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24) 수교 50년 베트남-일본 …수백년 교류의 발자취

2023-12-07 06:00
  • 글자크기 설정
이한우 전 서강대교수
[이한우 전 서강대교수]



50년을 맞은 베트남-일본 관계
 
베트남과 일본이 양자 관계의 최고 단계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양국은 1973년 9월 21일 수교하여 올해 수교 50주년을 맞았는데, 수교 50주년에 즈음하여 보반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11월에 일본을 방문했다. 베트남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 첫날에 양국은 양자 관계를 '아시아와 세계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데 합의했다. 이로써 일본은 중국, 러시아, 인도, 한국, 미국에 이어 베트남과 최고위 양자 관계를 맺은 국가가 됐다.
한국이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 투자 순위에서 누계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교역도 중국, 미국에 이어 3위에 있기에 한국인들은 베트남에서 일본의 경제적 위상에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베트남의 4위 교역 대상국이고 3위 외국인 투자국이다. 일본은 베트남에 ODA를 제공하는 국가 중 부동의 1위에 있으며 그 규모도 2위인 한국보다 8~9배나 많은 금액이다. 현재 베트남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약 2만3000명이지만 일본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은 약 50만명에 달한다.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상대국에 각각 약 20만명 거주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렇게 베트남은 한국만큼이나 일본과 밀접하며 분야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간의 베트남과 일본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보반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한 베트남 신문들의 보도 출처 Tuoi Tre Thanh Nien 신문 캡처
[보반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한 베트남 신문들의 보도. 출처: Tuoi Tre, Thanh Nien 신문 캡처]



베트남-일본 관계의 역사
 
역사적으로 한국은 중국에 간 사신들을 중심으로 베트남과 교류를 간간이 이어갔다면 일본은 베트남과 오래전부터 교역을 통한 교류와 근대 이래 지식인들의 교류를 지속해왔다. 일본인들은 16~17세기에 베트남 중부를 방문하여 활발하게 교역 활동을 벌였다. 다낭 남쪽 호이안 중심 거리에 일본이 16세기 말에 건설한 내원교는 영어로 ‘Japanese Bridge’라고 하듯이 일본이 건설한 것이다. 이는 동쪽의 중국인 거리와 서쪽의 일본인 거리를 잇는 다리다. 진주의 선비 조완벽이 1604년과 1606년 사이에 세 차례나 베트남에 다녀와 한국인 최초의 베트남 방문 기록을 남긴 것도 일본인 상인과 동행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정유재란 때인 1597년에 일본으로 잡혀가 10년간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교토의 거상 스미노쿠라 료이의 주인선을 타고 베트남을 방문한 것이다. 그가 베트남에 간 것은 당시 국제어인 한문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미혜 동덕여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조완벽이 방문한 곳이 베트남 호이안이 아니라 중북부에 있는 응에안 지방이었는데, 이를 보면 베트남은 일본과 여러 지역에서 교역했던 듯하다.
근현대에 들어 베트남과 일본 관계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드는 것이 판보이쩌우가 1906년부터 벌인 ‘동유운동’이다. 이는 베트남 학생들을 일본으로 유학시키는 운동이었다. 판보이쩌우는 20세기 초에 판쩌우찐과 함께 베트남 사상가이자 민족운동가로서 쌍벽을 이루던 인물이었다. 동유운동으로 베트남인 약 200명이 일본에 유학했지만 프랑스의 탄압에 일본이 협력하면서 이 운동은 1909년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당시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근대화의 길을 걸으며 강국으로 등장하여 여러 아시아 국가들이 모범으로 삼을 국가로 여겨졌다. 이후 일본이 주변국을 침략하며 모범국 위상은 사라지고 제국주의 국가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제국주의 일본은 중국을 공격한 데 이어 1940년 9월에 베트남으로 진격해 들어가 1941년 후반에 전국을 석권했다. 일본은 당시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를 제압했으나 프랑스에 대해 식민 통치를 지속하도록 허용하다가 1945년 3월에 직접 지배로 전환한 바 있다. 일본이 1945년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많은 양곡을 베트남에서 공출해 북부 홍강 델타에서만 한 해에 200만명을 굶어 죽게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일본이 항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곧바로 베트남은 독립을 선포했다. 프랑스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식민 지배를 복구하려고 획책하여 베트남과 프랑스는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을 치른다. 이 시기에 베트남은 일본과 소원해졌다가 일본은 남베트남과 먼저 수교하게 된다.
일본은 1960~1970년대 베트남전쟁 시기에 미국 군사기지로 기능했고 소비재 공급처이기도 했다. 미국 B52 폭격기가 오키나와 공군기지에서 출격해 북베트남을 때렸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은 선풍기, 녹음기 등 일본산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개입을 중지하고 미군을 철수하려고 파리평화협정을 1973년 1월에 체결하자 일본은 발 빠르게 그해 9월에 북베트남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양국 관계가 급속히 발전하지는 않았다.
 
개혁 시기 최고의 협력 파트너
 
1975년 4월에 베트남전쟁이 종결되자 베트남은 한국과 관계를 단절했지만 일본과는 이전처럼 관계를 유지해갔다. 그러나 베트남이 1978년 12월에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내려진 금수 조치에 일본도 동참하면서 실질적 관계는 중지됐다. 이후 일본은 베트남에 대한 원조도 중단했다가 1992년 11월에야 재개하게 된다.
베트남과 일본 간 협력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베트남이 개혁에 착수하면서부터다. 이제 양국 경제 관계는 매우 밀접해져 있다. 2022년에 베트남은 일본에 242억5000만 달러를 수출하고 233억9000만 달러를 수입해 교역 총액 476억4000만 달러로 일본은 베트남의 제4위 교역 대상국 지위에 있다. 베트남은 지난 10년간 일본과 교역에서 적자를 내는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흑자를 내 왔다. 한국은 2022년에 교역액 877억 달러로 베트남의 제3위 교역 대상국 지위에 있다. 일본은 2023년 10월까지 등록 자본금 누계로 714억 달러를 투자해 제3위 직접투자국 지위에 있다. 한국은 베트남에 대한 직접투자 순위에서 지난 10년간 1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베트남인들은 대체로 일본이 한국보다 한 수 위인 국가로 인식한다. 물건을 살 때도 일본 제품을 고급으로 여기는 편이다. 오래전부터 혼다는 현대 베트남에서 곧 오토바이를 뜻했다. 개혁 초반기에 “아이 해브 어 드림”은 미래에 대한 꿈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면서 태국산 드림Ⅱ 혼다 오토바이를 가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드림Ⅱ는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갖고 싶은 선망의 오토바이였다. 요즘엔 오토바이와 스쿠터가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지만 말이다. 이제 베트남인들 사이에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베트남이 자동차 시대로 전환해가면서 한국의 현대·기아와 도요타가 베트남 시장에서 경쟁을 벌인다. 일본의 이온몰이 베트남 사업을 확장해 한국의 롯데마트에 긴장감을 줬다.
해양 안보 분야에서는 베트남과 일본의 관계가 매우 긴밀하다. 모두 남중국해에 직접 이해를 가진 국가들이어서 일본이 베트남에 해양경비정을 제공하는 등 협력 관계는 확대되어왔다. 한국이 현 정부 들어 남중국해 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한·미·일 공조를 통해 중국에 대응하려 하고 있어 해양 안보 분야에서 베트남과도 협력이 확대될 것이다.
베트남에 대한 문화적 영향력 면에서는 한국이 앞선다고 생각하는 게 대체로 맞지만 모든 면에서 그런 건 아니다. 베트남이 개혁에 착수하면서 외국에 문호를 열자 <오싱>이 베트남인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끌었다. <오싱>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극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였다. 베트남이 통일 이후 10년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끝에 막 개혁에 착수했던 시기에 베트남인들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오싱>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도 <오싱>은 베트남에서 농담으로 가사도우미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후 한국 드라마가 도입되면서 <오싱>으로 대표된 일본 드라마 인기는 줄었고 한국 드라마가 이를 대체해 한류를 확산시켰다.
이처럼 베트남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일본은 여러모로 관련돼 있다. 모두 역사적 상흔도 지니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베트남인들이 방문하고 싶은 나라 순위에서 1~2위를 다툰다. 한편 베트남 이외 동남아 대부분 국가에서 일본의 영향은 강하게 작용하나 베트남에서만큼은 한국 위상이 일본에 버금간다. 그러나 한국 언론만 보면 지금 베트남이 한국풍 일색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이는 큰 오산이다. 베트남과 일본의 인연이 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강대 정치학 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와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