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 기업 애플에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과징금 철퇴를 가할 전망이다. 오는 3월 본격 가동되는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앞두고 EU와 빅테크 간 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첫 철퇴..DMA '전초전' 분석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익명의 소식통 5명을 인용해 EU 집행위원회(집행위)가 애플에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약 5억 유로(약 7200억원)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과징금 부과는 내달 초 발표될 예정이다.보도가 사실이라면 EU가 애플에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신들은 과징금 부과는 EU가 빅테크 기업에 보내는 경고성 조치라고 평했다. 유럽에서 계속 사업을 하려면 반(反)경쟁적 사업 관행을 뿌리 뽑으란 것이다.
애초 과징금 규모가 애플의 글로벌 매출 10%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던 점에 비춰, 제재 수준이 약하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과징금 부과 자체가 사실상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라는 명령이란 점에서 애플에 상당한 타격이 될 전망이다.
스웨덴 기업 스포티파이가 2019년에 앱스토어의 독점 관행을 문제 삼고 들고 일어선 것이 이번 과징금 부과의 시초다. 스포티파이는 사용자가 앱스토어에 등록된 앱을 통해 결제할 경우 30%에 달하는 고액의 수수료가 부과돼, 구독료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애플이 자사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애플뮤직’에 이득을 주기 위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의도했다는 것이다.
EU집행위는 애플이 앱스토어 외의 저렴한 대안 등을 이용자들에 알리는 것을 막았는지를 살펴본 뒤 내부적으로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다고 FT는 전했다.
애플이 EU에 항소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애플은 오는 3월부터 유럽 내 아이폰 이용자들에 제3의 앱스토어와 애플페이 외 결제 수단을 허용키로 하는 등 DMA 시행을 앞두고 한발 물러선 분위기다.
EU vs 미국 분쟁으로 확대 가능성도
EU의 과징금 철퇴는 오는 3월 7일 시행되는 DMA의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 DMA는 빅테크의 폐쇄적인 플랫폼을 전면 개방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기업들은 앱장터에서 인앱 결제를 강제해서는 안 되며,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검색엔진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의무를 어긴 기업에는 글로벌 매출 기준 최대 10%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반복 위반 시 과징금은 최대 20%로 높아진다.EU는 지난해 9월 EU 내 연매출 75억 유로 이상 등의 기준을 충족한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를 게이트키퍼(관문)로 지정했다. 소비자와 판매자 간 관문 역할을 하는 이들 기업이 자사 서비스를 선호하는 식의 불공정한 특혜를 주는 행위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게이트키퍼로 선정된 기업은 3월까지 DMA를 이행할 방안이 담긴 보고서를 EU에 제출하는 등 규제를 준수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 EU는 이들 기업의 조치가 충분한지 조사한 뒤 추가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조사는 최대 5개월간 진행될 예정으로, 기업들은 늦어도 오는 8월까지는 DMA 조항을 완전히 준수해야 한다.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제안한 해결 방안이 충분하지 않다면 주저하지 않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EU 간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 양당 의원들은 지난해 말 “EU의 DMA가 미국의 경제와 안보 이익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항의 서한을 바이든 행정부에 전달했다. 바이트댄스를 제외한 게이트키퍼가 모두 미국 기업이란 점에서 사실상 미국 견제용이란 주장이다.
대선도 갈등을 키울 수 있다. 트럼프 선거 캠프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디지털서비스세(DST) 등 EU가 미국 디지털 기업에 부과하는 제재에 맞서 상대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법 301조를 발동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