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이의 다이렉트] 키르기스스탄 대자연으로 떠나다 下... 해발 4000m 만년설과 이식쿨호수

2024-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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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직행의, ~로 향하다'라는 의미인 다이렉트(Direct). '김다이의 다이렉트'는 새롭게 떠오르는 장소와 문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고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 어디든 찾아가 궁금증을 요목조목 파헤치고, 기자가 체험해 본 느낌을 생생하게 풀어본다. <편집자 주>
 
바르스콘 글랩핑장에서 바라본 풍경 저 멀리 겹겹이 보이는 산이 운치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바르스콘 글랩핑장에서 바라본 풍경. 저 멀리 겹겹이 보이는 산이 운치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전등을 켜놓은 듯 환하게 뜬 달과 그 주위를 수놓은 별들. 그림 같은 설산의 풍광을 바라보며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침대 삼아 누워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곳에는 나무를 스쳐 가는 바람 소리 외에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고 고요하다. 순간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자연 속으로 스며든다.
 
키르기스스탄 로드트립은 매일 모험과 열정, 낭만이 가득했다. 매일 짐을 싸고 새로운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 피곤할 만도 했지만 나와 일행은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풍경 조각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밴으로 이동하는 곳곳에서 마주한 풍경들은 비타민이 되어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 뿐인가. 가는 곳마다 낯선 우리들을 따뜻하게 환대해 주는 사람들에게 힘을 얻었다.
 
춘쿨착 리조트에서의 밤 리조트 앞에 텐트를 치고 드론을 띄워 이날의 밤을 즐겼다 사진김다이 기자
춘쿨착 리조트에서의 밤. 리조트 앞에 텐트를 치고 드론을 띄워 이날의 밤을 즐겼다. [사진=김다이 기자] 
◆ 낮에는 설원에서 승마를, 밤에는 캠프파이어를  
춘쿨착 리조트에서의 밤은 자연과 오롯이 하나 되는 시간이었다. 식당에서 저녁을 즐긴 뒤 이날 룸메이트였던 크리에이터 은솔이 숙소에서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텐트를 쳤다. 저 멀리 설산을 바라보며 텐트에서 밤공기를 느꼈다. 드론을 띄워 저 너머에 있는 새로운 산의 풍경을 담아오기도 했다. 폭신한 눈을 베개 삼고 별빛과 달빛을 이불 삼아 잠들기 딱 좋은 밤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총케민으로 향했다. 총케민은 협곡을 따라 강, 호수, 빙하, 숲이 어우러져 키르기스스탄에서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100년 넘는 세월이 담긴 총케민의 ASHU 게스트 하우스는 할머니 댁을 방문한 것처럼 따스하고 포근했다. 전통 자수 무늬로 꾸며진 방은 중앙아시아의 감성을 그대로 담아냈다. 낮에는 햇살 아래서 승마와 수영을 즐겼고, 밤에는 불을 피워 캠프파이어를 만끽했다. 건식 사우나까지 갖춘 숙소는 오랜 세월을 온몸으로 맞으며 퍽 닳아있었지만, 어째 하나도 낡은 것이 없었다. 
 
ASHU 게스트 하우스의 아늑한 객실 사진김다이 기자
ASHU 게스트 하우스의 아늑한 객실. [사진=김다이 기자] 
우리 일행은 짐을 풀고 송어잡이에 나섰다. 송어를 잡으러 간 강가에서 말라뮤트 한 마리가 해맑은 모습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긴 나무 막대 끝에 농구 골대를 연상케 하는 그물이 매달려 있다. 한 명씩 나와서 송어를 낚았다. 팔뚝만한 송어는 제법 힘이 좋았다. 휘청이며 뜰채로 낚아 올린 송어는 오늘 저녁 우리의 식사다.
 
이후 다시 한번 말에 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줄지어 달리는 말들. 이탈하는 말들이 없도록 말을 몰아주는 셰퍼드 세 마리와 함께였다. 전날 승마의 맛보기를 했던 덕분일까 승마에 조금 자신감이 붙어 오늘은 혼자 고삐를 잡았다. 앞뒤로 현지 가이드분들이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어 무척 안심됐다.
 
왕복 1시간이 넘는 코스. “츄~” 하는 소리와 함께 발로 말의 옆구리를 치면 말은 빠르게 달린다. “드르르르~” 소리를 내며 고삐를 당기면 말의 속도가 잦아든다. 전날 가이드분이 이끌어주셨던 것과 달리 내가 고삐를 잡자, 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탄 말은 옆에 있는 말이 달리면 덩달아 빨라지고, 옆에 있는 말이 멈추면 같이 멈췄다. 떨어질까 불안한 마음에 고삐를 힘껏 쥐었다.
 
키르기스스탄 전통 문양의 옷을 입고 있는 말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설원을 달리기 위해 말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숙소 앞에 불을 피우고 캠프파이어를 즐겨본다 노래와 술이 빠질 수 없다 사진김다이 기자
숙소 앞에 불을 피우고 캠프파이어를 즐겨본다. 노래와 술이 빠질 수 없다. [사진=김다이 기자]
승마를 즐긴 후,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수영장과 사우나에도 들렀다. 통창으로 이뤄진 수영장에서 눈 쌓인 풍경을 바라보며 유영했다. 뜨끈한 건식 사우나는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저녁엔 닭고기 수프로 추위를 달랬다. 닭곰탕과 비슷한 수프는 입맛에 제법 잘 맞았다. 일행 중 한 명이 낮에 잡아 온 송어로 회를 떴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회를 먹지 않아서 생소한 음식이었지만, 현지 가이드들은 생소한 한국식 송어회를 맛있게 즐겼다. 밤에는 삼삼오오 모여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해 불을 피웠다. 컵에 각자 취향대로 술을 따르고 노래를 곁들였다. ‘청춘’과 ‘낭만’이라는 새로운 퍼즐 조각이 완성된, 퍽 인상적인 하루였다.
 
눈길을 달리느라 더러워진 밴들이 아벨라고원에 도착해 줄지어 서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눈길을 달리느라 더러워진 밴들이 아벨라고원에 도착해 줄지어 서있다. [사진=김다이 기자]
◆ 해발 4000m에 쌓인 만년설과 협곡, 호수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
 
산속에 웅장하게 우뚝 선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곳. 바르스콘 밸리의 글램핑장은 북유럽을 연상케 했다. 러시아어로 ‘요르따’라고 부르는 천막집에서 한식과 현지식을 곁들인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다음날 일찌감치 일어나 배를 든든히 채우고 새로운 모험을 떠날 채비를했다. 이날 첫 번째 일정은 ‘독수리 사냥’. 겨울은 야생 독수리들이 여우나 토끼를 사냥하는 최적의 계절이다. 황량한 광야에 독수리와 함께 한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그는 생후 2개월이 된 독수리를 데려와 5년 동안 함께 생활했다. 사람의 손에 길든 독수리의 사냥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다. 매서운 독수리의 눈빛과 부리, 발톱도 자신을 길들인 주인 앞에서는 강아지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변했다. 독수리의 수명은 50~60년 정도라고 한다. 보통 이렇게 길들인 독수리는 20년 정도 함께 생활하다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독수리를 손에 얹고 우리는 모두 사진을 남겼다 사진김다이 기자
독수리를 손에 얹고 우리는 모두 사진을 남겼다. [사진=김다이 기자]
이제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만년설’로 향할 차례. 민가 하나 없는 길을 따라 목적지를 향해 내달렸다. 능선을 하나둘 넘어갈수록 풍경은 더욱 웅장해졌다. 겹겹이 쌓인 산그리메가 넘실거린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귀가 먹먹해졌다. 더 자주 침을 삼킬 수밖에. 괜스레 숨이 가쁜 것 같고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들었다.
 
한 해의 마지막 주. 산속을 달리는 이 순간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괴리감이 든다. 바람은 점점 더 거세졌고, 달릴 때마다 차에 날아와 부딪히는 돌들이 차의 속도를 체감케 했다. 고요한 산에는 인적도, 동물의 흔적도 없다. 이 산에서 우리 일행만이 유일한 생명체인 것 같다.
 
만년설의 크림같은 표면 사진김다이 기자
만년설의 크림같은 표면. [사진=김다이 기자]
아벨라고원 4000m 만년설에 다다르자, 크림처럼 부드러운 눈으로 뒤덮인 산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개가 끼거나 날이 흐리면 이곳에 올 수 없지만 이날 우리에게 운이 따랐다. 설원에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은 선글라스 없이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살을 에는 듯한 강한 찬바람이 외투를 파고드었다. 영하 15도의 날씨지만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를 훌쩍 넘길 듯하다. 거센 바람은 쌓인 눈들을 깎고 또 깎아냈다. 그로 인해 쌓인 눈의 표면은 쫀득하고 부드러운 머랭 같았다. 일 년 내내 녹지 않는 눈. 이곳에서는 여름에도 눈을 볼 수 있다.
 
1000m에서 2000m로, 3000m로 점진적으로 고도를 높여가 대부분 높은 고도에도 잘 적응했지만, 몇몇 일행들은 숨이 차오르고 머리가 아픈 미약한 고산병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높이로 손꼽히는 한라산이 2000m가 채 안 된다.

산에서 2시간가량 달렸을까. 갑자기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푸른 빛으로 일렁이는 이식쿨 호수와 호수 너머 눈을 덮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설산이다. 이식쿨 호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가 녹아 형성된 산정 호수다. 바다와 2600km 떨어져 있지만, 평균 1%의 염도를 형성해 겨울에도 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람 때문에 파도치는 호수를 보니 마치 바닷물이 넘실대는 것만 같았다. 
 
스카즈카 캐년과 그 사이로 이식쿨 호수가 보인다 사진김다이 기자
스카즈카 캐년과 그 사이로 이식쿨 호수가 보인다. [사진=김다이 기자]
호수 인근에는 독특한 모양으로 솟아오른 붉은 협곡 ‘스카즈카 캐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밭에 싸여있었는데 해가 쨍쨍한 모래 협곡을 보니 순간 미국 서부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붉은 언덕 너머로 보이는 이식쿨 호수와 설산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키르기스스탄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키르기스스탄은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서늘해 하이킹과 물놀이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순백색 겨울왕국을 즐길 수 있어 사계절 내내 관광하기에 모자람 없는 여행지. 키르기스스탄의 다음 계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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