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 벽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인 CES(소비자전자쇼)가 성황리에 4일간에 걸친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CES 2024는 전자‧ICT(정보통신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 기술혁신의 미래 방향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기업은 물론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전시회다. CES는 1967년 뉴욕에서 시작되어 초기에는 가전 제품 및 기술을 중심으로 열렸다. 2000년대 들어 자동차 분야로 확대되면서 그 영향으로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가 없어질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최근 로봇, 드론, 우주, 헬스케어, 푸드테크, 스마트시티, 5G,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사실상 전 분야를 망라하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 기술 이벤트가 되었다. 세계가 과학기술이 기업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기술패권 시대로 접어들면서 CES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작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챗(Chat)GPT 등 생성형 AI 열풍이 CES 2024의 핵심 화두가 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기업의 CES 귀환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20년 1400여 개 기업이 전시에 참여하여 CES가 ‘Chinese Electronic Show’가 되었다는 평을 받을 만큼 중국 일색이었는데 미‧중 갈등의 영향과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작년 500여 개 수준으로 급전직하하였다. 반면에 작년 CES 이후 두 달도 안 되는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적 ICT‧모바일 기술 전시회인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는 CES에 참가하지 않은 화웨이, 샤오미, ZTE 등 중국 기업이 대거 참가하면서 큰 대조를 이루었다.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 이제 중국은 미·중 패권전쟁에 따라 미국 CES를 ‘패싱’하고 유럽 MWC에 주력할 것인가라는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작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기간에 이루어진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중 갈등을 완화하는 큰 성과는 없었으나 극단적 파국은 막자는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이 이번 CES 2024에 중국 기업의 대거 귀환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갈등이 우리 기업의 글로벌 전략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면에서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올해 CES 2024의 슬로건은 ‘All Together, All On“으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난제를 모두 함께 무대에 올라 기술혁신으로 함께 해결하자는 의미이다. 이는 작년 CES 2023에서 제시된 ’모두를 위한 휴먼 시큐리티(HS4A)’와 관련이 깊다. ‘인류 안보’ 또는 ‘인간 안보’라 번역되어 의미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감이 있으나 환경, 식량, 의료, 경제, 개인 및 공동체 안전, 정치적 자유 등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7가지 분야의 큰 위험에서 인류를 구해내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올해는 여기에 기술 역량을 의미하는 ‘기술에의 접근’이 추가되어 8가지 분야에서 ‘인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기술혁신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CES 2024가 제시한 핵심 기술 트렌드는 CES 2024의 슬로건이 제시하는 기술혁신의 ‘목적’과 일맥상통한다. 종래의 CES가 기술혁신 자체에 주목했다면 작년부터는 기술혁신의 ‘목적’으로 관점 전환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술혁신 자체보다 ‘무엇을 위한 기술혁신이냐’는 기술혁신의 ‘목적’, 특히 ‘인류를 위한 기술혁신’이어야 한다는 관점 전환이 올해 CES 2024의 핵심 트렌드다.
올해 다음 세 가지 방향이 핵심 기술 트렌드로 제시되었다. 첫째로 AI(인공지능)의 보편화다. AI가 ‘인류 안보’를 이루는 핵심 기술로 모든 제품 및 솔루션에 내재될 것이라는 의미다. CES 전시장 곳곳에 ‘AI for All(모두를 위한 AI)’ ‘AI Everywhere(어디서나 AI)’ 등 포스터가 도배하다시피 걸려 있고 대부분의 혁신 제품들이 AI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챗GPT 등 생성형 AI는 물론 기존의 분류형 AI, 예측형 AI를 망라한 AI 기술을 제품에 내장한 ‘온 디바이스 AI’가 다수 출품되었다. 삼성전자, LG전자, 지멘스, 아마존, 구글, 로레알 등 국내외 선도 기업이 모두 전방위 AI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 ‘온 디바이스 AI’가 기존의 ‘클라우드 기반 AI’와 결합한 ‘하이브리드 AI’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퀄컴, 인텔 등 반도체 선도 기업들에서 나오고 있다. CTA는 올해부터 생성형 AI를 넘어 AI 생태계가 구축되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AI 반도체 및 센서, 데이터 인프라 및 알고리즘, 이를 통한 AI 플랫폼, 디지털 트윈, 로봇 등으로 이루어진 AI 생태계의 경쟁력이 기업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범국가적 노력이 집중되어야 할 분야이다.
둘째로,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기술이다. ‘그린’ 기술은 매년 CES의 핵심 분야로 부각되고 있는데 올해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소재 분야와 인프라 분야 혁신에 많은 혁신 기술이 제시되었다. 배터리의 탄소 배출을 25% 감축할 수 있는 그래핀 소재 등 소재 분야 혁신이 두드러졌다. 아울러 새로운 대안으로 수소 기술과 핵융합 기술도 제시되었다. 현대자동차, HD현대, 두산이 제시한 수소 기반 자동차, 선박, 가스터빈, 연료전지 등 제품과 인프라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셋째로,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포용적 기술이다. 장애인은 물론 노년층, 저학력층 등 신기술에서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을 위한 기술혁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 해라 할 수 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방문해 주목받은 우리 스타트업 만드로의 로봇 손가락 의수, 청력이 약한 사람들의 대화를 돕는 기존 보청기와 차별화된 에실로룩소티카의 AI 기반 청각솔루션 안경 등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분야별로는 작년 모빌리티에 이어 헬스케어 분야가 CES 2024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분야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인류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AI 기술을 통해 조기 진단 및 예방을 가능하게 하는 등 더욱 지능화되고 개인화되고 있으며 장애인은 물론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전 분야에서는 TV가 AI 기반의 가정 내 지능 허브로 재정의되는 가능성을 제시했고,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자동차 중심의 육상은 물론 해상 선박, 공중 플라잉카 및 UAM 등 육해공 전체의 전동화가 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역대 최고의 전시업체가 참여하고 참관한 만큼 CES 2024를 통해 우리가 얻은 기술 트렌드, 시사점과 교훈을 면밀히 분석하여 ‘인류 안보’ 기반의 사람 중심 기술혁신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