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3년 만에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탈출을 선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3일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춘계 노사 임금 교섭(춘투) 결과와 물가 전망 등을 살펴본 후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음을 밝힐지 고민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최근 2~3년 새 물가 상승으로 지난해 가계의 총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지수가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에 달하고 있다.
엥겔지수 상승은 가계에서 식비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그 외의 지출은 자제하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생계유지 외에 쓸 돈이 부족하거나 물가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처럼 물가 상승으로 현 정부에 대한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지지율 상승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관계 각료가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하거나 경기 동향에 관한 공식 견해를 정리한 월례 경제보고에 명기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3년 전인 2001년 3월 월례 경제보고에 맞춰 공개한 자료에서 일본 경제가 완만한 디플레이션 상황이라고 처음 인정한 바 있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오랫동안 일본 경제의 고질병으로 언급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면 2%가 넘는 안정적인 물가 상승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일본 소비자물가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화 가치 하락 등으로 크게 올랐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대비 3.1% 올라, 1982년 이후 41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고, 올해 전망치도 2.4% 상승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행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지난달 22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물가 동향에 대해 “우상향 움직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디플레이션이 아닌 인플레이션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이 정비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디플레이션 탈출을 표명한다면 23년간 안정적인 성장을 방해했던 족쇄에서 벗어난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기시다 정권이 디플레이션 탈출을 표명하려는 배경에는 경제 정책의 성과를 호소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 내에서는 이른 시기에 디플레이션 탈출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