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가 안 되니 권리금도 없고, 임대료도 떨어졌어요. 경기도 안 좋은데 몇년째 죽은 상권에 누가 들어오려 하겠어요. 지금 신촌은 10~20년 전과는 완전히 딴판입니다." (신촌 연세로 한 공인중개사)
6일 찾은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는 아직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썰렁한 분위기를 풍겼다. 신촌역 2번 출구부터 연세대까지 이어지는 연세로를 걷다 보면 상가건물 4~5곳 중 1곳꼴로 빈 건물이 눈에 띌 정도였다. 유플렉스 건물과 광장이 있는 중심가 대로변에도 통째로 비어있는 4층짜리 건물들만 여러 곳이었다. 연세로를 오랫동안 지켜온 2번 출구 앞 투썸플레이스, 에뛰드하우스, 롯데리아 등도 철수하고 빈 건물로 남아있었다. 신촌역에서 이대역으로 향하는 대로변도 3~5층짜리 상가가 임대문의 현수막만 붙은 채 통째로 비어있었다.
신촌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10여년 전 송도캠퍼스 신설 이후 조금씩 상권이 위축되기 시작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기점으로 방문객이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인근 공인중개사 A씨는 "대학 인프라만 믿고 안주하다가 몰락한 상권이 돼버렸다. 외부 수요를 끌어들일 만한 요소가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라며 "홍대는 클럽, 포차 등으로 외국에서도 찾아오는 명소로 남았지만 신촌·이대는 젊은이들의 거리라는 정체성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신축으로 꾸며진 소규모 상가가 많은 합정·망원처럼 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높은 임대료가 장기간 유지된 것도 상권이 몰락한 이유 중 하나다. 연세로 일대 대로변 상가 1층 10평 기준 월세는 700만~800만원 수준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안 내리고 버티던 건물주들도 최근에는 월세 10~20% 깎아준다고 나섰지만, 그 가격도 지금 상황에 비해선 턱없이 높은 수준"이라며 "결국 법인 외에 개인은 못 버티고 나가고, 새로 들어오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 10평 기준 3억원에 달하던 권리금도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임차인을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라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앞 상권도 마찬가지다. 이대역 2·3번 출구부터 학교 앞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한때 화장품 가게와 미용실, 카페, 옷가게 등이 즐비했으나 지금은 간판이 떼진 채 방치된 건물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대 인근 공인중개사는 "통째로 빈 건물들 중에서는 상가 임대료 수익이 안 나와서 팔거나, 오피스텔을 지으려 철거한 곳들이 대부분"이라며 "관광객도 줄고 온라인 위주로 소비패턴이 바뀌며 특히 화장품 가게들이 많이 사라졌다. 임대료는 코로나19 이전보다 40% 정도 내렸지만 임차 문의는 아직 드물다"고 전했다.
연세대 졸업생인 서대문구 주민 김모씨(28)는 "학교 다닐 때 자리를 지키던 대규모 매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걸 볼 때마다 안타깝다"며 "신촌에는 점점 갈 만한 곳이 사라지다 보니 합정·망원이나 아예 딴 지역을 주로 찾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의 4분기 중대형,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각각 8.4%, 5.8%에 이르러 코로나19 시기보다는 다소 나아졌지만, 더 악화한 상권도 적지 않다. 특히 신촌·이대 지역은 지난해 3~4분기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22%, 18.3%로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4분기(16.2%)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상권 평균(8.4%) 공실률의 2~3배이자, 서울 내 상권 중 공실률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5년 2분기부터 2017년 4분기까지 11분기 연속 공실률 0%를 기록했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으로, 최근 변화하는 상권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퇴하는 모습이다.
신촌·이대뿐 아니라 대학가 상권 중에서도 건대입구(9.3%), 성신여대(10.0%) 등의 경우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서울 평균(8.4%)보다 높다. 지방에서는 더욱 심각한 지역이 많다. 광주 전남대는 중대형·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각각 48.7%와 26.9%로 다수의 상가가 비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북 영주중앙(38.8%/13.8%), 울산대(32.1%/14.5%), 울산농소(7%/34%), 경남 양산구도심(31.2%/12.7%) 등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서울 중심상권인 시청·을지로도 지난해 4분기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각각 19.9%, 21.2%로 서울 평균(8.4%)의 2배를 넘는다. 명동이 코로나19 이후 공실률을 서서히 회복하는 추세인 것과 달리, 시청·을지로는 2022년 4분기(17.5%, 15.15)보다 더 악화됐다. 시청 일대 공인중개사는 "요즘 10곳 중에 2곳 정도는 권리금 없이 나온다. 중심상권이지만 입지에 따라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라며 "오피스가 밀집한 시청보다 을지로가 공실이 조금 더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쇠락한 전통상권과 달리 사람이 몰리며 빈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상권도 있다. 마포구 망원·연남 등은 인근 신촌·이대 수요를 흡수해 활기가 돌고 있다. 망원역 상권은 2022년 2분기부터 0%대(소규모 상가 기준) 공실률을 지속하고 있다. 동교·연남은 2021년 4분기부터 공실률이 0~2%대로 집계된다. 2022년 4분기까지만 해도 19.3%, 14.5%로 공실률이 높던 강남 도산대로, 청담도 지난해부터는 1~2분기부터는 0%대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