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세청은 역외탈세 방지를 위해 해외에 금융거래 계좌를 보유한 사람들 정보를 타국과 교환하는 협정을 맺고 있다. 미국의 '해외금융계좌신고법(FATCA)'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통보고기준(CRS)'이란 제도다. 국세청은 앞서 국내 은행·상호금융기관에 대해 FATCA·CRS(이하 '금융정보 자동교환') 제도 이행 평가를 마쳤고, 올해부터 증권사의 이행 여부를 집중해 살핀다. 아주경제는 증권사들이 염두에 둬야 할 이 제도 내용과 준수 필요성을 주제로 금융 규제 자문 전문가인 장지식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재무자문본부 수석위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장 수석위원과 일문일답한 내용.
"금융기관 현업 출신과 데이터 분석 전문가, 컨설팅 전문가 등 자문 전문인력 30여 명으로 구성된 딜로이트 규제 및 컴플라이언스 자문그룹 소속이다. 은행, 증권, 보험사뿐 아니라 외국계 금융기관, 가상자산거래소 등 여러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금융보고 자동교환, 자금세탁방지 등 이행 규정을 위한 법규 준수 체계와 시스템 구축 자문을 수행한다. 딜로이트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연구한 외국 선진 방법론을 국내 금융기관들이 준수해야 할 법규 관련 고객사 자문에 활용한다."
-금융정보 자동교환은 어떤 제도인가.
"조세조약에 따라 국가 간 금융정보를 자동 교환하기 위해 국내 금융기관이 상대국 거주자 보유 계좌를 국세청에 정기 보고하는 제도다. 수집한 정보를 미국이나 OECD 국가 국세청과 교환하고 잠재적 역외탈세 방지 절차를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2014년 3월 미국과 관련 협정을 체결했고 그해 10월 OECD 협정 국가와 다자간 협정을 맺었다. 각국 국세청은 미국에 금융정보 보고를 의무화한 FATCA와 OECD가 만든 CRS 이행 규정에 기반해 금융 정보를 상호 교환한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미국, 84개 OECD 협정국과 매년 금융정보를 상호 교환하고 있다."
-이 제도가 최근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국내에 금융정보 자동교환 이행 규정이 처음 제정될 때 이는 하나의 규정이었다. 그런데 2019년 FATCA와 CRS 이행 규정이 분리돼 전면 개정됐다. '의무이행 방해자' 신고 제도가 신설되고 국세청이 금융기관 의무 이행 여부를 평가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이 반영되는 등 준수 의무가 강화됐다. 국세청에서 종전보다 금융기관에서 더 정확한 수치를 내 보고할 수 있게 시스템 구성 현황과 업무 프로세스 이행을 평가할 필요성이 생겼다. 앞서 2022년까지 은행권을 중점적으로 점검해 보니 이쪽은 정보 실사, 업무 프로세스, 시스템 구축이 어느 정도 완료됐다. 하지만 아직 증권사는 시스템 개발이 안 됐거나 업무 프로세스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다."
-각국 조세 기관이 해외 과세 대상을 파악하려고 금융기관이 개설한 계좌를 관리하게 만든 제도 같은데, 이것이 왜 금투업계에 중요한가.
"이자소득과 같은 소득은 주로 은행을 통해서 발생하지만, 증권사 계좌에서도 수익을 얻고 이자나 배당 등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가 있다. 그런데 어떤 국내에서 거래하는 외국인이 조세 관할 국가의 과세 당국에 (조세 회피 의도로) 수익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가입한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 계좌가 그들에게 과세할 나라의 국세청에 노출되지 않고 수익을 얻는다고 하면 그 금융거래를 처리해 준 기관이 금융정보 자동교환 제도로 주어진 '실사'와 '보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게 된다. 의무를 위반한 금융기관은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다."
-어떤 불이익이 있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과태료 부과 기준이 있고 작년에 첫 부과 사례가 나왔다. 어느 곳인지 공개되진 않았다. 국세청은 2023년부터 금융정보 미보고, 오류 정보 보고 시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매년 의무 이행 미준수 기관에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과태료 규모 상한액이 중대오류 미기재는 2000만원, 단순 오류는 1000만원이다. 다만 '정보 건별 부과'일지, '적발 사례별 부과'일지 지침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다. 법령을 어떻게 적용할지 지켜봐야 한다. 특히 보고 대상이 미국 쪽인 계좌라면 FATCA 협정에 따라 미국에 '비참여 금융기관'으로 지정된다. 미국에서 FATCA 비참여 금융기관으로 지정됐을 때 이 사업장이 현지에 둔 법인 수익의 30%를 원천 징수 당하게 된다. OECD는 상대국에 그러한 강제 규정이 없지만 상호평가 점수를 통해 산업계 평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세청은 CRS를 통해 우리 금융기관의 신인도를 높이려는 측면에서 이것을 좀 더 중요시한다."
-해외 금융 자산을 보유했다고 국세청에 보고되는 인구가 국내에 얼마나 있을까.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파악하고 있는 국내 외국인 거주자는 226만명가량으로 총인구의 4.4%쯤 된다. 이들 전체가 최종 보고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그들 중 납세 의무를 가진 나라에 보고할 인원에 해당하는지에 달렸다. 공식적으로 최종 보고 대상 인원이 얼마나 된다는 통계치는 공표되지 않았다. 다만 국세청이 얼마 전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해외에 보고한 금융 계좌가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고 나온다.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금융정보 자동교환 제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설명해 달라.
"국내 금융기관에 계좌를 개설한 사람이 한인 사업자나 국제 대회에서 뛰는 스포츠 선수 같은 직업 특성 때문에 해외에 장기 체류·거주할 수 있다. 이 사람이 다른 나라 영주권이나 시민권 보유자라면 체류 기간과 자산 규모 등 일정 기준에 따라 현지 국세청에 정보가 신고돼야 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한국 금융기관이 어떤 금융계좌의 보유자가 보고 대상인지 실사하는 의무와 그 대상의 정보를 수집해 우리 국세청에 보고하는 의무를 진다. 필수 정보를 기재한 '본인 확인서'를 받고 신분증, 거주자 증명서 등 유효한 증빙 자료를 근거로 자금세탁방지 및 고객 확인 절차(KYC)에 따라 실사한다. 예를 들어 계좌 보유자가 기존 KYC에 국적을 '미국'으로 적었는데 최근 본인 확인서를 작성할 때 조세 관할 국가를 한국만 썼다면 정보가 상충하는 셈이 된다. 금융기관은 이렇게 오류가 있거나 허위로 작성된 본인 확인서를 30일 이내에 정정 요청하고 60일 이내에 정정 자료를 못 받았을 땐 보유자의 관할 국가를 추정해 보고한다. 의무이행 방해자 신고도 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수집한 보고 대상 계좌 정보를 다음 연도 6월 1일부터 30일까지 국세청에 보고해야 하고, 이 정보에 오류가 있으면 과세 당국의 시정 요구에 대처해야 한다."
-국내 금융기관 중 이 제도를 이행하는 현황과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2022년 OECD 상호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CRS 이행 규정 준수 효과성 평가에서 '양호(On Track)' 등급을 받았다. 다른 등급은 그보다 불완전하다는 의미인 '일부 준수(Partially Compliant)'나 미흡하다는 의미인 '미준수(Non-Compliant)'가 있다. 영국, 캐나다, 일본 등 60여 개국과 함께 한국이 양호 등급을 받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2023년 최종 보고 결과 정보 품질 비교 명세를 보면 한국이 협약국에 보낸 금융정보의 '미식별률'이 30%에 이른다. 협약국이 한국에 보낸 정보의 미식별률(7%)에 비해 미기재·오류가 많다는 뜻이다. 2020년 OECD 상호평가가 시작되면서 과세 당국은 우선 은행에 대한 이행평가를 대대적으로 시작했고 현재 대부분 은행과 상호금융기관이 시스템 개선을 완료했으며 실사·보고 절차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 대다수 기관은 선도 증권사 두세 곳만 이를 완료했고 다수 증권사는 수기 작업으로 금융정보를 추출해 보고함에 따라 데이터에 대해 정확성과 일관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제도를 이행하려면 조직은 무엇을 갖춰야 하고 어디에 얼마나 투자해야 하나.
"무엇보다 내부 실사 및 보고 업무 프로세스, 모니터링 프로세스 개선이 필요하다. 대면 또는 비대면을 통한 본인확인서 수취 프로세스를 만들어 고객이 계좌 개설 시점에 정확한 본인확인서 정보를 기재할 수 있도록 하고 영업점에서 고객에게 본인확인서 및 제도 관련 안내가 될 수 있도록 내부 교육을 실시하고 관련 매뉴얼을 준비해야 한다. 본인확인서 적절성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상시 최신 정보를 받도록 프로세스를 설계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실사 및 보고 업무를 원활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각 증권사 현황에 따라 투자 규모가 다를 수 있다. 전문가와 사전 논의를 진행할 것을 추천한다."
-올해 말까지 증권사들의 제도 이행 성숙도는 어느 정도 될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증권사는 20곳가량 된다. 그들도 내부 프로세스 정착을 하고 시스템 고도화를 하는 데 적어도 5~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모든 증권사가 시스템을 개발해서 업계 성숙도를 한꺼번에 높이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은행과 상호금융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4년 정도 걸려 성숙도를 개선해 왔다. 올해 국세청이 증권사들 환경을 면밀히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관련 예산을 마련하지 못한 증권사는 담당자가 자체적으로 프로세스를 고도화하고 노력하더라도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최소한 1~2년을 기다려 봐야 업계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가상자산 거래를 통한 역외탈세도 방지할 수 있을까.
"금융정보 자동교환 제도 안에도 가상자산을 보유한 자산 계좌를 2025년부터 보고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해 발표한 상태다. 기술 발전에 의해 금융 산업이 진화하면서 시도될 수 있는 역외탈세 수단이나 경로도 고려하면서 제도가 발전하고 이행 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국세청은 이행 평가를 위해 은행권과 상호금융을 점검했고 이제 주요 증권사를 검토하는 단계에 왔다. 앞으로 여러 증권사가 선도 사례를 참고해 내부 시스템을 개발하고 업무 절차를 개선할 것이다."
-제도를 이행하려는 금융기관, 특히 증권사에 조언을 한다면.
"딜로이트는 자문 업무 시 이행 규정에 따른 실사 의무, 보고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본인확인서 수취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계정계 화면 개선안, 모니터링 프로세스, 실사·보고 프로세스, 실사 대상자 추출 프로세스, 의무이행 방해자 신고 프로세스 등을 정의한다. 증권사의 현황 분석을 통해 최적화된 업무 프로세스 및 시스템 구성안을 제공한다. 각 사 업무 현황과 담당자의 요구사항을 고려해 업무 프로세스 설계에 중점을 두고 많은 시간을 들이는 편이다. 증권사 내부의 금융정보 자동교환 제도 이행과 자금세탁방지 제도 담당 부서는 실무 담당 인력이 은행 대비 규모가 작고 수가 적은 곳이 대부분인데, 어느 정도 인력 풀을 보완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장지식 수석위원은?
△동국대 경제학과
△2013년 딜로이트 안진 재무자문본부 입사
△2016년 딜로이트 안진 재무자문본부 딜로이트 포렌식 Senior Manager
△2019년 딜로이트 안진 재무자문본부 파이낸셜 크라이시스 사업부문 Director
△2023년~현재 딜로이트 안진 재무자문본부 규제 및 컴플라이언스 자문그룹 Executive Director(수석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