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금세기 들어 언제 확실할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계속 요동을 친다. 미래 경제를 예측한다는 유수 기관들의 평가도 각양각색이다. 지나고 보면 맞았던 것보다 틀린 적이 훨씬 많을 정도다. 늘 위기의 연속이고 반복이다. 확실성보다 불확실성이 더 커지다 보니 새로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뉴 노멀(New Normal)’과 ‘뉴 애브노멀(New Abnormal)’이 겹치면서 오히려 혼란을 가중한다. 절대강자의 힘은 약화하고 새로운 강자가 부상한다. 틈새를 타고 기회를 잡으려는 플레이어들이 등장한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이러한 역전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국가나 기업, 심지어 개인에게서도 상황 반전에 따른 희비가 엇갈린다. 소위 말하는 치킨 게임이 여기저기서 쉽사리 목격된다.
이변이 없는 한 3월 대선은 푸틴의 종신 집권 체제를 열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5월 인도 총선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모기 총리의 3연임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또 관심을 끄는 국가는 3월 우크라이나 대선,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정권 교체가 예측되는 영국 총선, 9월 ‘포스트 기시다’에 관심이 쏠리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등 주목할 만한 선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한국의 4월 총선도 관심거리다. 여소야대 정국이 깨질 것인가가 일차적 관심 사항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20여 년간 한국 정치는 계속 표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화를 선호하는 유권자들이 정권과 정치 지형을 바꾸어 놓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정책 혼선과 진영 논리 격화로 경쟁국과 비교해 국가의 발전은 도리어 후퇴했다.
특히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경쟁 상대보다 계속 뒷걸음질을 친다.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기술 패권 경쟁이 춘추전국 시대이다. 일례로 우주 기술만 보더라도 이웃 중국과 일본을 보면 우리보다 10년 이상 앞서간다. 중국은 우주정거장 완전체를 공개하고 있고, 일본의 민간 우주선이 세계 다섯 번째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반도체는 대만에 역전을 허용하면서 수출시장 점유율이 두 자리에서 한 자리로 내려오고 있다. 이차전지·전기차 등 6대 산업의 수출 경쟁력이 2위에서 6위로 하락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수혜자가 아닌 심각한 피해자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경쟁자들은 산업 구조 대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대응 속도에서 뒤처져 갈수록 순위가 뒤로 밀려나는 현상이 현저하다.
지구촌 선거, 불확실성 더 키우나
이참에 호주전략연구소(ASPI)가 발표한 미래 핵심기술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더욱 선명하다.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하던 중국에 무려 53 vs 0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제시했다. AI·배터리·유전공학 등의 첨단 미래 기술에서 심지어 신흥국인 인도에도 상위 자리를 내주고 있을 정도다. 글로벌 제조업 기술 경쟁력 5위 국가라는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38개 부문에서 5위 이내에 들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일개 연구소의 평가 결과라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최근 공개되고 있는 유사한 자료를 보더라도 대체로 일관성 있는 성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우리만 잘 모르는 정확한 현주소고 그냥 지나칠수록 만회는커녕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끝난 CES에서 한국 기업의 선전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응용기술이고 원천기술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기초 기술의 백업이 뒤따르지 않으면 반짝 쇼에 그치고 장수하기가 힘들다. 글로벌 경제 지도가 재편되고 산업 질서가 크게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경쟁에서 앞서가는 나라들을 보면 선두에 기업을 내세운다. 기술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인재가 하나의 팀을 이뤄 국가의 총력을 집중한다. 반면 후진적 정치와 진영 논리가 판을 치는 한국은 기업에 족쇄를 채우지 못해 안달이다. 기업도 기득권으로 간주한다. 새롭게 들어선 정권이 기존 정책을 손바닥처럼 뒤집으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송하기 일쑤다. 오죽 답답하면 기업이 글로벌 경쟁 기업과 대등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를 하겠는가.
올해 지구촌이 연초부터 선거의 해로 부쩍 달아오르면서 요즘 선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관심까지 뜨겁다. 한국에서도 민생 경제가 선거의 핫이슈로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 말단지엽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 우리 선거판이 가진 태생적 한계이고 그 원인은 정치판에 모여드는 얼굴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중차대한 화두를 맡기기에는 그들이 가진 지혜와 경험, 용기가 턱없이 모자란다. 선거 결과에 따라 불확실성에서 확실성을 높여 가는 국가가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남은 것을 지키는 것과 벌어지고 있는 차이를 추격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촌각이 아까울 정도다. 불확실성을 더 키우는 선거 결과가 나올까 걱정이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