대 정치학 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와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